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05.5.22(일) ~ 2005.5.24(화)
장소 : 금강산
행사명 : [6.15 공동위원회 주최] 남북대학생 상봉모임
작성자: 한빛소프트 이근식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6.15 공동위원회]가 주최하는 남북대학생 상봉모임 행사가 금강산에서 개최되었다. 남측의 전국 대학생 400여명과 북측의 대학생 100여명이 참가하였고, 나 역시 한양대학교 14명중의 한명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참고로 한양대학교 8월 졸업 예정자이나 5월 19일 한빛소프트에 입사를 하였다.)
22일 오전 일찍 출발하여 남측 CIQ와 북측 CIQ를 통과하여 오후 늦게 금강산에 도착했다. 거리상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인데도 복잡한 CIQ 통과 절차를 거치면서 금강산으로 가는 바닷길과 땅 길이 열렸지만 아직도 남과 북의 먼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북측 CIQ로 가는 도로변으로 수많은 폭격으로 인해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나즈막한 돌산들의 풍경이 마치 이국의 땅이라도 온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과거 6.25 전쟁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듯해 마음이 씁쓸하였다.
23일 둘째 날 10시경 분단 60여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남북의 대학생들이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상봉 모임의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개회식장 안으로 들어오던 우리와 같은 외모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북측의 대학생들을 보는 순간 두 눈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로만 인사를 하던 개회식이 끝나고 먼저 자리를 빠져나가는 북측의 대학생들을 보면서 점심 이후 일정인 삼일포 공동등반을 기대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먼저 남측의 대학생이 타고 왔던 버스를 타고 삼일포로 이동하고 뒤이어 북측의 대학생들이 4대의 버스로 뒤따라 왔다. 삼일포 입구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먼저 내려 북측의 대학생들을 기다리면서 북측의 대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어떤 것들을 물어볼까?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북측의 버스에서 손 흔들며 내리는 북측의 대학생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는 같은 민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북측의 대학생들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악수를 하며 남측의 여대생과 북측의 여대생이 서로 팔짱을 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묻는 모습을 보면서 잠깐의 어색함이 무색할 정도로 친해졌다. 나도 한명의 대학생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하였다. 북측의 대학생은 평양미술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하는 졸업반인 성정민(29)이였다. 나보다 한살이 많은 성정민 형에게 자연스럽게 나는 정민 형이라는 호칭을 썼다. 60년이라는 분단의 시간이 남긴 그 동안의 벽이 불과 몇 시간만에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이동하던 중에 한빛소프트에 다니고 있고 또한 업무와도 관련이 있어 북에서도 게임이나 컴퓨터, 인터넷 등을 하는지 물어보기로 하였다.
나: 정민 형, 좀 전에 오다가 보니까 집들이 다 페인트 철이 안되고 있고, 또 모내기철인데 소로 가래질을 하던데 북은 아직 농사짓는데 기계화가 안되었나요?
정민형 : 기계화는 되어 집마다 기계가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경제봉쇄로 인해 북에는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에 소로 농사를 짓는 거야. 페인트도 그렇고.
나: 남측에서는 pc방이라는 곳에서 대학생들이 게임이나 정보 검색 등을 하는데 북측에서도 대학생들이 컴퓨터나 인터넷이라는 것을 하나요? (북은 외래어 대부분을 한글로 바꾸어 쓰고 있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그냥 컴퓨터나 인터넷이라고 물었다.)
정민형: 그럼. 대학마다 대학습당이라고 해서 그곳에서 책도 보고 컴퓨터로 작업도 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도 검색하고 열람해. 대학습당에는 대학생뿐만이 아니라 연구원들, 일반인들도 와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을 해.
나: 형 그럼 게임도 하나요?
정민형: 나는 눈이 나빠서 게임을 많이 하지는 않고 가끔 윈도우 XP에 있는 지뢰찾기나 카드놀이를 해. 다른 사람들은 자동차 경주게임 같은 것도 하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걷다가 보니 어느새 처음의 자리고 돌아왔고 바로 헤어져야 했다. 나는 정상에서 같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형에게 주면서 형과 나는 저녁 때 금강산 호텔에서 있는 연회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정민이 형과 몇몇의 다른 북측의 대학생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북은 운영체제로 리눅스나 윈도우XP를 쓰는데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독과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아직까지는 남측보다는 IT인프라가 미비하다는 것을 이야기를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었으며, 자신의 전공에 대한 이해수준이 남측의 여느 대학생들 못지 않다는,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여가생활 보다는 단체생활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사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엔터테인먼트 활동들은 남측보다는 덜 활성화 되어 있는 듯 했다.
금강산 호텔에서의 연회에서 다시 만난 정민형과 나는 같이 저녁을 먹고 술도 한잔 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삼일포 등반에서 만났던 다른 대학생들과도 자리를 옮겨가며 같이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는 즐거운 연회시간을 보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금새 지나버려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너무 아쉬운 생각 뿐이었다.
마지막 날 남측과 북측의 공연과 폐회식이 있었다. 폐회식장에 들어서는 북측의 대학생들 보면서 어제 만났던 사람들을 서로 찾느라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또 서로 눈이 마주면 서로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북측의 대학생들의 공연은 과연 명불허전이였다. 고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화음이 남측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북의 남자든 여자든 다들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것과 여대생들은 남측의 대학생들과는 다른 순수함과 한송이 백합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남남북녀라고 하는지 확인을 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폐회식이 끝나고 퇴장하는 북측의 대학생들을 뒤쫓아서 난 정민이 형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마침 같은 일행이 정민이 형이 나를 찾는다고 말해줘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굳게 잡은 두 손과 뜨거운 포옹은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다시 만나나 하는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 꼭 다시 만나자며 다짐을 하며, 떠나는 북측의 버스를 그저 손 흔들어 배웅할 수 밖에 없었다. 2일 동안의 짧은 만남이 아마도 평생동안의 긴 여운을 남겼다.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지만 남과 북의 대학생들은 우리는 같은 민족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뿔 달린 괴물도 아니고 우리와 똑 같은 말을 하고 똑 같은 피가 흐르는 한 민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두 번 다시 잡은 손 놓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긴 아쉬움을 남긴 채 서울도 돌아왔다.
이 글은 금강산에서 만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