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FPS 게임을 즐긴 건 98년도 부터였습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입소문을 타고 PC방 붐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도 인기를 얻고 있었죠. 클랜에 들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중상급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플레이 스타일은 일명 돌격형, 캠핑은 성격에 안 맞습니다. 당시 인기있었던 맵이 킬 하우스였는데 거기서는 보통 제일 먼저 죽곤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만나는 적과 정신없는 싸움을 벌이는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좀 탁트인 맵에서 게임할 때는 좀 허무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스나이핑하는 플레이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개들면 으악. 이내 땅바닥에 누을 때가 많았습니다. 상대편에 총알 한 발 못 쏴보고 죽으면 솔직히 허무하지 않나요? ^^
가만히 캠핑을 하면서도 항상 좋은 성적을 올리는 상대편 스나이퍼가 얄미웠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일반 소총수로는 참 이기기 힘들었죠. 우리편 스나이퍼가 상대편 스나이퍼를 다 잡은 후에야 겨우 한 걸음 내 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FPS 게임을 즐겨왔지만 스나이퍼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채팅창에는 이런 말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No Camping plz"
캠퍼(스나이퍼)들의 천국, 카운터 스트라이크 ^^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인기게임으로 부상하면서 저도 이 게임을 즐기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스나이퍼는 얄미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점프하면서 헤드샷을 성공시키는지 실제 전장이라면 바실리 자이제프가 울고 갈 정도의 실력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상위권에 자리잡은 그들의 성적은 다른 일반 소총수들에게는 허탈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일반 PC방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서버 구축이 널리 보편화됨에 따라 입맛에 맞는 커스텀 서버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수 십초 이상 한 자리에 머무는 사람들을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내는 옵션이었습니다. 가만히 숨어 있으면 경고 후에 체력이 점점 닳아서 사망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관리자 권한으로 게임에 접속해서 캠핑중인 스나이퍼를 "slap" 할 수도 있었는데 몇 번 때리면 구석에 숨어있던 스나이퍼가 어느새 안드로메다행 기차에 몸을 싣게 되죠. 추락하는 캠퍼에게는 날개가 없다. 땅바닥에 떨어진 스나이퍼는 어느새 황천행입니다. ^^ 다른 플레이어들이 대리만족을 느꼈는지 "good job" 이란 말도 하고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몰락한 이후 국내에서는 그 아류작이 무수히 생겨났는데 여기에서도 스나이퍼들의 천국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격을 하다가는 어느새 누워있더군요. 벽 뒤에 숨어서 고개를 내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다른 쪽에서 진입해주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들 게임에서도 스나이퍼들은 항상 고수들이라는 고정관념이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멋있어 보여서인지 아니면 점수를 잘 얻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스나이퍼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구요. 실제 전장에서 스나이퍼의 비율을 생각해본다면 너무 과잉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게임이지만. ^^ 어쨌든 탁 트인 공간에서 소총 하나 들고 뛰어가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저기 멀리 엎드려서 한 방에 저를 죽일 스나이퍼들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항상 고수처럼 점수도 잘 얻었습니다.
배틀필드2에서 스나이퍼는 총이 아니라 칼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배틀필드2가 발매되었습니다. 와우. 게임을 접한 순간 저는 이제야 소총수들의 날이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기 멀리 스나이퍼가 있습니까? UAV 를 켜고 그 위에 대포를 쏩니다. 어디선가 스나이퍼가 숨어서 노리고 있나요? 스캔을 한 뒤에 그 위에 대포를 쏩니다. 건물위에 숨어서 잘 안잡히나요? 그냥 무시한 채로 탱크타고 지나가면 됩니다.
어쨌든 더이상 스나이퍼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기뻤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말처럼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후에는 게임 진행이 술술 풀리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게임 랭킹에서 대부분의 스나이퍼들은 중 하위권에 머뭅니다.
요즘 배틀필드와 비슷한 컨셉을 띈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스나이퍼=고수다라는 인식이 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발로 뛰고 진지를 점령하는 다른 캐릭터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온 것 같아서 기쁩니다. 스나이퍼 솔직히 얄밉습니다. ^~^
아래는 배틀필드 하시는 분이 공감하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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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분대장 : 스나이퍼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위치 좀 찍어주세요.
지휘관 : 걱정마세요. 대포 쐈습니다.
알파 분대장 : ok! thanks!
브라보 분대장 : 저기 건물 위에 스나이퍼가 있는데 사다리에 크레모아를 깔았네요. 젠장.
지휘관 : 걱정마세요. 대포 쐈습니다.
브라보 분대장 : ok! I owe you one!
찰리 분대장 : 바보 같은 스나이퍼. 내가 뒤에 있는 것도 모르넹. 나이프로 죽일까?
지휘관 : 걱정마세요. 대포 쐈습니다.
찰리 분대장 : OMG! move move!
델타 분대장 : 바보같은 지휘관! 니 옆에 적있다!
지휘관 : 걱정마세요. 대포 쐈습니다.
델타 분대장 : idi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