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무슨 재미로 하세요? KNDM 03-12 조회 25,548 공감 10 50

제목에 어그로가 충만하죠?

 

자극적인 제목으로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사실은 콘솔 게이머와 온라인 게이머를 비교해서 비하하려고 채택한 제목은 아니에요 xD

 

저는 제 자신에게 제목과 똑같은 내용을 질문해봤습니다.

게임 개발에 뜻을 두고 난 뒤 항상 제 자신에게 질문하던 것이었지만 최근까지도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지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접해 온 사람의 특징이 항상 그러하듯, '게임이라면 이래야지!'라는 틀을 가지고 온라인 의 재미를 평가하려니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참 많더라고요.

 

제가 이전의 글들에도 적어놨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일본의 노지마 미호 교수(세이케이대, 정보 전략)의 논문인 '人はなぜ形のないものを買うのか'(사람은 왜 형태가 없는 것을 구입하는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B5판, 약 200페이지 정도되는 이 책을 읽고나니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온라인 게임에 대한 환상이 한방에 역전되더군요. 특히나 장시간 콘솔 게임을 플레이하며 다져왔던 어떤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선입견이 한방에 박살이 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 책을 읽고 나서 느끼게 된 점을 여러분께 공유하고자 글을 씁니다.

 

 

1. 온라인 게임은 도대체 뭘까요.

온라인 게임이라는 오락의 도구를 평가할 때, 포커스를 두어야 하는 것은 '온라인'이라는 단어일까요, 아니면 '게임'이라는 단어일까요.

게시판 등지에서 온라인 게임의 평가 기준으로 흔히 거론되는 것들을 두고 본다면 '게임'이라는 측면에 집중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해 보입니다. 네트워크로 뭘 하든 간에 일단 게임은 게임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약간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됐습니다. 예전에 스토리 텔링에 대한 격한 논쟁이 오고 갔을 때부터 멋진 시나리오 자체가 온라인 게임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였지만, 사실 그 근거가 좀 부족했었죠. 기껏해야 '그럼 리니지는 왜 떴냐!'가 다였으니까요.

 

논문 안에서 노지마 교수는 사람들이 온라인 서비스를(유튜브나 온라인 게임을 포함하여 포괄적으로)이용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일본의 니코니코 동화에 대해 언급합니다. 니코니코동화는 월 525엔의 프리미엄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수는 유튜브와 니코니코 동화를 비교하면서, 태생적으로 그 둘 사이의 과금제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유튜브와 니코니코 동화는 동영상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라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이용방식에서 약간 차이가 나는데, 유튜브의 경우는 '시청'이라는 개념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에 니코니코 동화는 동영상 자체를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제공하지요.

댓글을 다는 방식에서 이러한 차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유튜브의 경우는 우리에게 친숙한 탑 다운 방식의 댓글리스트를 제공하지만, 니코니코 동화는 유저들이 동영상의 장면마다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 수가 있습니다. 가끔 돌아다니는 니코니코동화의 동영상을 보면 화면에 유저들의 댓글이 오버래핑되어 출력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는 이것이 니코니코 동화가 프리미엄 서비스에 요금을 매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단순히 동영상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듯한 방식의 댓글 시스템이, 이용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다'라는 사회적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 방식의 차이는 두 사이트의 사용자 평균 체류 시간에서 2배에 가까운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다시 말해,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동기는 다양(이용 or 커뮤니케이션)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로부터 '지갑을 열어도 아깝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서비스 자체의 기능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에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대목을 읽고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슬슬 의심을 하기 시작했지요.

 

결국, 제 안에 자리잡고 있던 '게임을 잘 만들면 사람들이 많이 플레이할 것이다.'라는 논리는 '사람들이 많이 플레이하는 게임이 잘 만든 게임이다.'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눈을 돌리고 보니 게시판에서의 싸움을 주도하는 몇몇 사항들에 대한 시각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 그래서 주장하고 싶은 게 뭐냐?

저는 감히 이렇게 주장해보려고 합니다.

 

온라인 게임은 '대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 얻고 싶은 건 결국 좀 더 발달된 형태의 '대화'라고 말이죠.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고, 대화를 통해서 친구도 사귀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이런 것들이 온라인 게임의 진짜 역할, 그리고 게이머 여러분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자 하는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자면 게임의 장르나 타이틀은 언어, 게임의 컨텐츠의 다양성은 대화를 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개수, 뭐 이런 것들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언어(장르 혹은 게임)를 선택하여 그 언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컨텐츠)을 조합해 대화를 하게 되겠죠.

 

그리고 게임을 통한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대화가 통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겠고, 자기보다 말을 잘하는, 혹은 서투른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며 커뮤니티를 이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게임 자체가 대화의 수단이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지면 그 사회는 조물주가 큰 실수를 하거나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쉽게 와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회에 환멸을 느낀 누군가가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다른 언어를 습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한다고 해도 기존의 안정적인 커뮤니티, 즉 보금자리를 포기하고 미지의 세계로 떠날 사람들은 많지 않겠죠.

 

WOW의 경우를 예로 들어봤을 때, 사실 게임 자체의 완성도가 이렇다 저렇다를 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와우 베타 시절에는 정말 끔찍한 버그도 많았고, 밸런스 논쟁도 끊이질 않았죠.

 

WOW는 단지 새로운 언어(라기 보다는 세련된 언어)를 가져왔을 뿐이고, 지금까지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만큼의 인기를 얻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기존의 국산 MMORPG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스템들과 서사적 완성도, 다양한 컨텐츠들은 게이머들에게 좀 더 다양하게, 그리고 다른 이들과는 차별되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돌풍의 주역인 LOL의 인기도 대화라는 측면에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저는 LOL의 인기가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유연성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챔피언이 많으니 그냥 자기한테 가장 잘 맞는 걸 쓰면 되죠.)

게다가 조물주인 라이엇 게임즈가 누구 한쪽 얘기에 편을 들지 않고(밸런스) 공평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거구요.

 

3.결론

약간 성급하긴 하지만 더 길면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이만 줄이려고 합니다.

결론 세줄 요약으로 하겠습니다.(줄이 늘어날 수도 있음)

 

1. 온라인 게임은 또 다른 형태의 대화다.

 

2.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그 안에서 친구나 적을 만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곳에 둥지를 튼다.

 

3. 유사한 게임들이 기존 게임의 풀을 끌어올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제공하는 언어가 게이머에게 더 자유롭고 적합하지 않은 이상 그가 속한 사회에서 빠져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이건 개발자로서 내린 결론인데요.

 

게임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은 단순한 볼륨이라 퀄리티가 아니라, 그것으로 부터 파생되는 유저들의 대화에 얼마나 다양한 변주를 주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이다.

 

앞으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달려나가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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