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고 계신 내용이고 많은 토론이 오갔으나, 쓴 글이 있어서 뒷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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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셧다운제'와 '매출 1%제', 나아가 여성가족부의 게임산업 간섭에 반대한다.
1. 셧다운제는 청소년 게임 중독에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에 대한 구분이 없다. 여성부는 단순히 인터넷에 연결되는 게임은 모두 중독성이 있다고 치부하고 있다. 즉, 네트워크 게임이라면 테트리스, 바둑, FPS, MMORPG, 경마, 하물며 두뇌 트레이닝 및 교육적 게임 등등 모두를 막론하고 다 똑같은 유해성 마약으로 보는 것이다. 장르에 대한 구분이 없는 만큼 사람에 대한 구분도 없어서, 진짜 10대 중독자와 퇴근하고 바투 한판 하는 아버지와 게임이 직업인 프로게이머들 전부가 그 마약의 중독자다. 어찌됐든 여성부가 게임산업과 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1g도 없다는 것은 알 것 같다. 그런 여가부가 내놓은 게임 중독 해결 방안은 비단 셧다운제가 아니라 뭐라고 한들 설득력이 없다.
2. 셧다운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해결책이다. 당장 셧다운제를 시행한다고 하여도 (부모님) 주민번호 도용, 해외 게임 (주민번호 등을 아예 받지 않음), 콘솔 및 패키지 게임, 비공식 서버 이용 등 수많은 차선책이 존재하며, 그 모든 것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과 몇 달 전 네티즌들이 가장 중독성 있다는 7개의 소위 '타임머신 게임'을 선정했는데 그 중 6개가 싱글 위주의 게임이었다. 이 와중에 온라인 게임 하나 막는다고 어디까지 효과가 있을까. 하물며 어찌저찌 그 모든 게임의 접속을 원천봉쇄 해도 그 덕에 중독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마법 같은 근거 혹은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뭔가 있다면 분출구를 잃은 청소년들의 범죄율이 증가한다는 통계다.
3. 셧다운제는 두 가지 이유로 국내 게임산업의 세계화를 말아먹는다: (1) 일괄적인 0시~6시 차단 등은 해외 유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예컨대 뉴옥에 거주하는 미성년 게이머는 뜬금없이 10시~16시에 게임을 차단당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을 내버려 두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2) 국내기업이 외국기업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외국기업에게 셧다운제를 도입하라고 해도 들어줄 리 만무하며 (예를 들어 유튜브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으라는 한국의 요청을 시크하게 무시하고 한국 계정을 차단했다), FTA등의 이유로 강제로 명령할 수도 없다. 국내기업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외국기업을 대신해서 견제해 주려는 여성부는 일단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4. 여성부가 지적하는 MMORPG등은 이미 면밀한 심사와 책임부담 등의 명목으로 이미 다른 장르의 게임보다 높은 비용을 요구 받는다. 적어도 일괄적으로 1% 내라는 뇌 없는 방식은 아니다. 덧붙여 한국 상장기업의 평균 당기 순이익율은 매출액대비 2.7%로, 그 중 1%를 걷어간다면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순이익의 대부분, 혹은 그 이상을 빼앗긴다. 여성부의 자율참여라는 해명도 어폐가 있는데, 1%와 2000억이라는 정확한 잣대가 주어졌는데도 그것이 진정한 자율참여라고 볼 수 있겠는가? 말은 자율이고 실제로는 강제압박이 될 소지가 매우 높다.
5. 그나마 그 2000억에 대한 입장도 석연찮다. 토론회에서 이정선 의원은 매출의 10%를 모으면 4000억이 된다고 주장하였으나 후에 1%가 2000억으로 바뀌었다. 2000억의 10배가 4000억이라는 기적의 수학을 보여주는 여성부가 예산의 신중한 확보/투자를 고려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령 2000억의 기금을 모았다고 해도 그 많은 돈을 회식 외에 어디에 쓸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2000억이면 당장 막대한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된 '테라'를 5개쯤 만들 수 있는 액수다. 차라리 그 돈으로 여성부가 좋아할만한 건전한 게임을 만드는 게 여러모로 바람직할 것이다. 납득할만한 것이 있다면 여성부에서 사용하는 계산기는 너무 낡았으므로 예산을 좀 써서 새 계산기를 장만해야 한다는 점이다.
6. 사실 기업들은 이미 자율참여에 의한 게임중독해소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이 와중에 다시 자율참여에 의한 기금을 모으겠다는 것은 이제까지 존재했던 자율참여가 무의미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며, 결국 자신들이 하겠다는 자율참여 기금모집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건 뭐 자폭 돋네.
7. 그런 식으로 이익을 빼앗기고 더 힘들어진 기업은 참신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더 중독성 있고 더 상업적이고 더 자극적인 게임을 만들도록 강요 받는다. 그렇게 되면 여성부는 게임이 점점 더 악질적으로 변하고 있으니 그 덕분에 늘어난 게임중독 청소년들을 위해 더 많은 기금을 요구할 것이고, 기업은 더더욱 여성부가 싫어할만한 게임을 만들 것이다. 이상의 과정이 반복되면 기업은 언젠가는 무너지고, 셧아웃제와 합쳐지면 본격 사람들과 연락 끊고 혼자 하는 게임 권장하는 법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싱글 게임을 한다고 중독이 해결되느냐면 당연히 아니다. 2번 항목에서 말했듯 온라인 게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8. 1~7의 항목만으로도 여성부가 게임산업과 게임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의 종류에 대한 구분은 물론 프로게이머라든지 중독 원인의 과학적 접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무작정 전원 내리고 기업에게 기금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괜히 샤넬 살 돈 없어서 돈 걷는다니 회식비 걷는 중이라느니 욕하는 게 아니다. 여성부는 게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게임중독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 및 연구를 바탕으로 주장을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과 같이 게임문화를 몽땅 마약으로 몰고 산업의 발전을 방해하는 태도는 거둬야 한다.
상기 이유로 여성부는 '셧다운제'와 '매출 1%제'라는 탁상공론을 포기하고 더 이상 게임산업에 간섭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게임 산업 뿐만이 아니라 기타 유사한 엔터테인먼트 문화도 괜히 건드리지 말아라.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예산 돌려 사고 싶은 샤넬이랑 루이비통 사고 남은 돈으로 회식을 하기를 바란다. 그것도 문제는 문제지만 적어도 게임산업의 발전을 정면에서 방해하지는 않는다.
작성자 애오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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