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페이지에 아스파 님이 써주신 '지금의 레벨업이 갖고 있는 작은 문제' 글타래와 연관됩니다.
아스파 님의 방향성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특정 에피소드의 종결과 캐릭터의 강화를 연동시킬 경우 게임에 대한 몰입감은 극적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에서 제시된 것 같은 모델은 워낙 혁신적인, 나쁘게 말하면 생소한 형태라는 게 문제겠지요. 그에 대한 이야기도 원문 댓글에서 대부분 거론된 것 같고요.
사실 훨씬 편한 방식으로도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와우식 MMORPG의 틀을 바꾸지 않고도요.
요는 '에피소드의 종결이, 단순한 반복 행위(몬스터 척결)에 의한 보상과는 차별화되는 강력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물론 여기서의 차별화란 양적인 차별화(퀘스트가 닥사냥보다 경험치가 잘 올라!)가 아닌 질적인 차별화가 되어야겠지요. 즉 에피소드 진행 이외의 방법으론 얻을 수 없는 보상이어야 하겠지요. 그러면서도 그 보상은 필수불가결한 무엇인가여야 합니다. 귀찮으면 대충 넘어가도 됩니다, 라는 식이면 애써 시스템을 만든 의미가 없으니까요.
뭐 새롭게 어려운 개념 만들지 말고, 익숙하디 익숙한 MMORPG의 문법들 중에서 찾아봅시다.
스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려는 말을 한줄 요약하면 이겁니다.
"스토리 진행에 따른 보상으로 스킬을 받으면 어떻습니까?"
와우에 대입해서 예시를 들어 보자면, 이런 식인 것이죠.
(와우에도 직업스킬 퀘가 존재하긴 합니다만,
그런 방식을 얘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와우의 직업스킬 퀘스트는 참 재미없죠.
퀘스트하기 귀찮다는 생각만 들지 별로 몰입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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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캐릭터는 마법사입니다. 서부몰락지대의 메인 퀘스트인, 폐광 인던을 다 돌았습니다.
데피아즈단장인 벤클리프를 처치했습니다. [벤클리프의 펜던트: "푸르게 빛나고 있습니다!"] 아이템을 떨어뜨리네요.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데피아즈단의 두족 에드윈 벤클리프는 품 속에 펜던트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펜던트를 응시하자,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평범하지 않은 물건인 게 분명합니다.
일단 감시의 언덕으로 펜던트를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을의 누군가는 이 펜던트의 용도를 알고 있겠지요."
퀘스트 목표대로, 감시의 언덕에 있는 마법사 npc에게 펜던트를 가져가 봅니다. npc가 머리 위에 노란 물음표를 띄우고 있습니다.
"세상에, 거기엔 엄청난 마법이 걸려 있어요! 제가 그 마법을 해독해 봐도 될까요?"
수락.
npc는 펜던트를 손에 쥐더니, 알 수 없는 주문을 낭독합니다. 한참을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뒤쪽에서 당신을 부릅니다. "여기에요!" 아무래도 순간이동을 한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펜던트에는 [점멸]주문이 봉인되어 있었어요. 감사의 뜻으로 당신한테도 이 주문을 가르쳐 줄게요."
새로운 주문을 습득하였습니다 : 점멸(1레벨).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하였습니다 : 데피아즈단을 물리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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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와우치곤 그냥 단순하고 평범한 퀘스트 하나일 뿐이죠.
보상이 독특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해당 스토리를 진행해야 할 초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반드시 '메인스트림'급의 개발하기 어려운 거대한 에피소드일 필요도 사실 없습니다.
하나의 완결된 에피소드 형태기만 하면 소소한 일들이라도 상관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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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란드에서 '헤멧 네싱워리'가 시키는 대로 잡몹 100마리를 처단했더니
"이봐, 더 사냥을 잘하려면 강한 주문이 필요하지 않겠어? 스톰윈드 마법사 지구에 이걸 가져가 봐. 내가 거기 친구들이랑 친하거든."
라면서 [네싱워리의 추천서: 마법사 지구]를 주고,
그걸 스톰윈드에 가져갔더니 과연! 새로운 주문을 가르쳐 주네요.
새로운 주문을 습득하였습니다 : 화염구(10레벨)
새로운 주문을 습득하였습니다 : 화염 작렬(7레벨)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하였습니다 : 대단한 사냥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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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만 해도 되겠죠.
와우로 예를 들면 나그란드에만 다른 곳과 뚜렷이 구분되는 '에피소드'지역이 6개는 됩니다. 중앙의 야생동물 지역, 불타는칼날단 오크 지역, 돌주먹 오우거 지역, 오슈군, 투기장 지역, 정령 젠 지역.
이런 지역을 하나하나 클리어할 때마다 특정한 보상을 얻게 된다면 좋겠죠.
이건 곁다리지만, 만약에 퀘스트 동선이 획일화되면서 플레이 자유도가 줄어드는 게 문제라면?
하나의 보상을 여러 경로로 획득 가능하게 하거나
(예: A스킬은 B지역의 에피소드(혹은 연퀘)를 해결하거나, 또는 C지역의 보스를 처치하면 획득합니다)
스킬 보상 자체를 토큰제로 하면 되겠죠.
(예: 해당 지역 클리어시마다 스킬북 아이템을 얻습니다. 이를 이후에 원하는 스킬로 변환합니다)
좀더 극단화하면, 그냥 아싸리 에피소드(혹은 지역, 혹은 연퀘) 클리어 시마다 스킬 포인트를 부여해도 됩니다. 물론 영 딱딱해 보이겠지만요.
이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맞출 것인가는 게임의 개성에 맞게, 개발사에 맡길 일이겠지요.
어쨌든
제가 말하려는 건 이런 방식이 독창적이라기보다 (별로 안 그렇죠? ^^;)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형식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찍어내면서도, 꽤 적절한 몰입감을 부여할 수 있고요.
morpg마냥 개발 일정에 쫓기는 것도,
유저들을 생소한 시스템으로 몰아넣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mmorpg가 이미 갖고 있는 준비물에다가 약간 포장을 덧씌우기만 하면 '현실적인 어려움'없이 구현할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