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금까지 토론글 보니 온라인 게임의 스토리에는 패키지에 비해 다음과 같은 제한이 있다는 점을 많이 지적하시더군요. 정리해보자면
(1) 온라인 게임의 스토리에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서버를 내리기 전까지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해야 하므로
(2) 아무리 멋진 스토리라도 온라인 게임은 반복적이기 때문에,
모던 워페어와 같은 극강의 연출도 몇번 하다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즉 스토리에 너무 많은 역량을 투자하는 것은 가격대비 효용이 적다.
(3) 분기를 만들기 어렵다.
분기를 만들어 A, B라는 스토리 컨텐츠를 만들었을 때,
유저가 A, B 둘 중에 하나만을 택하는 상황에서는
제작자는 컨텐츠 2개 만들어야 하는데 유저는 하나만 체험하게 된다.
분기를 만들면 투자에 비해 컨텐츠가 1/2만 산출된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긴 합니다. 1의 경우 끝은 없어도 '결말'은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연출은 자본집약이 아니라 창의력집약 쪽이 더 크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연출에 익숙해지면 다른 게임을 하려 해도 허전함을 느끼기 때문에 있으면 좋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되면 하도록 하죠.
지금은 분기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참고로 유저의 행동에 의해 발생하는 분기들은(RvR에서 누가 승리해 그 지역을 장악하냐와 같은 것) 이전 RTS에서 힌트를 얻은 글에서 언급한 것이니 빼도록 하고, 제작자가 전달하는 분기에만 국한해 말하겠습니다.
1. 분기는 부캐릭터를 만드는 동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대수롭지 않은 분기여서는 안 되고 캐릭터의 육성 방향과 동선이 결정될만큼 큼직한 떡밥이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분기는 부캐릭터를 생성하는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캐릭터 생성의 의미는, 한마디로 '인구가 늘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 효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비탄력적 수요 창출을 통한 수익 창출
정액제 게임에게는 해당이 없는 이야기지만, 부분유료제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캐시템은 계정 단위가 아니라 캐릭터 단위로 결제해야 하니까요.
신규유저를 유치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신규유저 유치를 위해서는 '소모성 비용'인 홍보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홍보는 게임 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홍보로 신규유저를 유치하는 방법에 너무 의존할 경우 게임 본연에 투자를 덜하게 됨으로써 게임의 실질적인 성장이 저조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게임의 실질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 유저들이 보다 캐시템을 많이 지르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사행성 캐시템과 한정판 캐시템으로 유도하는 것이 당장은 단물을 삐먹어도, 한정판 캐시템을 많이 사는만큼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캐시템을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행성 캐시템과 한정판 캐시템은 꼭 필요한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가 탄력적입니다. 장기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죠.
하지만 부캐를 더 많이 육성하도록 하고, 그들이 정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캐시템(인벤토리, 아바타 아이템, 회복 아이템 등)을 꾸준히 구입하게 만든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탄력적인 소비를 유도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할 수 있습니다.
(2) 게임 내 경제의 활성화
부캐를 많이 육성하도록 하면 게임 환경 자체도 개선됩니다. 부캐를 많이 키우는만큼 아이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이러한 아이템들을 공급하는 유저들은 거래를 통한 이득을 얻는 재미를 보다 많이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실상 부캐 육성의 활성화는 직접적인 소비 촉진 정책이고, 결과적으로 기존유저들이 계속 사냥을 하면서 얻은 아이템들이 과도하게 공급되어 가치를 잃고, 궁극적으로 기존유저들이 해당사냥터를 도는 의의를 상실해 컨텐츠 사장 현상이 나타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부캐릭터 생성 활성화는 게임의 수익 향상을 통해 더 큰 규모의 패치를 가능하게 하고, 내적으로는 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기존 컨텐츠들의 의의를 유지하고 기존유저의 권익을 유지해줌으로써 게임의 질을 보존해주기 때문에 매우 가치로운 일입니다.
다시 분기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즉 분기가 부캐릭터 생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이라면, 분기를 만드는 게 단순히 스토리 퀄리티를 올리고 시나리오 라이터의 자부심을 충족해주는 (?!) 정도로만 끝나지 않을 거란 말이죠. 오히려 간접적인 파급효과로 게임의 질과 수익을 개선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다른 수단에 비해 유용한가? -> 유용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물론 온라인게임에서 부캐 생성을 결정적으로 부추기는 요소는 스토리가 아닙니다. '신캐릭터'- 좀더 세분화해서 말하자면 신스킬트리가 최우선 고려사항이고, 그다음에는 캐릭터 외형입니다. (실제로 마영전의 경우 이비는 시스템이 덜 정립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외형만으로 대거 쏟아졌습니다. 프리미어 오픈에서 그랜드오픈으로 넘어가면서 유저가 더 많이 생겨서 그렇기는 하지만, 이비가 등장할 때 초보 유저에게 필요한 레시피 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하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었죠)
문제는, 과연 스토리에 비해서 신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더 싸냐는 것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죠.
모던워페어식으로 과감한 연출을 때려부어준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하지만 스토리는 꼭 영상만으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텍스트, 그리고 정지영상 등, 보다 싸게 만드는 방법이 많습니다. 제작자가 창의적이라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능히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자본집약적 산업인 영화에서도 아주 가끔 저비용으로 큰 대박을 터뜨리는 독립영화들처럼요)
영상을 제작한다 해도, CG에만 의존하던 옛날보다는 더 적은 비용으로 영상 연출이 가능하고요.
결정적으로 스토리는 다음 후속 스토리를 쓰기 위한 뒤처리만 해주면 된다는 점에서 깔끔합니다. 작가가 실력이 있다면 장기간 이어나가도 무리는 없고요.
그에 반해 신캐릭터의 경우는 이야기가 복잡하죠. 당장 밸런스 조절부터 신경써야 하고, 스킬 동작 신경써야 하고, 장비도 새로 다 디자인해야 하고, 그외 기타 잡다한 점들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후속조치가 끊임없이 필요하죠. 또한 신캐릭터의 컨셉이 중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한정 찍어내는 것도 어렵습니다.
리니지 1, 2 때처럼 이펙트만 달리주는 방식으로 하면 모를까, 요새는 그렇게 하면 눈치보이죠. 액션성이 강한 MORPG에서는 직업 성별을 달리 주는 거 말고는 스킬 재활용하기도 어렵고. 어차피 모션은 따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점에서 재활용이라 말해야 할런지도 좀 햇갈리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까지 스토리를 '부캐를 만들어내야 할 정도'로 동기를 부여하고, 동시에 새로 만들어야 하는 작업량을 최적으로 줄이는 방안이 정형화되지 않았다 뿐이지, 이 두 방안이 마련된다면, 신캐릭터 개발보다는 더 빈번하게 '게임의 다양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신캐릭터 개발하는 공백기 중간에 밀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분기성 스토리는 투자한만큼의 독자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보완사항
스토리의 분기가 진정 가치로운 것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보완이 필요하겠죠.
-유저들이 부캐를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을만큼의 스토리
-부캐육성이 유리한 성장시스템
(스토리를 하고 싶어도 부캐릭터의 성장속도가 더디면 부캐 생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 분기 추가 시 추가될 작업량을 최적으로 줄이는 방안
(예컨대 전투를 재활용하는 방법. 똑같은 전투지만 분기에 따라 진영이 달라, 그 전투 이후 체험하는 스토리가 다르도록 만드는 경우. 혹은 A진영 스토리를 진행할 때는 성을 공격하는 입장, B 진영 스토리에서는 방어하는 입장으로 만들어 맵을 재활용하는 방법 등등)
결론
'현시점에서는' 비용대비 효용이 적다는 것은 저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제가 봐서는 '비용'을 줄이고 '효용'을 키우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짤 수 있다면 충분히 분기성 스토리도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익원과 게임 환경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 부캐 생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말이죠.
덤)
개인적으로 MMORPG에 비해 보다 높은 그래픽 퀄리티와 조작감을 추구하기 용이한 MORPG는 콘솔화 전략을 통해 수익원을 넓히는 방안을 썼으면 하는데, 그래픽이야 최근 게임들을 보아하니 콘솔과 비교해서 못봐줄 정도는 아니고 게임성만 좋으면 능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마영전, 블레이드&소울을 본다면)
조작감의 경우는 이미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스토리는 아직 콘솔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 같더군요. 콘솔판 출시하는 것으로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한다는 차원에서 스토리를 좀 수정해주면 안 되겠냐, 그리고 콘솔에서는 사실 상 분기성 스토리는 기본적인 컨텐츠이기도 하니 그것도 좀 고려해서-
*콘솔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느끼는 이유는 마영전 때문.
스토리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워낙 많은데 이건 개발대보다는 게임후기에 적는 게 나을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