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02년 SONY의 PS2가 국내에 상륙한 후 많은 한글화 타이틀이 발매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만든 작품이 아닌 일본이나 유럽에서 개발한 작품을 한글로 즐긴다는 것은 게임의 스토리부터 전체적인 시스템을 손쉽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저의 한명으로서 무척 반가운 일이죠. 때문에 폰트가 구리다던가, 성우의 음성 더빙이 어색하다던가 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로 들립니다. 한글화를 해주는 것도 감지덕지한 것이죠. 우선 한글화 비용이 결코 적지 않은 만큼 그에 따른 퍼블리셔의 고생은 모두가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S2가 발매된 후에는 NGC와 Xbox 등이 발매되었고, 이제 비디오게임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 PSP와 같은 휴대용 기기와 차세대 게임기 중 Xbox 360이 국내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YBM 시사닷컴처럼 게임사업에서 철수한 회사가 있는가하면 인트라링스나 CSR 엔터테인먼트와 같이 새롭게 게임사업에 발을 내딛는 기업도 등장하면서 국내 비디오 게임도 해가 갈수록 조금씩 발전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최고의 로컬라이즈를 보여준 YBM 시사닷컴, 소문으로는 TIG 가족 중 한분이 과거 이곳에 근무하신 것 같다는...]
그런데, PS2가 국내에 정식 발매될 때에 비해 출시되는 타이틀의 한글화 빈도가 점점 적어지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물론, 현지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적지 않은 인력과 자금이 투자된다지만 나날이 성장해가는 한국 비디오 게임계에 발맞춰 그에 따른 한글화 타이틀의 숫자도 점점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타이틀을 한글화하기는 힘들겠죠. 그러나 속칭 유저들 사이에서 ‘이거 대박이다, 나오면 꼭 사야지’ 할 정도로 관심 있는 타이틀을 원본 그대로 들여와 매뉴얼만 한글화하는 모습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구매하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그런 성의 없는 모습에 다시 지갑을 닫게 만들 정도로요.
사실 이런 비한글화 문제와 같은 글을 작성한 이유는 현재 예약판매 중인 스플린터 셀: 더블 에이전트 때문입니다. 잠입액션 게임으로 메탈기어 솔리드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극찬을 받은 스플린터 셀 시리즈는 과거 위자드 소프트를 통해 1편과 2편이 한글화되어 출시됐지만, 3편은 북한을 소재로 해서 국내 정식 발매가 무산되었죠. 그리고 이제 후속작이자 시리즈 4편인 더블 에이전트의 정식 출시가 결정되었고, 많은 유저들은 첫 발매로 손꼽히는 Xbox 360 버전에서 한글화를 기대했지만 퍼블리셔인 블루 인터랙티브는 한글화 기간이 5개월 이상 걸린다는 이유로 한글화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스플린터 셀, 1편의 스크린 샷]
대신 공략집 또는 대사집을 준비하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제공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유저들에게 단지 형식적인 멘트로 밖에 비춰지지 않습니다. 비한글화에 대한 대안 중 하나인 공략집과 대사집 제공은 과거에도 자주 사용됐던 방법인데 우선 인터넷을 통해 게임이 출시된 후 제공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터넷 공략집은 휴대성이 제로에 가깝고, 출시 후에 제공한다는 것은 늑장을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무엇보다 세가코리아에서 발매한 용과 같이, 컨뎀드 정도의 공략집 퀄리티가 아니라면 굳이 공략집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한글화가 부럽지 않은 완벽 공략집/대사집]
그래도 외국 발매일에 비해 늦지 않게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정식 발매에 따른 저렴한 가격이 어디냐고 한다면, Xbox 360의 경우 아시아 버전의 월드코드가 유효해 그까짓 출시일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PC 패키지 시장도 붕괴된 지금 마음만 먹으면 외국 쇼핑몰을 이용해 게임을 구매하는 유저들이 부지기수니까요. 그리고 예전에 비해 구매대행 사이트가 많아져 돈만 있으면 국내 출시일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은 블루 인터랙티브에 관한 불평불만이 많은데, 어느 정도 게임성이 검증된 작품은 한글화를 해주는 것이 퍼블리셔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구매자의 입장에서 퍼블리셔에게 결코 많은 권리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비디오 게임 시장이 음지에 있었고, 환경도 열약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기에 그에 맞춰 퍼블리셔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글화가 판매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근 사례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사이버프론트제넥스 코리아에서 발매된 테스트 드라이브 언리미티드(이하 TDU)의 1만장 돌파 소식입니다. TDU는 과거 PC 패키지로 발매된 레이싱 게임으로 내년이면 20주년을 맞이하는, 레이싱 장르에서의 기념비적인 작품 입니다. 보통 레이싱 게임은 한글화 비중이 높지 않은데 TDU는 한글화를 거쳐 차량의 스펙이나 각종 챌린지의 목적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글화 때문에 1만장의 판매를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자체적인 게임성이 재미있고, 거기에 완벽 한글화(자막/음성)라는 양념이 더해져 이런 쾌거를 달성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한글화의 힘 입니다!]
이처럼 유저는 재미도 있고, 한글로 인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됩니다. 그러니 퍼블리셔는 유저를 믿고 한글화 타이틀을 많이많이 발매해 주세요. 한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