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겉으로 보이는 건축양식, 복식, 사물 등만을 '한국문화'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대 한국인은 대부분 무협과 판타지의 영향을 받아서, 무협식이나 판타지식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한국의 전통적 술법체계는 중국이나 일본과도 다르고, 서양과도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자료를 수집한 한국 전통의 술법체계에 대한 내용을 소개차원에서 간단히 써보겠습니다.
우선 삼국시대. 삼국사기를 보면 김유신에 대한 일화가 나옵니다.
건복 29년(612)에 이웃의 적국들이 한층 더 핍박해오자 유신은 장렬한 마음이 더욱 격동하여 홀로 보검을 차고 인박산 골짜기에 들어갔다. 향을 사르고 하늘에 고하여 빌기를 마치 중악에 맹세했던 것처럼 하고, 아울러 “천관께서는 빛을 드리워 보검에 영험함을 내려주소서!”라고 기도하였다. 3일째 밤에 허성과 각성의 빛무리가 밝게 아래로 드리워지더니, 보검이 마치 움직이는 것 같았다.
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무리들이 공에게 몸을 바치기를 원했다. 이에 지혜와 용기가 있는 낭도를 뽀아서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고 고사들과 힘써 결속을 맺었으며, 중악에 들어가 노인에게서 비결을 받았다. 신변에는 늘 신병들이 있어 좌우에서 호위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김유신은 몇십일씩 정성을 들여서 기도하고 주문을 외는 '주문수련'을 통해 신병과 신검을 부리는 술법을 얻었습니다.
유신이 죽기 전의 기록을 보면, 그런 내용을 더 확인할 수 있죠.
여름 6월에는 간혹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든 이들 수십명이 김유신의 집에서 울며 떠나 조금 후 사라지는 것이 사람들 눈에 보이기도 하였다. 유신이 그말을 듣고 말하기를 “이것은 필시 나를 보호하던 음병(陰兵)들이 내 복이 다한 것을 보고 그 때문에 떠난 것이니 내가 이제 죽겠구나”하였다. 10여일 뒤에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여기서 음병=신병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신력을 행사하는 존재에 대한 내용입니다. 앞뒤가 서로 호응하고, 당대의 역사서로 보이는 화랑세기와도 모순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629년 낭비성 전투에서, 김유신은 단신으로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역전을 이끌어 내는 괴력을 보입니다. 개인의 능력으로 전투의 판세 자체를 바꾼 기적을 보인 거죠.
이 밖에도 김유신이 틈틈히 술법을 쓰는 예화는 삼국사기에 등장합니다.
이 기록 자체는 고려시대 말에 김부식에 의해 채록되었으므로, 고려시대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래도 신라시대 술법체계의 원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현대까지 전승되고 있죠. 즉 '기도와 주문수련을 통한 신통력 획득'이죠.
자료 찾아보면, 실제로 김유신이 수련했다고 전해지는 주문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주문수련 체계는 많이 나와있습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탈해와 수로의 도술대결부터, 이후 수많은 야사에 그런 신비한 이야기들이 전해지죠. 대부분 김유신처럼 어떻게 수련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술법들을 쓰는 이야기는 나옵니다.
심지어 현대에 기록된 책에서도 '월광검법'을 수련하여 4명의 신장을 거느리는 검법가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냥 보면 황당무계하지만, 기존의 술법 체계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그 사람이 미쳐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또 참고할 만한 자료는 북창 정렴의 '용호비결'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불교전래이후, 사상계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직접적으로는 유교식 삼교회통인 성리학이 한반도에 전해지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용호'를 숨을 내쉬는 것과 숨을 들이쉬는 것으로 보는 인식은 조선 초기 김시습의 기록에 처음 등장하니까요.
그리고 조선중기 북창 정렴에 의해 '용호비결'로 완성됩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직전,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 전문이 실려 있어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역사적으로 그 영향은 무척 컸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시기에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저서에도 도가식 도인술의 일종인 '팔단금'의 일종인 '활인심방'도 있을 정도죠.
또한 조선 한의학의 성립을 알리는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는 것에서도 용호비결이 끼친 영향을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 있죠.
즉, 중국식 기공법과 전혀 다른 형태로 성립된 한국 전통의 수련법이 바로 '용호비결'입니다.
여기에는 몇갑자 하는 내공 같은 개념은 전혀 없고, 숨을 길고 가늘고 고르게 쉬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신수련법입니다.
그래서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 경지가 깊어지면 위에서 언급한 주문수련도 보다 쉽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해법'이라는 술법이 있습니다. 이는 불노불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술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진시황은 불노불사약을 먹어서 장수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송시대까지 이어지죠.
이후 원나라 들어서면서 전진교에 이르러서는 단전에 기를 쌓아 '내단'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까지는 육체를 가진채로 불노불사를 추구하는 수련입니다.
이것이 변화해, 정신체(원영신)을 구축하여 육체 없이도 영원히 살수 있도록 추구하는 과정에서 연구된 것이 시해법이라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육체에서 정신을 분리시키는 술법입니다. 즉, 일종의 유체이탈술이면서도, 자신의 정신을 강화해 육체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도록 수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술법이 본래에는 대단히 복잡해서 시간과 장소, 눕는 방위 등등을 수천가지를 복잡하게 계산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후기 들어서는 호흡법을 바탕으로 딱 8가지만 계산하면 시행 가능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이런 식의 호흡수련은 현대까지 이어집니다. 흔히 말하는 단전호흡, 단학 등이 바로 그러한 후예죠. 하지만 현대의 호흡수련은 서양철학의 영향을 받아 좀 더 깊게 발전했습니다.
즉 더이상 노골적으로 불노불사와 신통력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오래살겠다는 욕심을 부리거나, 초능력을 얻겠다고 수련하다가는 정신병적인 망상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망친다는 것이 증명되었거든요. 혹여라도 그런 식의 초능력, 불노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은 '사이비'라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신통력을 얻어봤자 쓸데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도 영향이 큽니다. 하다못해 축지법이 실제로 가능해 그걸 익혔다 하더라도, 그걸 수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동안 돈을 벌어서 차를 사면 되거든요.
그런 식으로 과거의 '신통력'이 현대에는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추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에서는 '죽음'을 직시하고 그러한 죽음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을 단련하는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즉, 좀 더 근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뀌었죠.
결론 : 한국의 전통술법체계를 간단히 소개하였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좀 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죠.
요약하면, 우선 전통적으로 '기도'와 '주문'을 통해 수련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조식호흡'수련이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조식수련을 '기본'으로 삼고, 기도와 주문수련을 통해 능력을 얻는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이게 기록을 통해 살펴본 한국 전통의 술법체계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축양식, 복식, 음식 같은 것은 누구나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기존의 무협과 판타지, 서양식 근대교육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제거하고, 역사 자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혹여 참고 자료 목록이 필요하시면, 개인적으로 쪽지 날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