테라온라인에서 보여준 '극악의 스토리(퀘스트) 가독성' 때문에 열띤 토론이 벌어진 것으로 압니다. 읽어보긴 했는데, 블리자드에서 만든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놓고선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로 싸움을 벌이는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게임을 논하는데 있어 흑백논리가 필요한가?
바람의나라부터 시작해서 테일즈위버를 넘어 아이온, 와우, 테라온라인까지 나오는 족족 해보고, 네이버에서 조그마한 웹게임 카페를 4년 넘게 운영하면서 지금은 게임기획자를 꿈꾸고 있는 제가 하는 생각이 저겁니다.
1. 비교대상이 되어버린 와우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 이 부분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본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스토리를 논하는데 있어 와우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자제했으면 합니다.
토론을 봤을때 두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와우와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그 잘났다는 와우가 한국 게임시장에서 몇위를 하고있냐?』이 두가지가 주요 골자인 것 같은데, 저도 카페 운영하면서 만나본 업계 종사자 분들 몇분이 와우를 추천해주신적도 있었습니다. 그중에선 '스토리가 괜찮다'라는 내용도 분명히 있었구요.
그래서 저도 해보긴 했는데 솔직히 별로더라구요. 한국에선 성공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한국의 게임들은 대체적으로 그래픽이 뛰어난 관계로, 게임의 성공유무에 '그래픽'이 상당부분 차지하는게 현실입니다. 대작 게임이라며 몇백억을 쏟아붓는데에도 그래픽이 상당부분 들어가겠죠.
그러한 이유로 와우는 외국에선 성공해도 한국에선 성공 못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성이나 스토리는 둘째치고 와우나 테라같은 동종의 게임보다 그래픽이 한참 떨어지니 게임성을 백날 내세워도 하는 유저만 하지, 높은 그래픽에 익숙한 일반적인 유저들은 아무래도 OME를 외칠 수밖에 없는거지요.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 우리는 왜 굳이 와우에만 집착하여 스토리를 논하는가?
블까와 블빠의 싸움은 다른데가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가 뛰어난 게임은 와우만 있는것도 아니고, 와우가 한국 게임시장에서 흥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한국=스토리x' 라는 논리가 성립되는것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테일즈위버와 아이온 두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아이온의 스토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실 수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온의 스토리를 괜찮게 봤습니다. 가독성이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전투에서 기억을 잃고 밑바닥 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는다'는 스토리적인 방향성은 분명히 봤거든요. 비록 후반으로 갈수록 시네마틱 영상의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저는 저러한 스토리를 충분히 숙지했고, 노가다에 질려 접을때까지 그 과정을 충분히 보아왔습니다. (이러한 스토리적 비중은 엔씨소프트의 후속작인 '블레이드 앤 소울'에서 오히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테라온라인은 처음부터 접을때까지 당최 뭘 위해 싸우는건지 모르겠더군요. 그냥 '만랩 찍기'가 목표랄까요?
테일즈위버를 한건 중학교때였는데, 이스핀 샤를이란 캐릭터에 정감이 가서 나중엔 '스토리를 볼려고' 게임을 하는 정도까지 갔었습니다. 이것으로 모자라서 이스핀 샤를의 스토리가 궁금해서 원작소설까지 샀을 정도니 2차 소비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전민희씨가 쓰신 원작소설 '룬의 아이들'에서 이스핀 샤를의 비중은 거의 없다시피 했죠. 게임과 소설의 차이는 둘째치고, 소설의 주인공부터가 보리스 진네만인지라…….) 만약 이스핀 샤를이란 캐릭터가 피규어로 나왔다면 저는 지금이라도 구매하여 집에 소장할겁니다.
하지만 제가 테라온라인을 했을때 캐릭터에 대한 정감은 기대도 못했고, 야한 옷차림에 로리로리한 엘린만 보았을 뿐입니다. NPC는 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요
3. 왜 우리는 흑백논리를 강요받아야 하나?
게임의 흥행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사회성 혹은 스토리만이 아닙니다. 게임의 성공은 그래픽, 게임성, 운영능력, 마케팅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결코 한가지만 뛰어나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성이나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도 운영을 발로하면 망하기 쉽상이요, 대한민국 한정으로 그래픽이 별로면 게임성과 그래픽이 좋아도 그것을 어필하고 유저를 끌어모으는게 쉽지 않습니다. 인디게임 같은 경우는 게임성이 괜찮다고 입이마르고 달도록 칭찬해도 마케팅능력이 0%에 가까운지라 홍보가 안되서 '인디'로 끝나기 마련이죠. (마인크래프트라는 변수가 존재하긴 하지만)
하물며 게임성의 하위범주에 속하는 사회성과 스토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둘 중 하나가 뛰어나도 나머지가 별로면 흥행여부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가 좋아봤자 그거 하나만 좋을 뿐 나머지가 필요없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와우의 스토리가 뛰어나다고 해서 그래픽이 필요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
테라의 사회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스토리가 필요없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래픽도 좋고 스토리도 괜찮고 사회성도 괜찮으며, 운영능력과 전체적인 게임성도 뛰어난 게임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게임을 갈구할 권리가 있으며, 게임회사가 그러한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해서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요소가 전체적으로 괜찮으면 안되나요?
왜 우리가 저러한 권리를 포기하고 둘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거죠?
왜 우리는 자장면과 짬뽕 둘중 하나를 양자택일해야 합니까? 엄마와 아빠 둘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질문에 '둘다 좋아'라는 질문으로 답하면 안되는겁니까?
어느건 필요하고 어느건 필요하지 않다는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게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부정할 필요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