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화로 보는 우리네 컨텐츠 산업의 첨단이라는 게임 우파루파 10-31 조회 8,292 공감 5 293

요즘 나오는 게임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언어의 벽이 없다는 전제하에 ). 특히 제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게임은 더욱 더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간의 박봉생활(=게임기자)이나 몇년 전 모종의 캠페인 건(뱀산에서 불법복제 반대 캠페인을 한다거나..소속 매체에서 관련 기사를 주야장창 내보낸다던가...하다가 열심히 깨지고 짤릴뻔하고 별 꼴을 다 겪었지...)등으로 이미 우리나라 시장에 대한 관심을 거의 버린 상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최근 제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는 게임들이 나와주면서 기대치는 점점 올라가는 중입니다. 나름 일본어를 공부하려고 노력은 합니다만.. 언어에 대한 몰이해와 무개념.. 그리고 타고난 언어치라는 장벽으로 인해 진도는 더더기만 하구요. 그럴 때 잘 된 한글화 타이틀만큼 반가운게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터라.. 차마 '이 게임 한글화 해 주세요.'라는 말이 안 나오는 시점이네요.

 

이 매체 저 매체에서 종종 나왔고 저도 모 매체에서 기자입네 하고 다니던 시절 종종 써먹은 레파토리(바로 얼마전까지도 기자이긴 했지만...)이긴 합니다만.. 잠시 PSP든 PS2든 한글화 게임을 내려면 필요한 최소 비용을 산출해 봅시다. 단, 어디까지나 대충입니다. 현업계에서 실질적으로 얼마의 돈이 움직이고 어쩌구 하는 건 가급적 생략하겠습니다.

우선 외국 게임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라이센스에 대한 계약을 해야 합니다. 계약금을 내고 판매 카피당 얼마..라는 식으로 개런티를 지불하죠. 계약금은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싼 게임은 수백만원에서 보통 수천 만원. 비싸면 수억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여기에 유통비, 물류비, 작업비(번역된 텍스트를 붙이는 작업은 대부분 제작사에서 합니다), 번역료, 기타 경비를 더 하면 게임의 원가가 됩니다. 로컬 작업도 음성이 들어간 경우 성우 개개인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고(슈로대가 우리나라에 죽어도 나올 수 없는 이유입니다), 더빙을 한다면 또 그 각각의 목소리에 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합니다(이 역시 대충 게임가격의 3%였던가..?).

더빙을 하든 말든 수입 자체에 많은 비용이 드는 셈이죠. 추가되는 돈은 번역료 정도입니다. 적게는 수백 많아도 천 단위를 넘기진 않아요. 그런데 왜 안 팔리면 한글화가 힘들까요? 앞서 언급한 것 중에.. 번역 된 텍스트를 붙이는 작업을 제작사가 한다는 대목이 있잖습니까? 그겁니다. 1000장 팔리는 타이틀인데 한글화를 해야 하니 일을 하시오~ 라는 것이 어렵다는 거죠. 차기작 만들기도 바빠 죽겠는데, 만장도 안 팔리는 타이틀에 굳이 시간과 인력을 배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0만장 시장에 팔리는 타이틀이 10만장 넘기 힘들죠. 까놓고 말 하죠. 100만장에서 10만장 팔리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PS2 타이틀이 20만장을 못 팔아요. 보통 게임 하나 나오면 5000장 넘게 팔기도 힘들답니다. 주간 판매순위에 왜 판매량이 안 나오는지 아십니까? 판매 순위는 1등인데.. 판매량은 대부분 형편 없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가 600만장이 팔리든 400만장이 팔리든 콘솔 게임의 판매량은 20만장을 넘어본 역사가 없습니다.

그런 게임을 한글화 하기 위해 개발사를 괴롭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게임을 정식으로 출시하시는 분들이랍니다. 그 분들인들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타이틀을 출시해서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고작 운영비 충당하는 것이 현실일진데.. 본사에서 욕 먹어 가며, 유저들에게 욕 먹어가며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우리네 퍼블리셔랍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도 퍼블리셔가 많은 적이 있었답니다. 2000년 이후 2002년 만 해도 30개가 넘는 퍼블리셔가 있었고 괜찮은 게임들이 한글화 되었어요. 그러나 그 중에 그 만큼 팔려준 게임은 손에 꼽는다지요. 코코캡콤이 철수하고 카마디지털엔터테인먼트가 콘솔게임 출시를 관둔게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더 이상 본사에 한글화를 요청 할 수 없고 그냥 게임을 내도 팔리지 않는 현실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일본어든 뭐든 좋습니다. 일단 나오면 그냥 사서 할 수 밖에 없어요. 보따리로 구입을 하든 병행수입품을 사든 정식 발매된 게임이 가장 싸거든요. 언어의 문제는 이미 더 이상 생각 할 수 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미니멈 개런티가 어쩌구 최소 몇장을 팔아야 하고 하는 문제는 퍼블리셔나 플랫폼 홀더가 돈 벌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랍니다. 적어도 그 만큼 팔아야 다음에는 한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된 김에 아예 제대로 까 봅시다. 게임큐브와 GBA, NDS용 게임을 유통하는 대원CI 아시죠? 그들이 가져오는 게임이 얼마나 팔린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포켓몬스터를 빼면 타이틀 개당 판매량이 500장 미만입니다. 닌텐도 플랫폼의 게임이 하나 수입되어 처음 우리나라에 깔리는 숫자가 500장이에요. 그런데 그 초기 물량이 소진된 경우도 손에 꼽습니다(오로지 포켓몬 금/은 뿐...).

공격적인 마케팅은 어디 갔냐? 광고는 왜 안 하냐? 그런 소리 하시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게임을 돈 주고 구입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소위 말하는 매니아여러분 중에 닌텐도를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GBA 판매량과 GBA용 닥터 판매량이 비슷합니다. 하드로더와 PS2용 칩의 판매량은 PS2의 판매량을 향해 돌진하는 중입니다. 매번 출시되는 게임을 다 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출시되는 게임 중에 각자가 마음에 드는 것만 사도 됩니다. 100만대 시장의 PS2. 25만대 깔린 PSP. 20만대 깔린 NDS. 이들 중 제대로 팔려준 게임은 고작 PSP용 DJMAX 뿐이랍니다.

닌텐도 코리아가 생겼습니다. 오는 연말 부터 눈에 띄는 활동을 시작한답니다. 키워드는 포켓몬이요 내년에는 WII로 우리나라에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거랍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게임을 살 준비는 되어 있으신지요? 컨텐츠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 할 준비는 되어 있으신지요? 이건 게임만의 문제도 MP3 파일의 불법 공유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컨텐츠 산업 전반이 앓고 있는 중병이죠.

말 난김에 계속 주절거리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이 뭘까요? 사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드래곤볼 모르시는 분 계신지요? 전 42권 누적 판매량이 몇 권일 것 같으십니까? 20만권입니다. 그것도 도서대여점이 생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수치랍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만화 출판사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신기 할 지경입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만화를 그리려는 사람도 거의 없고 수입에만 의존해야 할 판입니다.

애니메이션 DVD로 가면 더욱 더 암담합니다. 매년 SICAF가면 염가처분 되는 애니메이션 DVD가 쌓여있습니다. 허구헌날 쇼핑몰에서는 50%~70% 할인까지 해 줍니다. 그래도 팔리는 건 거의 없답니다. 매니아들이나 즐긴다는 프라모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프라모델 전체 판매량은 일본의 도시 하나만도 못 하다네요. 그 수가 너무나도 적습니다. 한 때 매장 아르바이트로 하루에 1000만원 단위로 프라모델을 팔아치운게 신기 할 지경입니다. 음반 시장은 이미 MP3에 말려 넘어갔습니다. 그나마 최근 살아난다는 소식은 들려옵니다만.. 글쎄요..

우리는 너무나도 오랫 동안 컨텐츠에 돈을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니 놈의 윈도우는 정품이냐!!!"라고 물으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네 지금 쓰고 있는 유일한 정품입니다). 이런 소리 지껄이는 저 역시 오피스라든가, 한글, 포토샵, 드림위버, 플래쉬등등.. 이 모든 프로그램을 정품으로 쓰진 않고 있습니다(한때 윈도우+드림스튜디오+어도비스튜디오+M$오피스를 정품으로 질러서 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게임을 사고 만화책을 사고 DVD를 사야 합니다. 갑부냐구요? 그럴리가요. 얼마전에 직장도 잃고 지금은 그저 홀연한 철 없는 백수 신세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계속 유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달라져야죠. 게임 기자일을 쉬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장 저 부터가 타인의 컨텐츠에 대해 존중하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저의 일들이 존중을 받겠는가? 지리하게 늘어지는 수습. 월 100도 안 되는 좌절스러운 급여.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바로 그러한 부주의함에서 시장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컨텐츠 산업. 게임은 그 첨단에 있습니다. 만화, 영화, 음악, 조형, 공연 그 모든 것들을 담을 수 있는 컨텐츠가 게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게임에 조차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가치있는 컨텐츠 산업이 될까요? 그건 당장 편의를 위해 컨텐츠 산업의 첨단을 갈 수 있는 길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서 저에게도 아이가 생겼을 때, 그 아이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라는 말을 할 때, "그럼 열심히 해 보거라."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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