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국내에서 1천만 관객을 모았다고 합니다. 곧 관객동원수 기준 1위 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사들이 얼마전에 나왔었죠. 아직도 그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으니 이 영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 영화관 뿐만 아니라 3D영화관에서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들, 무척 많습니다. 가까운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3D 영화 산업을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초부터 몇몇 정부 산하기관에서 3D 영화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지난 2월에는 서울시가 기술인력 양성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상암동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3D 입체영화의 영화의 가능성과 미래'라는 토론회를 개최하여 <아바타>를 토대로 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갔었죠. 국내에서만 1,200억원이 넘는 수익을 거둔 <아바타>의 충격이 대단하긴 했나 봅니다.
그런데 <아바타>가 불러온 3D 콘텐츠 열풍을 바라보면서 우려가 듭니다. 우리가 너무 기술 종속적인 자세로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하고 말이죠.
물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기술의 발전이 콘텐츠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시각적인 면에서 첨단 기술은 소비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터미네이터>에서 두눈에 쌍심지를 켜고 덜덜거리며 걷던 껍데기 훌렁 벗겨진 아놀드 슈워제네거(T-500)은 2009년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에서 유연한 관절을 선보이며 주인공을 피튀도록 두들겨 팹니다. 장족의 발전입니다.
여 주인공의 표정 연기는 안면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나비 캐릭터에 반영됩니다.
<아바타>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대부분의 장면을 CG로 만들었습니다. 배우의 안면에 센서를 붙여 표정연기까지 잡아내어 CG로 재구성해버렸습니다. 특수제작된 카메라를 통해 블루 스크린 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가 실시간으로 3D로 구현되는 것을 보면서 촬영을 진행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카메라 속에서 울창한 판도라 밀림 속을 내달리는 나비족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죠. 게다가 기존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을 들여 3D 영화 필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술의 혁신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입니다.
사람들은 늘 현란하고 새로운 시각효과를 원합니다. <아바타>는 이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뿐일까요? 기술의 발전이 콘텐츠의 질 향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일까요?
킬링 타임용 영화를 생각해봅니다. 피와 살점이 튀기는 고어물이나 현란한 카레이싱이나 혹은 근육질 남자들이 툭툭 치고박는 마샬아츠류의 액션물이거나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쩌다 튼 케이블 TV에서 아무 생각없이 잠시 볼 수 있는 영화에 아바타 제작팀이 참여했다고 해서 그 영화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아이콘이 되는 것일까요? 아마 그럴 확률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스토리 텔링이 조금은 부실한 그야말로 킬링 타임용 영화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엄청난 돈을 들여 현란한 시각효과를 사용했던 영화들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준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스토리입니다. <블레어 위치>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의 저예산 영화가 성공한 것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프레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존 사건으로 착각할만한 구성과 재기발랄한 여러 아이템들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아바타>는 말 그대로 또 다른 몸, '아바타'가 영화의 핵심입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는 것에 익숙하면서도 설레어하는 관객들에게 <아바타>는 새로운 삶에 대한 그들의 동경과 흥분을 자극합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판도라 행성과 자원개발과 원주민 사이의 대립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집어넣어 전체 그림을 만들어 낸 것이죠.
<아바타>의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의 고뇌는 관객들에게서 공감을 자아냅니다.
굳이 3D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일반 영화관에서 본 <아바타>의 스토리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가 그의 아바타를 통해 다시 한번 두다리로 서고 달릴 때, 발바닥으로 흙의 감촉을 맛볼 때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푸른 나비족으로 변신한 그의 흥분에 동조하게 됩니다. 두 삶을 저울질 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고뇌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영화에는 독특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 키워드는 바로 그것이 가진 스토리에서 나옵니다. <트랜스포머>에서는 변신과 인간보다 인간같은 로봇이며, <올드보이>는 복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바타가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익히 드러난 금광, 벌목업자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대립 구도를 단순히 차용했다면 관객들은 지금과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기술은 스토리를 담아내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기술 그 자체만으로 콘텐츠가 완벽해질 수는 없습니다. 이는 IT업계의 영원한 화두인 디바이스와 콘텐츠의 결합에서도 드러납니다. 삼성의 옴니아2가 아이폰에 완패하고 안드로이드 폰에 차세대 라인업을 내주는 상황은 콘텐츠의 질이 디바이스의 매력도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문제는 스토리입니다. 아무리 최신의 비싼 고가장비를 구입하고 그것을 다루는 기술자를 양산하더라도 스토리의 구성이 빈약하면 <D-War>의 악몽이 재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재림하는 그날이 오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너무 겉에 보이는 것만 연연하는 것 같습니다. <아바타>의 성공 이면에는 십수년 동안 시나리오를 다듬어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눈에 잘 보이는 고가 장비를 구입하고 인력 양성센터를 세운다고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자 노력하는 감독과 작가들의 노력에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 막장 드라마 작가가 <아바타>를 폄훼했던 사건을 반추해보니 우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재벌가의 으리으리한 인테리어가 마치 최신 사양의 3D 카메라인 것만 같아 씁쓸해집니다. 카메라에 점 하나 찍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