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의 성공에 대한 그저 그런 잡소리 코코이체 04-22 조회 2,222 공감 1 18

0. 공리

 

게임의 재미는 몰입도와 연관이 있다.

 

(공리에 태클이 많이 걸려서 수정했습니다. 물론 몰입도랑 상관없이 재밌는 게임도 있겠지만, 그런 거 다 생각하면 이론을 만들 수 없습니다. 몰입도 이외의 다른 조건은 모두 같다고 하겠습니다)

 

 

 

1. FPS와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MMORPG 몰입도의 한계

 

지금 게임계의 대세는 다들 아시다시피 FPS입니다. FPS가 MMORPG를 밀어낸 원인은, 우선 공리에 따라 'FPS의 몰입도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몰입도의 차이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요? 저는 전투에 대한 몰입도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래픽의 몰입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모나리자 원화가 아무리 훌륭해도 며칠동안 계속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운드의 몰입도는 종종 그 한계를 뛰어넘기는 하지만 이는 게임의 몰입도가 아니라 사운드 그 자체의 몰입도로 그 성격이 바뀝니다(예 - 게임은 안하고 OST만 계속 듣고 있음). 기타 자잘한 시스템 역시 몰입도를 결정하는 요소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전투나 레이싱, 시나리오, 굴려붙이기(...) 등 직접적인 요소만 남게 되는데, 언급한 장르의 공통적인 성격인 전투만 남습니다.

 

전투에 대한 몰입도가 어떻게 다른지 제가 생각한 바를 말해보겠습니다. FPS와 MMORPG 전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적'들의 행동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크게 차이난다는 것입니다. 풀어 써보자면, FPS는 상대방이 어떻게 공격할지, 어디에 자리잡고 대기줌을 하고 있을지 예측하기 상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경험을 쌓고, 맵공략을 하면서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 여러가지 선택을 할 수 있고, 상대편은 '내'가 무슨 선택을 했는지 읽어내야 합니다. 이런 기초적인 양상은(물론 몇 가지 가장 효율적으로 고려된 전개가 있기는 하지만) 게임을 할 때마다 그 변화가 다양합니다. 말로 쓰자니 좀 어렵긴 하지만, 스포나 서든을 해보면서 다들 어렴풋이 느낀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군들의 행동은 완벽한 예측이 불가능하며, 그것이 몰입도의 근본이 되고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는 요소(쩌는 플레이)가 된다 뭐 이런 얘기입니다.

 

반면 MMORPG는 적들의 행동을 예상하기 쉽습니다. 몹들의 행동패턴은 제한되어 있으며, 수십 수백번 전투를 해도 바뀌지 않습니다(패치로 행동패턴을 정기적으로 바꾼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여러 번 싸워보고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몹들의 모든 행동패턴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하며, 가장 효율적인 공격방법이 무엇인지 조금만 파면 다 나옵니다. 이것은 공략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고, 대부분의 경우 MMORPG가 한번 만들어진 이래로 계속 유효합니다. 몹들이 뭘 할지 다 알고 있으니 그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특정한 랩이 어디서 사냥하면 가장 좋다는 '적정사냥터'라는 개념이 생김으로써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라는, 몰입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빼버립니다. PVP의 경우에도 고랩과 저랩이 싸우면 대부분 이 원칙이 적용됩니다. 동랩끼리는 이 원칙이 아닌 앞문단의 내용이 적용되겠지만, 동랩끼리의 PVP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MMORPG가 FPS의 전투 몰입도를 따라잡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 VS 몹'은 근본적으로 '사람 VS 사람'만큼의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2. MMORPG가 몰입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

 

그렇다고 MMORPG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MMORPG 역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연구했으며, 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타격감과 조작감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이 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죠. 손이 계속 바쁘게 움직이고 각종 효과와 사운드는 눈과 귀를 자극하여, 마치 실제로 게이머가 몹들을 패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둘째로 전투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가 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죠. 구체적으로는 변수가 많은 전투시스템을 구현하여, 생각할 여지를 많이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공략은 가능하겠지만, 변수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공략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게이머는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름대로 생각을 하면서 상황을 헤쳐나가게 됩니다.

 

셋째로 시나리오를 잘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죠. 실컷 전투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시나리오가 나오냐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밌는 판타지소설은 밤새도록 붙잡아도 지루하지 않듯이, 잘 만든 시나리오는 MMORPG의 몰입도를 크게 끌어올립니다. '네타'가 얼마나 비매너행위인지 생각해보신다면,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 MMORPG의 성공 조건

 

비록 제가 보고 듣고 해본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명작'이라 불리는 MMORPG는 2번째 소제목에서 언급한 요소들 중 2가지 이상을 갖췄거나, 사람 VS 사람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몰입도의 요소를 잘 구현한 게임입니다.

 

저 요소들 중 1가지만 잘 만들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타격감과 조작감을 살린 경우 지속적으로 몰입시킬 수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건 공리주의 철학자 밀이 말하는 '저급 쾌락'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전투시스템을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패턴이 생기고 공략으로 발전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시나리오를 잘 만든 경우에는, 그 시나리오만 어디서 구해서 읽어보거나 네타 같은 걸 당한다든가 하면 게임을 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최소 2가지 이상의 요소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마비노기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저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MMORPG였으며(물론 나크님 시절을 얘기하는 겁니다), 와우는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최소한 시나리오는 갖췄고 다른 두 요소 중 하나를 더 갖췄을 것입니다. 리니지는 공성전을 통한 PVP의 몰입도이고 이것은 FPS의 근본적인 몰입도(사람 VS 사람)와 비슷하기 때문에, 저 세 가지 요소에 다소 소홀했더라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잡소리는 앞으로 만들어질 MMORPG의 성공 가능성을 점쳐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MMORPG가 세 요소 중 둘 이상을 갖췄거나, 보다 근본적인 몰입도인 사람 VS 사람의 몰입도를 잘 살렸다면 그 게임의 성공을 낙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p.s. MMORPG를 그냥 RPG도 바꿔도 대충 들어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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