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끔 이 사람과는 정말로 대화가 통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의외로 연륜이 있으신 분들이 그럴 때가 많은데 이것은 이렇게 해서 이러이러하다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 드려도 화를 내면서 자신의 주장만을 근거없이 말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쪽이 아무리 제대로된 근거로서 설득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된 대화가 이루어지기는 힘든 일입니다.
사실 이러한 대화의 단절 문제는 아마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 아닌가 할 정도로 오랬동안 성토되어 왔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늘 강사가 학생들의 참여의식 부재, 자신의 의견을 한 마디도 말 못하는 그들의 태도를 문제 삼고,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갈등, 동료들과의 업무조율 능력 부족 등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이런 일 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갑론을박만을 되풀이하는 사이 우리 민주주의는 아주 미미한 진전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듯 대화가 가지는 중요한 덕목, 타협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힘든 나머지 때때로 한국사회에서는 끔찍한 결과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근현대사의 커다란 질곡에서 이러한 고질병, 대화의 부재는 언제나 폭력으로 귀결되었으며 승자는 패자를 매도하며 대화의 장에서 끌어내리기 바빴습니다.
대화가 되지 않으면 폭력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듯 갈등을 끝내는 극단적인 방식, 폭력이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집니다. 임수경씨의 9살 아들이 필리핀에서 익사했다는 기사에 폭압적 댓글로서 그들의 폭력성을 드러낸 이들은 다름아닌 현대사회의 다양한 축을 상징하는 기성세대였습니다. 그들이, 아니 어쩌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은 폭력으로 진압해야만 하는 불법시위단체나 지하조직정도로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단 기성세대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 또한 이러한 폭력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배가 후배들 군기를 잡는다면서 폭력을 가하는 일에서부터 대학 신입생 OT에서의 일명 '따까리'까지 어떻게 보면 폭력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 힘이 아닐까 의심되기도 합니다.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이러한 공포정치와 폭압적 분위기에 너무나 익숙해진 것일까요? 얼마전 뉴스에서 본 40~50대 들의 '나 누구인데~' 라는 식의 으름장은 그들의 젊은 시절 통했던 그러한 폭압적 문화의 세기가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추측케 할 정도입니다. 당시 권력은 폭력과 일맥상통하였기 때문일까요? 권력과 폭력을 교묘히 융합하는 그들 세대의 으름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사이버 세상 속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해온 대부분의 게임들에서 상당수의 게이머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가진 적대감을 억누르기에도 벅차보였습니다. 개발사에서 조장한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룰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적대감을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분출했습니다.
사소한 충돌을 대화로 풀지 못하며 대화중에 폭력을 뒤섞는다
길드전은 단순히 즐기는 PvP 가 아닌 단체간의 의견충돌이었으며 채팅창은 온갖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싸움터였습니다. 더군다나 이 와중에 상대적 소수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도를 넘어서는 수준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여성 게이머에 대한 성희롱은 부지기수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게이머들은 이것을 게임의 컨텐츠라고 불렀으며 때로는 이것이 재미있다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몹을 스틸했다, 혹은 몹이 스폰되는 자리를 두고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로 저마다 자신이 아는 이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재미있다고 자랑하는 컨텐츠가 시작됩니다. 한국인 특유의 패거리 문화와 혼합된 폭력은 극한에까지 이릅니다. 게임관련 커뮤니티에는 누가 잘했다 못했다를 두고 언어폭력이 연일 계속되고 대다수 게이머는 익숙한 듯 으례 그려러니하고 방관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폭력의 장에서 퇴출된 게이머들에게 가해지는 2차적인 폭력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많은 게이머들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거나 자신의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른 서버로 떠나버립니다. 이 것은 결코 재미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게임이 의도한 컨텐츠도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에서도 폭력을 재미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이것이 사회가 제공하는 오락인양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있는 사회는 아닌지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게임 안에서만이라도 이러한 폭력에 익숙한 우리의 껍질을 벗어던질 수는 없는 것인지 참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