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회사 입사 하기~ #02. 회사에 대하여... Zero-Device 08-08 조회 4,070 공감 15 27
... 오늘은 전편에 이어서 면접에 대한 내용을... 써야 하겠지만 좀 다른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저의 아버지에 대해서 쓸께요.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조금은 아셔야 하거든요.

Part 2. 아버지의 "회사란 건 말야..."

아버지께서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근무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어머니를 만나시고, 결혼을 하시면서 좀 더 안정되고 오래 일할 수 있는 회사로 옮기셨지요. 전국에 있는 송유관들에 대한 관리를 맡고 있는 국영 기업체로 말이죠.

입사하신 직후 아버지께서는 막 시작하려는 송유관 공사를 위해 필요한 부지 매입을 담당하시는 역할을 맡으셨어요. 그래서 입사하시자 마자 전국 순회를 시작하셨죠. 땅주인을 찾아가 직접 설명을 하고, 계약을 맡고, 공사 업체들과 상담하고, 공사를 둘러 보시고... 그 일을 주마다 반복 하셨죠.

그렇게 약 2-3년을 일하셨습니다. 송유관이 놓이는 곳엔 어디든 찾아가셨답니다. 어제는 대관령에서 전화를 거시던 분이, 다음 날엔 대전에서 전화를 하시곤 했죠. --; 그러다가 남부 지사(지금은 지사로 불렸지만 아버지께서 근무 하셨을 때엔 연락 사무소 정도 되었죠.) 가 생기고 나서 그쪽으로 인사 발령을 받으셔서 우리 가족은 1주일에 한번씩 보게 되는 주말 가족이 되었지요. --;

발령 받으신 뒤 6개월 뒤엔 아버지께서 담당하시는 모든 곳의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버지가 계신 대전에서 살다가 공사가 마무리 되고, 성남에 본사가 생긴 뒤엔 다시 수도권으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때 였네요. 약 11년 전의 일 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전국을 순회하시면서 고생하신 공로를 인정 받아 다시 본사에서 남부 지역 송유관 관리 사업에 대한 중책을 받으시고 본사로 발령을 받으셨지요. 그래서 다시 저희 가족은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답니다. 아버지는 관리 사업부에 몇개월 계시다가 회사의 인사권을 맡고 있는 인사부로 다시 발령 받으셨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IMF 가 터졌거든요. --;

... IMF. 저는 그때 고등학생 이었습니다. 97년도니까... 고 1 인가 그랬겠네요. 사실 IMF 터지기 이전부터 아버지는 늘 어두운 표정과 힘드신 기색이 역력했어요. 사회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말씀하시면서 항상 신문을 읽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제게 말씀하신게 기억나네요.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술에 잔뜩 취하시고 들어 오셨습니다. IMF 사태가 지난 뒤... 한 4-5개월 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취하신 모습을 그날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정말 그때만큼 많이 취하신 적은 없었거든요. 아버지께서는 새벽에 들어오셔서 자고 있던 저를 깨우시고는 마루의 식탁에 앉으라고 하셨죠. 어머니도요.

아버지는 제게 말씀 하셨습니다. 회사에서 가장 나쁜 일을 하게 되었다고요. 저는 잘 몰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잘 파악을 못했거든요. --; 그래서 그게 어떤 거냐고 여쭤 보았지요.

"이녀석아, 이 애비가 사람을 짜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지금까지 '뭔가 만들고, 뭔가 더해서, 뭔가 이루는' 그런 일들을 하셨습니다. 인사부에서도 원래는 신입사원 관리나 직원 복지/후생의 업무를 맡으셨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그 늦은 새벽에 제가 들었던 그 말은 그런 아버지의 성품과 직업관에서 정반대되는 역할이었던 거였죠.

아버지는 계속 말씀해 주셨어요. 회사 내에서 나쁜 일을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 그 조직은 회사의 경영 혁신을 위해 직원들의 업무 평가와 인원 감축을 위한 곳이고, 아무도 나서고 싶지 않고, 아무도 참여하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어머니께서 되물으셨습니다.

"왜 당신이 하게 된거우?"
"아무도 안한다고 하니, 누군가는 해야 되잖아?"

저는 그때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아무도 안하는 일을 아버지께서 하시는지 말이죠. 그래서 참 답답했었습니다. 나쁜 일을 하시려는 아버지를 처음에는 원망했었죠. 왜 나쁜 일을 해야 하나고 여쭤 보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답변 외엔 다른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여러날이 흐르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전화가 한통 걸려 오더라고요. 어머니께서 바쁘셔서 제가 대신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이 개자식아! 너는 우리를 자르고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마찬가지야!"

... 당황했습니다.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엔 사람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가득 담긴 어느 아저씨의 외침이 들려왔죠. 그 소리는 주방에 계신 어머니께도 들릴만큼 컸습니다. 어머니께서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셔서 달려 오셨죠. 저는 침착하게 일단 전화를 끊었습니다. 끊자마자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전화를 거시더군요. 걱정이 되실 만도 했죠. 저도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았으니까요...

이야기가 좀 길어 졌군요. --; 아뭏튼,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 하시길 약 80 명의 인원이 감축될 예정이고 그 명단을 아버지께서 작성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그런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저는 아버지를 원망했을 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이 끝나던 날, 또 술에 취하셔서 들어 오시곤...

... 마루의 식탁에 앉으셔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끝이면 좋으련만... 아버지께서 그렇게 어둡고, 화가 나신 적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80명의 대상자 중 다시 40명을 추리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답니다. 그리곤... 아버지는 어떻게 그걸 감당하실지 몰라서 차마 말을 못하셨죠. 너무 답답하고, 너무 화가 나서 어떤 말씀을 하셔야 될지 몰라 그냥 한숨만 내쉬곤 하셨답니다.

그때의 이야기가 기억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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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가 나중에 회사를 갈 때엔 딱 하나만 보면 된다. 그 회사가 사람을 어떻게 쓰는지만 보렴. 나쁜 회사는 사람을 물건처럼 쓴다. 사람을 필요에 따라 채용했다가 필요가 없으면 내보내 버리지. 물건이야. 완전... 사람을 물건으로 보는 거지.

- 그럼 어떤 회사가 좋은 곳 이예요?

- 사람을 쓸 때 그 사람에 대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는 곳. 어떤 곳에 그 사람이 맞는지, 그래서 어떻게 쓸 것인지 오래도록 고민하고 활용하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

- 하지만, 회사가 사람이지는 않잖아요? 어쩔 수 없는 곳도 있잖아요? 어떻게 다 그렇게 해요?

- 그런건 변명이다. 회사는 행복해 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야. 회사가 그 구성원인 개개인의 행복에 대해 책임질 수 없고, 그 꿈을 지원할 수 없다면 그 회사는 망해 버리는 것이 나아. 그렇지 않고 살려고 아둥바둥 되면 개개인과 회사 모두가 불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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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야기를 위해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시대가 변했고, 시장이 변했으며, 뜻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니까요. 평생 직장의 원조, 일본에서도 연봉제와 능력에 의한 성과급 제도가 도입된지 벌써 10년이 넘어 이젠 평생 고용을 하는 회사가 있다고 하면 그게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사회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회가 변하고 많은 것들이 지켜지지 않거나 지워진 시대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벌써 10년을 넘게 근무 중 이십니다. 스스로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구조 조정과 그 외에도 다른 숱한 나쁜 일들이 일어 났지만 아버지는 계속 한 직장에서 근무 중 이십니다. 변함 없이 계신 거지요.

아버지는 줄곧 한가지만은 지키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책임이었죠. 아버지께서 구조 조정을 끝마치신 뒤 부터 아버지께서는 하얀 봉투를 하나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안엔, 아버지께서 계셨던 구조 조정부에서 회사에서 구조 조정하기로 결정한 분들의 명단이 적혀 있지요. 제가 이 글을 적는 지금까지도 그 명단은 계속 새 종이와 새 봉투에 담겨져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 속에 있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 일을 하신 것.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를 잊지 않기 위해 그 명단을 가지고 다니신다는 아버지...

실상 이렇게 긴 글을 썼지만, 정작 말씀 드리고 싶은 건...

회사를 찾으시는 분들, 좋은 회사라는 건 돈을 많이 주는 것도 맞는 거지만... 그 회사에서 일을 함에 따라 행복할 수 있는지, 행복을 가질 수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셔야 할 거예요. 처음에 흥미로, 쉬워 보여서 택한 직업이라면 아무리 일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질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한번쯤 자신에게 되물어 보는 시간이 있으면 하네요.

그리고 회사에 계신 분들, 자기의 휘하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이 그저 한 프로젝트 공정표의 막대기 하나, 비용 산출 문서의 0.3 이나 0.7 같은 Cost 단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위의 아버지 말씀처럼 그 개인의 행복에 대해 진심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은 결코 물건이 아닙니다. 자기의 꿈이 나름대로 있고, 하고자 하는 것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회사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라구요...

회사나 사람이 모두 마찬가지 이지만...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룰 수 없다면 정말로 슬프겠죠. 그런 일이, 저의 아버지처럼 나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회사와 그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꿈을 이루고, 행복해 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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