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플레잉이란 용어는 모호한 뜻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롤플레잉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RPG의 가치와 가능성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RPG가 단지 타임킬러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인지, 다른 건강한 취미처럼 정서적, 지적, 사회적 측면 등 다방면에서 플레이어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지도 역시 우리들의 롤플레잉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롤플레잉에 대한 언급에서 캐릭터의 직업적인 측면, 가령 탱커나 도적과 같은 파티에서의 역할에서 그 의미를 부각시킵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RPG가 가진 가치를 지나치게 한정시킵니다. 싱글 플레이든 멀티 플레이든 플레이어는 RPG가 제공하는 가상공간을 통해, 하나의 사람으로서 개발자 또는 다른 유저 생생한 숨결을 만나게 됩니다. 또 그것과 플레이어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플레이어는 하나의 캐릭터를 생명력 있는 아바타로 승화시키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 초점을 두면 RPG에서 한 캐릭터의 역할은 단지 게임 내의 직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그 역할은 훨씬 다양한 측면을 통해 나타나는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의 캐릭터는 직업을 포함하여, 종족, 경제적 지위, 정치적 활동 등 수많은 통로를 통해서 자신의 캐릭터의 삶을 연출하게 됩니다. 다채로운 인생이 연극에 비유되듯, RPG 역시 다면적인 요소들의 총체로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외적으로는 게임의 세계관에서부터, 내적으로는 플레이어의 게임과 게임의 배경에 대한 이해, 그리고 게임 내부에서 캐릭터의 세세하고 구체적인 행위와 기억들이 캐릭터의 삶을 추동하고 그 방향성을 설정하게 합니다.
이런 넓은 의미로서 롤플레잉의 의미는 실제로 각종 RPG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비록 와우, 특히 리니지는 이런 롤플레잉의 측면이 약하지만, 와우든 리니지든 그것을 플레이를 하면서 위와 같은 상황을 통해 정서적 고무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 유저 또한 드뭅니다. 특히 이른바 말하는 '정통 롤플레잉게임'이라는 것들은 게임의 환경 면에서도 위와 같은 크고 포괄적인 롤플레잉을 더 잘 끌어냅니다. 실제로 여러 롤플레잉 안내글을 봐도 롤플레잉의 의미를 단지 직업에 한정된 역할로 제한하기는 커녕, 그것에 대해 매우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캐릭터의 삶이 단지 기능적인 측면에 묶이지 않고, 가상세계가 단순한 현실의 모사나 수동적 의미를 뛰어 넘으려면 우리는 이 롤플레잉의 개념을 더 풍부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가상공간 안에서 하나의 인격을 가진 아바타로서 생명력을 얻을 수 있기 위해서, 또 가상공간이 플레이어의 시간을 단순하게 소비하지 않고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가상세계를 위해서, 우리는 장기적으로 롤플레잉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물음은 단지 '~은 ~이다'의 형식 뿐 아니라 '~은 ~이어야 한다'의 형식까지 포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