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게임업계에 메갈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늘 그렇듯이 성대립 양상으로 흐르는 듯 하나, 게이머들은 이 프레임을 거부한다. 메갈과 페미니즘이 동류라는 인식과 전체 페미니즘 운동을 폄하하는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혐오발언에 대한 반대로 총의가 모이는 듯 하다.
일베와 메갈은 각기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를 놀이화한 느슨한 인터넷 집단이다. 이들은 한때 오프라인에서 그 세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저에 깔린 혐오정서는 대중의 포용을 얻지 못했다. 우리 시민사회의 자정작용은 그들을 용인하지 않았다. 외연확장에 실패한 그들은 나란히 온라인으로 사그라들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그 발언에 대한 지지 또한 올바르지 않다. 혐오발언이 난무하던 일베는 한때, 일부 정치권과 권력의 힘을 얻어 오프라인에서 세를 일구었으나, 이제는 그들만의 유니버스에서 자화자찬하는 일부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난한 사회적 자정작용이 있었다. 그들의 혐오발언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신원이 특정되는 공간에서 일베식의 혐오발언을 할 경우, 자신의 직을 걸 정도의 각오는 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일베와 마찬가지로 혐오발언을 일삼고 있는 메갈은 어떤가? 남성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숨길 생각도 없었던 이 여성우월주의자들의 난동은 '백래시'라는 용어로 브랜드 메이킹을 하고, 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탈을 쓴 채 페미니즘으로 위장하여 사회에 스며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을 페미니즘이라 오인했거나, 또는 알면서도 '이용'하려는 개인과 집단의 지원이 이어졌다. 그들에 대한 비판은 전체 페미니스트와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몇몇 인사들이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으나 무시되었다. 그 결과, 일부 극단적 여성우월자들이 전체 페미니즘을 과대 대표하는 작금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 일베리스크, 게임업계의 대응
2016년 초, 야심차게 선보였던 한 모바일 게임이 일베논란에 휩싸였을 때를 기억하는가? 특정 스테이지 번호 5-18에, 일베에서 주장하듯,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단어인 '폭동'이 사용되었고,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과 같은 숫자의 스테이지에는 '산자와 죽은자'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의도는 확인되지 않았으되, 현상만 남았다.>
해당 텍스트를 작성한 자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가 일베 회원인지, 또는 일베의 혐오발언에 동참하는 자인지도, 성별도 확인되지 않았다. 일베라는 집단의 패악질을 용인하지 못한 사회는 다만 일베를 연상시키는 그 특정 텍스트가 사용되었다는 현상에 집중했을 뿐이다. 게임 뿐만 아니라 온갖 커뮤니티가 들끓었다.
이후, 퍼블리셔 명의의 사과문이 게재되었고, 곧 개발사 대표의 사과문도 발표되었다. 문제의 단어들은 빠르게 수정되었다. 해당 텍스트의 작성과 검수를 담당한 책임자가 퇴사처리되었으며 대표 또한 사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몇 개의 단어가 신작 게임에 미친 영향은 치명적이었다. 이후 게임업계는 일베리스크의 현실적인 위험에 대해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 메갈의 집게손,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현재 스튜디오 뿌리의 남성혐오 논란은 여러모로 위의 사건과 비슷하나 또 다르다. 메갈에서 남성혐오의 표현으로 사용된 집게손은 정말로 애매모호한 심볼이다. 이는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텍스트도 아니요, 특정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제스쳐도 아니다. 지금 키보드 위에 놓여있는 여러분 각자의 손가락을 살펴보라.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도 살펴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일베의 제스쳐는 일베회원임을 인증할 때만 사용되었으며, 일부러 따라하기도 힘든 모양이다. 그러나 메갈의 심볼이자, 남성혐오의 상징인 집게손은 신체의 일부로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취하는 형상이다. 현상은 있으되 가치판단을 부여하기 힘들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마녀사냥이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 중 한 장면>
문제시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으면, 마녀사냥은 필연적이다. 어떠한 의도로 그러한 집게손을 사용했는지,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메갈의 혐오발언을 혐오하는 대중, 특히 메갈에 의해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집게손에 대한 편집증적 트라우마를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집게손이 메갈의 심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던 일베의 메시지를 떠올리게 한다. 불행한 사회현상이다.
이 손이 메갈인가? 저 손이 메갈인가? 아무런 맥락 없이 사용된 1프레임의 동작을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다. 그 중 SNS는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주효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관련자의 과거 게시물에서 메갈과 같이 혐오발언을 하거나, 이를 옹호하는 내용이 발견될 경우, 관련자의 모든 작업물은 혐오표현이 사용되었다는 낙인이 찍혔으며 거센 퇴출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메갈'을 옹호할 것이라 '기대'되며 SNS 활용도가 높은 여성들이 주요 타겟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스튜디오 뿌리의 한 재직자가 여기에 해당되었다. 그 결과, 스튜디오 뿌리의 PV는 남성혐오자가 혐오표현을 끼워넣어 제작했다고 단정지어졌다.
# 또다시 성대립 프레임, 고장난 계산기 두드리기
해당 1프레임의 맥락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의미를 가지고 제작된 것이라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여러 사람의 협업이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상 특정 의도를 부여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법률적으로 가해자는 특정되지 않았으며, 용의자의 고의성은 모호하며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는 존재한다. '메갈리스크'에 직격당한 게임업체들이다.
대중의 분노는 거대한 강과 같아서, 그 물길을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각 게임업체들은 혐오발언자의 작업물을 혐오에 시달린 유저들에게 공급한 셈이 되었다. 조치는 신속했다. 사태를 최초 인지한 후, 주말임에도 각 업체의 직원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넥슨의 경우, '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메이플을 유린하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고 언급함으로써, 본 사태가 '혐오표현'으로 일어났음을 강조하고, 구태의연한 성대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기대했다.
그러나, 사태는 어김없이 성대립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당장, 여성계는 "게임업계 및 게임문화 안에서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여성혐오몰이가 아직까지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메갈에 대한 비토로 시작한 본 사태는 일베와 메갈 성향의 누리꾼들이 그들의 주특기인 혐오발언으로 난장을 피우며 점차 극렬한 성대립으로 격화하고 있는 듯 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본 사태를 젠더 갈등으로 정의내렸다>
단언컨데, 본 사태는 원인은 '혐오발언'이다. 그리고 여기에 본 사태의 연착륙을 희망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하지만 이미 이점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음에도, 성대립으로 끌고가고자 하는 의도가 곳곳에서 분출한다. 대립을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하면 얻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러나 성과는 단기적이되 지속될 수 없다. 메갈로 과대 대표된 페미니즘의 약화는 이미 가시화 단계를 넘어 실존하고 있다. 메갈의 등장 초기, '기울어진 운동장', '미러링' 등으로 혐오발언의 난장을 용인했던 일부 정치권은 이미 손익계산을 끝낸 듯 잠잠하다. 판을 키워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 혐오발언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
한편으로, 이번 사태를 공론화한 게이머들은 '미흡할 수는 있으나'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끌어냈다. 넥슨을 위시한 게임업계에서는 '혐오문화에 대한 불관용 정책'을 천명했다. 일베리스크 사태를 거치며 혐오문화가 게임 문화에 유입되는 것을 막아냈다면, 이번 사태를 통해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혐오발언자'들을 배제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각 게임사가 진행중인 전수조사는 거대한 투쟁적 행위이며 또한, 그들 혐오발언자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익명성을 가진 공간에서 '은근슬쩍, 스리슬쩍' 혐오발언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나, 재직중인 회사와 관련되거나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발언 행위는 취업규칙에서부터 금지될 듯 하다.
표현의 자유 보장에 대해서 진심인 미국에서조차, SNS에서의 혐오발언은 징계 및 해고에 이를 수 있다. 세계 최대 HR 전문가 협회인 SHRM은 근로계약법 관련 칼럼(Employees May Be Fired for Hate Speech on Social Media)에서 한 변호사의 발언을 통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다음과 같은 유형의 게시물이 징계 조치나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
- 보호받는 모든 계급에 대한 모든 형태의 증오발언
- 근무 환경을 적대적으로 만들 정도로 심각한 발언
- 직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협
- 회사의 고객, 소비자 또는 커뮤니티 전체에 피해를 주는 발언
일부에서는 본 사태를 여성노동자에 대한 페미니즘 사상검증 및 부당해고 사안으로 프레임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넥슨과 스튜디오 뿌리는 B2B 계약을 맺은 것이며, 본 사태를 촉발한 원인 제공자는 스튜디오 뿌리 소속이다. B2B 계약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므로, 각각을 대표하는 변호사들이 이를 조율할 것이다. 원인 제공자는 아직 해고되지도 않았으며, 징계해고가 될 경우에도 고용주인 스튜디오 뿌리와 법적 다툼을 이어가면 될 일이다. 노동단체에서 정치적 쟁점화를 시도할 수는 있겠으나, 실무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넥슨을 비롯한 게임업체들의 강력한 스탠스에는 이유가 있다.
# 메갈의 남성혐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과거 메갈로 대표되는 집단을 페미니즘의 한 갈래라 오인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후 그들 대다수는 그들이 지지했던 사상이 대중을 포용할 수 없이 편협하며,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으며, 나아가 지지자 개개인의 실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체험했다. 현재 공개석상에서 메갈에 대해 공공연히 옹호하는 일반인들을 찾아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과거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단어에 경도되어, 혐오발언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착각한 이들이 남긴 무수한 흔적들이 산재해있다. 그들은 또다른 의미로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나 그들 행위에 대한 책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메갈과 달리 일베의 경우 국내에 사업자를 두고 있으며, 인터넷서비스 사업자 관련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범죄행위를 저지른 회원들의 신원정보는 일베 사업자에 의해 수사기관에 신속히 제공되었으며, 대부분 형사 처벌로 이어졌다. 민사소송도 뒤를 이었다. 그러나 메갈과 그 후신인 워마드는 아예 서버를 해외에 두었으며, 수사기관의 협조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운영자로 특정된 이들은 해외로 출국했다. 익명성이 보장된 난장판에서 온갖 범죄가 이어졌으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한마디로 외부에 의한 자정이 전혀 없었다. 어떠한 일을 벌여도 '미러링'이라는 단어로 용인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이러한 범죄행위를 가속화시켰다. 협박, 성희롱, 명예훼손, 사기, 저작권 침해, 성착취물 제작 및 공유 등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범죄가 메갈이라는 사이트 안에서 벌어졌다. 해당 범죄자들 중 처벌받은 것은 극히 일부로, SNS 활동 등을 통해 신원이 특정된 자들이었다. 이에 대해 자정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무시되었다.
미러링을 하는 목적이 일베와 똑같은 언어, 똑같은 혐오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똑같은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 보다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면 여성이 하는 미러링은 달라야 하지 않겠나,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방식의 미러링은 어떤 거창한 명분을 들이댄다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 -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워마드, 빨간약을 먹은 전사들'(2018. 7. 21)
메갈과 거리두리를 하지 못한채, 현재에도 그들을 옹호하고 있는 여성계의 입장은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2세대 페미니즘으로 낙후한 이들은 한발짝 나아가지도 못한채, 무수한 자기모순에 빠져 정체성조차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급진적 남성혐오자들은 여전히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관성에 휩쓸려 이들의 과격한 발언들을 제지할 의지를 상실했다.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지 못하는 집단. 이들의 결말이 어떠한지는 역사가 증명해왔다. 지금, 쏘아지는 무수한 시그널들을 그들은 과연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할 것인가?
이번 사태는 페미니즘 사상검열이 아니고, 노동자 탄압은 더더욱 아니며, 혐오발언에 대한 반대운동이다. 메갈은 극단적 여성우월주의자이며 주류 페미니즘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그들의 남성혐오발언과 행동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며, 사회의 용인 수준을 넘어섰다. 그들은 혐오발언 집단이며, 그들의 언행을 옹호하는 것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게임업체들의 혐오발언 봉쇄 조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게이머들의 혐오발언 반대 운동을 성대립으로 몰아가는 행태는 올바르지 않다. 여성계는 메갈과 선긋기를 하지 못한 실책을 저질렀으며, 이후 야기된 극심한 남녀갈등 양상과 현 사태에 대해 상당한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