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쓰레기통과 세상을 줍다, 붕괴: 스타레일 지구 개척 임무 체험기 여우왕 04-27 조회 115 0
햇살은 따갑고, 바람은 거칠었다. 서울 반포 한강공원, 4월의 어느 토요일. '왕의 쓰레기통과 함께하는 지구 개척 임무'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손에는, 집게와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주 작은 준비물이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것이 우리 모두를 '개척자'로 만들어 줄 도구였다. 그리고 그 작은 준비물만으로, 우리는 세상을 조금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손끝에 걸린 세상, 한 조각씩 바꿔나간 시간

플로깅이 시작되었다. 주최 측의 간단한 안내가 끝나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조를 이뤄 퍼져나갔다. 참가자들이 강변 산책로를 따라 줄지어 걷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긴 행렬처럼 보였다. 땅바닥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허리를 숙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겨진 영수증, 반쯤 흙에 묻힌 비닐 조각, 맥주 캔과 담배꽁초. 무심코 스쳐 지나갈 때는 깨끗해 보였던 한강이었지만, 고개를 숙여 세심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쌓여 있는 흔적들이 분명히 보였다. 손에 쥔 집게가 찰칵 소리를 내며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집어 올릴 때마다, 마치 '퀘스트 아이템'을 수집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바람에 흩날리는 쓰레기를 잡으려고 두세 걸음 뛰어야 했고, 가끔은 부풀어 오른 쓰레기봉투가 터질까봐 조심조심 손에 들고 걷기도 했다. "여기 담배꽁초 있어요", "나무 밑에도 플라스틱병이 숨어 있었어요" 낯선 이들과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들.

누군가는 굽은 허리를 토닥이며 웃었고, 또 누군가는 낡은 운동화를 발끝으로 툭툭 털며 말했다. "이거, 진짜 RPG 게임 같다." 그 말에 다들 웃었고, 웃음 사이로 강바람이 스쳐갔다. 구석구석을 헤매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흘러갔다. 손바닥만 한 조각 하나를 집어들 때마다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는 기분은 꽤 묘하고 짜릿했다.

묵직했던 감정의 무게

오후 두 시. 모든 참가자들이 플로깅을 마치고 모였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상하게 따뜻한 빛이 돌았다. 그날 한강에서 수거한 쓰레기의 총량은 540kg. 단순한 숫자였지만, 그 무게는 온전히 참가자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 모래밭, 강변 풀숲, 벤치 아래 음지까지. 가장 깊숙하고 숨겨진 곳을 찾아 기어이 끌어올린 흔적들이 쌓여서 만들어낸 숫자였다. 쓰레기를 가장 많이 주운 참가자에게는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메달과 표창장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빛나는 것은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모두가 무언의 연대 속에서 움직였다. 누구도 '더 빨리', '더 많이'를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가 펴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게임 속 개척자보다 더 진짜 같았다. 플로깅이 끝난 후 벤치에 앉아 강변을 바라보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은 평소보다 한결 투명해 보였다. 그것은 착각이었을까. 아니, 분명히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었다. 

조용히 퍼져가는 모험의 물결

'왕의 쓰레기통'과 함께한 지구 개척 임무는 서울과 부산에서 끝나지 않았다. '동네 개척 임무'라는 이름 아래, 전국 곳곳에서 이 작은 모험은 계속 퍼져나갔다. SNS에는 매일 수십 장의 인증사진이 올라왔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플라스틱 조각, 벤치 밑에서 발견한 캔, 골목길 모퉁이에서 주운 포장지 조각. 누구나 작지만 빛나는 성과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굿즈 때문에 시작했는데, 내년에도 있을지 모를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고백들이 이어졌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모험은 계속되고 있었다. 특별한 장비도, 특별한 능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집게 하나, 작은 비닐봉투 하나.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붕괴: 스타레일은 여전히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개척자들은 지금 이곳, 지구 위에서 작고 조용한 모험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집 앞 골목을 걷다 담배꽁초를 줍고, 누군가는 강변을 산책하다 흙에 묻힌 비닐 조각을 발견한다. 그들은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손끝에서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조금 더 깨끗한 거리. 조금 더 환한 강변. 조금 더 따뜻한 골목길.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은하를 하나씩 하나씩 주워 올리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조용한 은하들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 더 빛나는 별이 되어 우리를 비출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모험. 우리가 걷는 모든 길 위에서, 우리의 손끝에서, 이 작은 기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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