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묵은 게임업계 종사자 입장에서 보는 불법복제 논란. 수박남자 02-16 조회 17,315 공감 13 32
95년도에 알바로 게임업계 물 먹기 시작하면서 2012년까지 계속 먹고 있는 사람입니다.
...생각해보니 참 배부르게 먹었네요.
 
한 건 없는데.^^;
 
끊이지 않는 논란인 '불법복제와 패키지시장 멸망의 상관관계'에
조금 기름을 끼얹어볼까 하는 나름 건방진(^^) 생각이 들어 끄적대보려 합니다.
 
성공하고 잘나가시는 분들의 예나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던 화이트데이사건 등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살짝 벗어나서, 오랫동안 이 업계에 있으면서
별달리 내세울 게 없는 업계 종사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요.
 
재미없어도 한 번 읽어나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 쓰레기 게임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대다수의 게임의 운명이기도 한 말이죠.
 
"이 게임 쓰레기야! 누가 이딴 걸 돈주고 사? 말도안돼!"
... 가슴찔리는 말입니다. ㅠ_ㅜ
사실 맞아요. 대부분의 게임은 별로 재미 없어요. 신선하거나 깊이도 없는 뻔한 기획에
발로 만든 수준의 그래픽과 음악, 버그투성이의 프로그램까지.
 
돈은 커녕 내가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 개발사를 폭파하고
개발자들 모조리 목매달고 싶어지는 게임들이 흔하죠. 
 
나름 체계가 잡힌 해외 유명 개발사의 게임들도 종종 Painful! 평가를 받고는 하니 
그보다 더 못한 회사들의 게임들이야 말할 바도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임도 주제넘게 대작게임과 같은 가격을 붙이고는
당당히 '사주세요!'라고 매대에 올라가죠.
 
구매자 입장에서는 '사기야!'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어요.
바로 그 "쓰레기 게임들의 존재가치" 라는 부분입니다.
소비자들에게는 오히려 손해일 것으로 보이는 그 게임들의 존재가치는 무엇일까요?
 
제 결론은 이래요.
"명작이 나올 수 있는 시장규모의 확대와 유지"
무슨 이야기냐 하면, 게임, 영화, 만화 혹은 다른 어떤 무엇이든간에 일정규모 이상의
시장이 되고 나서야 일정 퀄리티 이상의 컨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장의 인식도 바꾸고 몇십년이 지나도 기억할만한 명작들이
꾸준히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어떤 게 망작이고 어떤 게 걸작이 될지 보는 눈도 생기고, 어떻게 해야 손해 좀 덜보고
게임을 만들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최소한 똥걸레 같은 망작은 피할 수 있는지도
노하우가 쌓이고 말이죠.
 
게다가 이런 게임들은 초보 개발자나 실력없는 개발자들이 단련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뻔한 기획을 반복하면서 게임개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정제된 기획을 할 줄 알게되며
안정적인 서버를 짤 줄도 알게 되지요.
 
블레이드앤소울의 그 므흣해지는 그래픽도 그렇구요.
 
결국 여러분이 즐기는 "할만한 게임"이 일 년에 한 두 개라도 나오는 데에는
그 수 십 배의 쓰레기 게임들이 나오고, 그 수 백 배의 프로젝트가
투자자의 돈을 낭비하고 좌초한 결과물이에요.
 
그리고 한국만의 특징도 아니에요. 쓰레기를 만들거나 베낀 게임만 만드는 것은.
90년대에.. 아니면 2000년 언저리에 해외 게임잡지에서 봤던 칼럼이었는데 
기자가 게임사들을 방문해보면 C&C가 히트치니까 다들 RTS 만들고 있다. 라며
답답해하는 내용이었죠.
 
"이번 프로젝트 망하면 우리 회사가 망합니다. 그래서 안전빵으로 RTS 만들고 있어요"
 
라는 곳들도 있는데, 도대체 베낀 게임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으며
그게 안전빵인가? 라는 식이었어요. 답답하죠? ^^
 
그러니까 쓰레기 게임 너무 까지는 마세요.^^;
누구는 쓰레기 만들고 싶어서 만드나요. ㅠ_ㅜ
 
 
패키지와 복돌이 논쟁은 결국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아타리쇼크마냥 쓸만한 게임을 찾는 것은 우연히 로또 1등을 1년 내내 맞는 수준이 되어 
망해버린 게 아니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저는 한국에서 패키지 게임이
망한 것은 한국이라는 지역 시장의 특성에 따른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유저를 탓할 것도, 제작사를 탓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작자들은 시장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조성해나가지 못했고,
유저들은 누가 어떻게 죽어갔던 간에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결과가
한국의 게임시장이거든요.
 
하지만 누구도 '내 탓이오'라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죠.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복돌이탓/쓰레기게임탓 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더 잘못이 있는가?" 라는 질문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유저들만 유달리 XXXX 하다" 라는 것은 결국 그 동네 시장이 그렇다는 겁니다.
 
싫으면 다른 시장을 개척하던가 아니면 시장에 맞는 방법을 찾아냈어야죠.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소비자에 맞춰서 그 방법을 개량하구요.
 
한 때 스타크래프트 배틀넷 방식이 해법인 듯 했지만 배틀넷 만드는 것도 큰일뿐더러
프리서버도 많았으니 결국 해법이 안되었죠. 그냥 불법복제 구해서 프리섭 가면
되는데요 뭘. PC방이야 고객들과 단속 문제 때문에라도 정품을 구매해야 했지만...
 
생각해보면 개발사 측이 너무 약했던 겁니다. 시장에 적응을 못한거죠.
 
시장은, 소비자는 태생이 잔인하고 악합니다. 개개인의 본성과 상관없이
집단이 되었을 때의 특징입니다.
 
게임에만 예외이기를 바래서는 안되었어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양 쪽 다 푸념일 뿐이라는 겁니다. 
 
아쉬워하고 그리워해봐야 어쩔 수 있나요. 이미 지나가버린 일인걸.
하지만 끊기진 않을 거 같아요.^^ 계속 욕하는 유저와 과거를 그리워하는
개발자가 남아있는 한.
 
제 생각은 그래요. 누구 탓이다. 라고 싸우기보다 지금 상황에서 개발자들은 먹고 살면서 
유저들은 좋은 게임을 싸게, 혹은 게임에 적절한 가격을 주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훨씬 더 생산적일 거에요.
 
사실 그러면 개발자도 좀 참신한 게임을 만들 수도 있을거구요. 유저분들이 그렇게
목말라하는..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패키지게임을 팔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지도 모르죠.
고속인터넷 등 기반 인프라가 계속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OnLive' 같은게 일반화되면 해법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서로서로 미워하지 말구요.^^
 
사족 : 그래서 온라인 게임은 좀 나은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좀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무료일 때 게임 해보고 재미없으면 접어도 되잖아요.
 
개발자는? 투자자와 게임회사 사장님 등골을 빼먹으면 됩니다!
 
사실이 그랬어요.^^ 온라인 게임이 돈된다고 마구 투자받을 수 있을 때
많은 순진한 분들이 제 2의 김택진을 꿈꾸며 전 재산 털어먹고 망하셨죠.
 
도시전설급인데, 어떤 회사 사장님은 플레이 데모라고 동영상을 만들어서
가지고다녀서 그걸로 15억인가를 투자받은 뒤 튀었다더라! 라는 소문도 있었거든요.
플레이 데모 캡쳐한 동영상처럼 동영상을 만들어서 투자자들을 낚았으니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죠.
 
그런데 이거 소문으로만 들었던 거라 진실인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금맥이었던 투자자들도, 순진했던 사장님들도 이제는 닳고 닳아서 어지간해서는
개발자들이 등쳐먹기 힘들어졌어요. 아 슬프다. ㅠ_ㅜ
 
개발자들이 사라지지 않는한 게임은 계속 나올거고, 태반은 쓰레기일 거에요. 
 
쓰레기는 쓰레기대로, 명작은 명작대로 즐겨주세요.^^
 
개발자분들. 우리도 포기하지 말자구요. 통장보고 한숨좀 그만쉬고.. ^^
 
유저분들도 꿈 때문에 게임판 들어와 현실에서 허덕이는 많은 개발자분들이 사실은
여러분의 삼촌이나 아버지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봐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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