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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보단 결과, 온라인게임을 즐기고 계십니까 13anya 04-28 조회 3,733 공감 6 14

요새 온라인게임 관련 화제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언제나 한번씩은 공통적으로 연결되는 주제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노가다 온라인 게임'이다.


새로운 게임이 나와줬으면 하는데 새로 오픈한다는 온라인게임을 플레이해보면 그래픽만 다르지 기본적인 구조는 다를 게 없다는 불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런 불만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한때 정착할 게임을 찾지 못하고 온라인 상의 유목민마냥 이 게임 저 게임을 옮겨다니며 플레이하던 시절, 당시 나와있던 모든 온라인게임을 플레이한 뒤 각각 다른 포장지로 감싼 같은 맛의 초콜릿을 맛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나는 "도대체 왜 노가다식 온라인 게임들만 만드는 건가" 라는 불만에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지는 않는다.


최근 '대체 왜 회사는 이제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노가다식의 온라인 게임만을 만드는가'에 대해 역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때 오픈베타에서 상용화로 넘어오는 과정으로 떠들썩했던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기억하시는지. 이 게임, 저 게임 전전하던 유목 생활을 정리하게 해주었으며, 심지어 어쩌면 이 게임이 내 마지막 온라인게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던 게임이다.

 

모험가라는 비전투성 직업을 플레이하며 이제까지 맛볼 수 없었던 즐거움과 재미에 행복했다. 매번 빠른 렙업과 스킬 랭업에만 치중하는 형식의 타 온라인 게임과 달리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느긋하게 즐기는 맛이 있었고, 그것은 이 때까지 보이지 않는 경쟁심에 쫓기던 타 온라인 게임에서의 플레이와 다른 것이었다.


전율이 오는 듯한 행복감 속에서 어쩌면 바라고 바라던 '노가다가 아닌 온라인 게임'이 나와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하루에 한 번 이상 들리는 <대항해시대> 관련 팬사이트 및 웹진에 들려 게임 관련 팁, 노하우나 관련 기사 등을 읽을 때마다 가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리니지> 류의 온라인 게임 웹진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빠른 레벨 업에 관한 팁'이나 '스킬랭 작업을 위한 지도 복사 안내서', '군인 퀘스트 뺑뺑이의 진수를 알려주마' 같은 글들이 떡하니 속칭 팁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고, 더 나아가 다른 글들보다 훨씬 인기를 끌고 있었다. (※ 위 글의 제목들은 임의로 작성한 허구입니다.)


'대체 왜?', '어째서?' 의문만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무엇에 대한 의문이냐? '어째서 사람들은 이런 게임에서조차 빠른 레벨업과 높은 스킬랭크에 매달리는가?' 에 대한 의문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왜 회사들은 노가다식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가. 역설적으로 생각해보자. 결국 우리 나라 유저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보도 아닌데 안 팔리는 게임을 만들리가 없지 않은가.

다시 <대항해시대 온라인>으로 돌아가서,
지도 복사 및 퀘스트 뺑뺑이로 레벨 올리기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의 이유란 '빠른 시간에 레벨을 좀 더 많이 올리기 위해서'다.

 

 

 


그렇게 레벨을 단시간에 높이는 목표라는 건 무엇인가?

 

그것만이 <리니지>에서부터 시작되어온 MMORPG 플레이에서의 재미고 즐거움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높은 레벨, 멋진 배, 값비싼 아이템..

 

이런 것들이 한순간의 만족감과 과시욕을 충족 시켜줄 수 있을진 몰라도, 과연 게임 그 자체의 재미라 할 수 있을까?

 

현재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남아있는 건 처음부터 과정을 느긋하게 즐겨왔던 사람들 뿐. 처음부터 레벨 올리기에만 집착하던 유저들은 '결국 대항해시대 온라인도 노가다 게임이었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이런 유저들의 플레이 성향을 알고 있기에 회사들은 구태여 새로운 스타일의 온라인 게임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것이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노가다 형식의 온라인 게임들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결과만 좋으면 아무래도 좋은 사회. 돈 많은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회.


그렇게 모든 사람이 지긋지긋하다고 여기는 현실의 모습들을 유저들은 무의식적으로 가상 공간에까지 답습하고 있다.

물론 위에 서술한 예에 속하지 않는 유저분들이 있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과거 <리니지> 때의 플레이 스타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게임 상에서 제일 즐거웠을 때는 언제였는가. 그 게임에서의 만렙을 찍었을 때? 보스급 몬스터를 해치운 뒤 값비싼 아이템을 얻었을 때?


이제 '높은 레벨과 좋은 아이템'이란 결과물을 얻음으로써 느끼는 만족감이 재미의 전부라 끝맺지 말고, 게임 플레이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자.

유저들 스스로가 각자의 눈을 높히는 것이 찍어내기식 노가다 온라인 게임들의 범람을 막는 첫 걸음이 아닐까.



 

최근 게임발언대를 후끈하더군요. 이 글은 댓글들을 읽다가, '대다수의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제 생각을 써보았습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즐기던 중 들었던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이미 감자는 식어버렸나요?-_-;

 

'결과에만 집착하는 플레이 방식이 나쁘니까 그만해!' 하는 의도가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솔직히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비를 건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이렇게 바뀐다면 지금보다 재밌는 게임들이 나와줄텐데' 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잡설이 길었군요. 식은 감자라도 맛있게 읽어주신 분이 계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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