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enyheid 11-12 조회 1,537 공감 1 6

얼마전 이 게시판에서 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복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쿠탄바완님께서 남들과 다른 독특한 주장을 하여 토론이 격렬해졌었지요.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쿠탄바완님 같은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달걀 도둑질과 프로그램 복제는 성격이 많이 다르죠.) 단지 현재의 법규과 도덕관에 비추어 볼 때 어긋나는 생각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공격을 받았었지요. (저도 이 글을 올리기 겁이 나는군요)

 

저는 그 이유를 디지털 제품이 가져야할 새로운 개념이 기존의 경제 체계와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프로그램 - 더 크게 확장한다면 컨텐츠, 정보.
정보화 사회에 부각되기 시작한 이런 물건들은 산업 사회의 제품과는 다른 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완전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아주 값싼 노력에 의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마을에 여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고,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통해 경제활동을 합니다.
대장장이가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서 식칼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프로그래머가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서 게임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대장장이와 프로그래머는 서로 이야기해 보고, 충분히 서로가 동등한 가치라고 판단하여 게임과 식칼을 교환하였습니다.

 

다음날, 목수가 이틀 걸려 의자를 두개 만들어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대장장이는 그 의자를 얻기 위해 다시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서 식칼을 만들어서 의자랑 교환하였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아무 일도 안하고 있다가 게임을 하나 더 복사해서 의자랑 교환하였습니다.

 

이렇게 프로그램의 복제라는 것은 추가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가치 창출을 이끌어 냅니다.
달리 말하면, 하루 일한 노력으로 어쩌면 수백일 걸려서 만든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컴퓨터란 것이 발명된지 얼마 안된 초창기에는
상당히 진보 성향의 프로그래머들은 모든 소프트웨어는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돈을 버는 행위는 금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었습니다. (프루나유저가 아닌 프로그래머들이 말입니다.)
소프트웨어는 무에서 유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계의 대세는 MS의 대박에 따라, 그들이 말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리눅스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 정보 등의 무한한 가치를 사람들이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래서 특허와 지적재산권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그 시기의 제한을 걸었습니다.
기술을 발전한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보상을 주고, 그것의 무한한 가치를 살려 공익을 위해 환원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요새는 특허는 앉아서 돈버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저작권이라는 것은 내가 쓴 글 딴놈이 못보여주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미키마우스법은 지적 재산의 공익 환원 시기를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였습니다.
점점 디지털 컨텐츠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과는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이쯤되면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개발자는 땅파먹고 살라는 말이냐. 돈을 벌어야 프로그램을 만들던지 할것이 아니냐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카피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패키지 시장이 없어지자,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방향을 바꿨고, 부분유료화 모델 같은것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책 시장이 거의 죽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만화를 그리고 있고 인터넷 같은 곳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MS오피스를 서버접속 방식으로 만들어서 월 정액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제가 당장 무엇을 생각해 낼 수 있는건 아니지만 지금 말할 수 있는 점은, MS적인 방식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돈을 가장 잘 벌 수 있는 방법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프로그래머들이 더 배가 고파질 것이고, 연매출 수천억짜리 게임회사 같은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돈을 잘 버는 만큼 산업도 더 발전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화를 그리듯, 정말 자발적이고 열성적인 프로그래머들만이 스스로 코딩을 할지도 모릅니다.
게임의 수준은 아직도 인베이더 수준에서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게 제가 아직 복제를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쿠탄바완님의 표현처럼 '복제 금지를 종교적으로 숭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경제방식을 지켜내고, IT 업계를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것이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사람들은 '카피를 하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행위에요' 라고 교육을 받고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정품을 쓴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움과 우월감을 느끼게 됩니다.

 

SF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쓰레기를 재료로 넣으면 분자를 재구성해서 어떤 물건이든 복제해서 만들어주는 기계가 발명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TV든 자동차든 머든.
여러분은 생산자의 지적소유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저 복제기계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면 이 기계를 널리널리 퍼뜨려서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TV공장들은 다 망했군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십니까. 굶주린 아이에게 빵을 잔뜩 복제해서 주면 되겠군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십니까.
예상되는건, 이 기계는 어떻게든 퍼질 것이고, 문명과 산업의 발전은 퇴보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거라는 거지요. 지금보다 훨씬 더 격렬한 논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복제라는 것이 절대악인지 아닌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수십년간 현재의 방식대로 디지털 산업이 진행되어 오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현재는 복제금지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을 뿐입니다.

 

저의 얘기가 복제를 해야된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단지, 복제라는 것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만한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글을 보는 IT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나, 앞으로 종사하실 분들이 좀더 마음을 열고
그중 누군가는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 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패키지 시장은 디지털 컨텐츠가 가진 복제라는 특징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그것은 유저들의 인식이 부족하느니 어쩌니 그런것을 떠난 대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레코드판 시장은 없어졌지만 음악의 감동은 남아있습니다. 패키지 시장을 그리워 하는 것보다는 그때의 감동을 되살릴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 그러고 보니 GNU를 창시한 리차드 스톨만이 한국에 온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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