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MMORPG의 인플레이션 ururu 05-29 조회 3,704 공감 2 15

1. 인플레이션이란?

 

인플레이션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지속적인 물가 상승'입니다. 이 문장을 경제학적으로 조금 해부해보면 '유통되는 재화의 양보다 유통되는 화폐의 양이 증가하는 상태'라고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꽤 많지만, 게임 내에서 의미있는 작용은 딱 하나입니다. 화폐를 소유한 사람보다 재화를 소유한 사람, 혹은 화폐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사람보다 재화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지요.

 

 

2. MMORPG내의 인플레이션이란?

 

이 매커니즘은 MMORPG 내에서 조금 다르게 작용합니다. 화폐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유저는 대부분 신규 유저이며, 재화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사람은 오래된 유저입니다. 저레벨은 몹을 잡거나 잡템을 팔아서 화폐를 얻고 고레벨은 레이드 같은 고레벨 컨텐츠로 희귀한 아이템을 잘 얻는다는걸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즉, MMORPG에서 인플레이션의 부정적인 면은 다음과 같이 재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저레벨 컨텐츠를 통해 소량의 화폐를 주로 얻는 유저보다 고레벨 컨텐츠를 통해 값비싼 재화를 얻는 유저가 더 유리하다.'

 

 

3. MMORPG의 경제구조.

 

MMORPG의 경제는 현실 경제와는 다른 몇가지 예외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화폐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경제 규모가 대단히 작다는 것이고, 셋째는 개개인의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이유 때문에 MMORPG의 인플레이션은 현실 경제와 매우 다른 경향을 보입니다.

 

1) 화폐가 계속 증가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끊임없이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몹을 잡을 때마다 화폐가 굴러들어오기 때문이죠. 게임 내에서 캐릭터의 화폐를 수거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지만, 결국 유저가 게임에 흥미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화폐량이 증가하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2) 경제 규모가 작다는 것은 판매자의 시장 독점 및 담합이 매우 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고전 허생전의 예처럼 시장에 나온 특정 재화를 모두 사재기하여 물가가 오르기를 기다린 다음 되팔거나, 몇몇 공급자가 담합하여 재화 가격을 비싸게 유지한다든가 하는 일이 MMORPG 안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게다가 공급자가 매우 적기 때문에 특정 재화는 매우 희소성이 높습니다. 이것도 가격을 올리는 원인이 됩니다.

 

3) 게임 내에서 레벨과 장비에 따라 캐릭터의 강함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오래 게임을 하고 좋은 장비를 갖춘 캐릭터가 그렇지 못한 캐릭터보다 더 효율적으로 화폐 및 장비를 습득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이러한 유저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 게임을 시작한 유저에게 심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옵니다.

 

일반적으로 MMORPG의 경제 주체는 크게 셋입니다. 하나는 사냥이나 제작을 통해 획득한 아이템을 파는 공급자, 두번째는 필요에 의해 아이템을 사는 아이템 소비자, 세번째는 NPC로 대변되며 게임 내 화폐 소멸을 담당하고 인플레이션과 무관한 고정가격에 아이템을 판매하는 운영자.

 

이런 특성 때문에, MMORPG에서는 두가지의 완전히 분리된 시장이 발생합니다. 하나는 유저와 운영자 사이의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유저와 유저 사이의 시장입니다.

 

주의할 점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엄격히 분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구분이 가능한 운영자와는 다르게, 유저라면 게임 내에서 언제라도 공급자와 소비자를 갈아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급자와 소비자를 대충 구분할 수는 있습니다. MMORPG 안에서 고레벨의 파워 유저는 대부분 공급자의 위치를 차지하며, 저레벨의 라이트 유저는 보통 소비자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게임에서 공급자는 언제나 유리한 위치에 섭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MMORPG의 세가지 특성 때문입니다.

 

 

4. 인플레이션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현실 경제는 뒤로 제쳐두고, MMORPG의 인플레이션이 어떤 문제를 불러오는지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저와 운영자 사이의 시장은 사실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편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유저와 유저 사이의 시장이죠. 이것은 운영자가 판매하는 아이템이 대부분 부가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물품들이기 때문입니다. 통칭 '상점표 아이템'들은 유저의 캐릭터가 최소한의 능력만을 갖추도록 보조해 주는 역할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플레이션의 폐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장은 유저와 유저간의 시장입니다. 게임 내에서 '상점표 아이템'보다 더 고급이고 멋진 아이템을 유저가 생산 및 획득했다면, 그 아이템은 유저와 운영자의 시장으로 흘러가지 않고 유저와 유저의 시장에서 거래됩니다.

 

문제는, 유저와 유저 사이의 시장은 3. 에서 말한 한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지속적으로 화폐가 증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의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입니다. 또한 공급자의 악의적인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탄력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캐릭터의 강약 차이 때문에 게임을 오래 하고 좋은 장비를 챙긴 유저가 언제나 공급자의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면 결과적으로 파워 유저의 능력은 점점 상승하고 새로 게임을 접한 유저와의 격차가 무시무시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미 신규 유저가 막막함을 느끼는 시점부터 게임은 사양길로 접어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 얼마 안있어서 게임에 접속하는 유저는 꾸준히 캐릭터를 성장시켜온 몇몇 유저 뿐일 겁니다.

 

 

5. 해결책은?

 

MMORPG에서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는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래도 몇가지 존재합니다.

 

첫째는 고레벨 유저의 지속적인 화폐 소비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 경우 NPC로 대변되는 운영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양 진영간의 전쟁 물자 경쟁이든, 무서울 정도로 깎여 나가는 내구도와 살인적인 수리비든, 막대한 비용의 레이드 던전 입장 비용이든, 없으면 필드에서 픽픽 쓰러지게 되는 필수 약물이든, 고레벨 유저가 게임을 즐기기 위해 화폐를 마구 뿌려대게 만들면 됩니다.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겁니다.

 

둘째는 저레벨과 고레벨의 수입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저레벨 몹이든 고레벨 몹이든 떨구는 아이템과 화폐는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모두가 화폐와 아이템이 모자라 허덕이는 상황을 만들면 됩니다. 굉장히 가난한 MMORPG 모델입니다.

 

셋째는 소비자의 위치에만 얽메여 있는 저레벨 유저에게 공급자의 길도 열어주는 것입니다. 저레벨만 획득할 수 있는 어느 아이템이 고레벨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식이 가장 합리적일 것 같군요.

 

이외에 뭐가 더 있을까요? 아마 좀 더 고민해 봐야겠죠. 어쨋든 MMORPG 내에서 인플레이션은 게임의 수명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이런 부작용이 최소화된 게임이 나와 줫으면 좋겠군요.

 

 

 

  *) 편의상, 현재 MMORPG의 주류인 레벨형 성장 시스템을 기본으로 두고 쓴 부분입니다. 다른 시스템의 MMORPG에도 대입해 보시려면, 저레벨을 '게임 내 경제적 기반이 약한 유저', 고레벨은 '게임 내 경제적 기반이 탄탄한 유저'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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