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게임업계에서 시니어급 기획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댓글 다 보지도 않았습니다만, 첫글을 본 인상으로 그냥 업계에 먼저 일하고 있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워서 애정어린 충고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그냥 결론은 글쓴님이 좀 어린 것 같네요.
그 이상을 가지고 업계에서 5년쯤 굴러보신 다음에 다시 한번 이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약간 격한 표현을 쓰자면 업계 전체를 또라이 취급하고 계시는 지금은 어떤 논쟁도 소모적인 것 같네요. 그리고 새로운 것 예술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도 스스로에게 독이 될 뿐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볼게요. 최초의 4바퀴 자동차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엄청난 발전이 있었지만,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자동차는 4바퀴고 기름을 통해 굴러가며 기본 메커니즘은 동일합니다. 지금은 초기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생기고, 많은 유저(?)들이 생겨나 업계가 성숙해졌죠.
자동차의 역사를 보면 그 과정에서 별의 별 희한한 실험들이 다 행해졌기 때문에 그 결과 지금처럼 유선형의 늘씬하고 소음도 작고 주행성능도 좋은 차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게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하구요. 비록 게임이 자동차처럼 생산공정이 딱딱하지 않은 관계로 훨씬 더 다양한 시도를 쉽게 할 수 있지만, 역시 게임의 본질은 재미이고 재미를 팔아 돈을 버는 속성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자동차나 게임이나 크든작든 이것저것 붙여보고 바꿔보는 시도 역시 발전의 한 과정입니다. 이를 부정하지 마세요.
님의 맘에 들지 않더라도 백미러를 50개 달았건, 엔진을 100기통으로 했건 그런 하찮은 부분조차 나름 개발자들의 고민한 결과입니다. 그들 역시 밤새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으며, 2% 다르고 다 똑같은건데 뭐하러 저런짓을 했느냐고 열내면서 비난해보았자 님이 바보인거죠.
실제로 그 정도만 달라도 매우 효과적인 부분을 정확히 개선한 경우 성과를 거둔 사례가 많으며, 그러한 시도가 이 이 업계를 움직여 왔습니다. 리니지는 1에 이어 2도 대성공이었고, 알투, 로한...도 그런 케이스이며 많은 기획자들이 자신의 이상에 반하는 이들의 실패를 바랐지만, 성공했죠 ㅎ 실제로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이 대열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와우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물론 잘 만들었죠. 하지만 무조건 찬양을 하지 말고 냉정하게 바라보세요. 그들도 역시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와우는 명백히 MMORPG입니다. 리니지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리니지가 디아블로에게 배워갔듯이), 그 이후에 나온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에게서 좋은 것을 배워갔고 자신의 것을 덧붙여 만들어낸 것입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여 이전의 여러가지 잘된 사례들을 짬뽕한 결과라는 거죠. 백미러를 10개 달았던 많은 이들의 실패가 있었고, 유선형 디자인의 성공이 있었기에 그들도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가끔 자동차는 아니지만, 운송(재미)만 공유할 뿐 완전히 개념이 다른 자전거, 제트기, 글라이더, 호버보트가 나오기도 합니다. 닌텐도 DS, 다마고치 같은 경우가 좋은 사례일듯 합니다.
참고로 저는 알피지쪽에서 일한 적이 없고 그쪽으로 갈 생각도 없습니다. ^^
맨날 비슷한 게임들이 쏟아지고 사라지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그런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으며 님처럼 독설을 뱉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님이 똑같은 자동차를 만들기 싫고 스포츠카나 제트기를 만들고 싶다면, 자동차 회사에 가서 경영진을 구워 삶아 투자를 받고 그걸 만드세요. 하지만, 자동차 기술자를 뽑는 자리에서 제트기 이야기를 하면 아마 잘 뽑히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제트기를 만들자고 경영진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구요.
님이 왜 어리다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님이 정말 열의가 넘치고 자신이 있다면, 집을 저당잡히고, 빚을 내서 개발을 하세요.
성공하면 됩니다.
이 업계에서 성공하신 분들 상당수가 그런 피눈물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이겨냈죠.
(물론 실패하신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ㅜ.ㅠ)
남이 주는 월급 안정적으로 받아가면서 개발 성공도 확신 못시키는 제트기를 개발하려 하고,
받아주지 않는다고 업계가 모두 바보네 멍청이네.. 이런식이면 누구라도 곤란할 겁니다. ㅎ
만약에 님이 세단 승용차를 정말 이쁘게 잘 만들어내서, 업계에서 인정받는다면 그때에 가서 새로운 도전으로 스포츠 카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꽤나 설득력이 생길 수도 있고 믿고 투자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님이 지금 그 정도 신뢰를 얻고 있나요?
언제나 남을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님은 생면부지의 사람이 2년쯤 뒤에 200을 벌어줄테니 100만원만 달라고하면 선뜻 주겠어요? 게다가, 지금 이 바닥에는 님처럼 스포츠카나 제트기나 호버보트를 개발하겠다고 말로만 외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경차가 다 똑같고 성능도 별로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도 할 수 있죠.
초심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에게도 제트기를 만들 꿈이 있습니다.
어느새 경력 5년차지만, 이 업계에는 비교할수록 항상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훌륭한 분들이 정말 많죠.
알면 알수록 제가 부족해서 하나하나 신뢰를 쌓고 배워 내공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한국보다도 더 힘들 중국에서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꼭 이상을 실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