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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교육. KDJKH 11-07 조회 11,264 8

0. 쓰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이 글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견해로만 쓰여졌습니다. 결코 저 외의 다른 교육계 종사자나, 어떠한 집단의 의견이 아님을 명시해둡니다.

 

 또한  이 글은 어떠한 객관적 자료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논쟁이나 논란의 근거로서 사용될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렇게 생각하는사람도 이 땅 어디엔가 있다." 정도의 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교육계를 비판하고자, 혹은 게임계에 경각심이나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그런 거창한것이 아닙니다.

 

 이 글의 가장 큰 목적은, 지금 이 문장을 읽고 계신 여러분, 그 여러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할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문제, 그리고 교육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또 느끼고 있으실거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정확한 말로 표현해내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다만 저는, 교육업계의 여러가지 모습에 익숙하고, 한명의 게이머, 그리고 한명의 개발자로서 게임업계의 여러가지 모습에 역시 익숙하다는 장점 아닌 장점을 지니고 있기에 이곳에 아직 글을 적지 않으신 다른 분들보다 먼저 이 글을 적게 된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글을 눈으로 훑어 내리시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신다면,

 

 전 정말 기쁠겁니다.

 

1. 교육이 가르쳐야할 것.

 

 이런 사범대학 1학년생 중간고사 레포트 같은 주제로 1장을 시작하게 된것이, 몹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교육이 가르쳐야할 것들은 사실 각 학과목별로 상이한데다가 원론적인 문제이니 만큼 정답들이 많이 주어져 있다는것, 그리고 우리나라는 1개의 정답 외에는 나머지는 대충 오답처리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에 다들 그 정답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 등을 들어, 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게임과 교육이라는 주제에 반드시 필요한 논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명확하게 정의를 내려야만합니다. 우선 "교육" 부터 시작합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교육" 이라는 단어를 "초/중등 교육"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최근의 "교육"이라는 단어는 미국식 교육 만능주의에 힘입어 직업 교육 및 평생 교육을 포괄하고 있습니다만, 좁은 의미로 "초, 중, 고등학교 교육" 그것도 "특성화가 아닌 일반 인문계" 교육만을 아주 좁게 잡겠습니다.

 

 그럼 이 교육이 가르쳐야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범위가 줄어든만큼 대답은 더 간단해집니다.

 

 원론적으로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함양" 하는 것이 그 시절 교육의 목표입니다.

 

 이런 대답은 누구든지 할 수 있고, 그럴듯하고 멋지다는 장점과 함께 쟁쟁한 외국 이름 선배님의 후광을 잔뜩 받아서 삐까 뻔쩍하게 빛낼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이 대답은 여러모로 최고지만, 우리는 아쉽게도 더 점수가 높은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정해진 룰안에서 경쟁하는 법, 그리고 그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법을 가르치는것. 이 바로 우리 교육의 목표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옳은 목표였는지, 그른 목표였는지를 가리는것은 별로 중요치가 않습니다. 사실은 늘 그렇듯 그냥 그 자리에 있을뿐이니까요. 이걸 움직이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다만 저런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일단 저게 있다는걸 인식하고 넘어가는게 중요합니다. 제가 교육 바닥에서 굴러먹으며 본것은, 저것이 다인데,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동의하시는 분은, 더 읽으시면 됩니다. 동의 못하신다면 3으로 그냥 넘어가주세요.

 

2. 교육이 가르치는 것들에 방해되는 것들.

 

 위에서 언급한것을 그대로 끌고와서 "정해진 룰안에서 경쟁하고, 이기고 지는 법" 을 가르치는 교육은 처참하리만큼 야생적이지만 그런 만큼 원색적입니다. 더 해서 더욱 확고한 그 보상, 즉 이긴자에게 모든 권리를 몰아주고 그 권리에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 것. 그것까지 포함하면 교육이 가르치는 것들에 방해되는 것들을 쉽게 정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입니다.

 

 정말 모든 것입니다. 다만, 그 모든 것들에는 순위가 메겨집니다. 예를 들면 밥먹는 시간은 확실히 싸움에서 뒤쳐지게 만들고, 패배의 요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필수적이고, 또 모든 사람이 다한다고 보기에 좀 덜 나쁜게 됩니다.

 하지만 덜 필수적인것, 혹은 심지어 "나쁜 영향을 끼치" 거나 "공부 안하는 애들" 집단의 행동과 유사한 행동으로 분류된것은.... 아주 방해되는 것들로 분류되는거죠.

 

 그럼 이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게임' 은 어떤가 살펴보겠습니다.

 

1) 게임은 학습에 필수적인가?

 

 정답은, 아닙니다. 게임은 학습에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제가 세미나를 자주 참석하는 편인데,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어떤 교장선생님께서는 자랑스럽게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컴퓨터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저들은 지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교보제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국내 교육의 목표인 "정해진 룰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쨌든 이겨라.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해라." 는 게임만큼 사람들에게 잘 가르쳐줄수 있는게 없을겁니다. 하지만 저건 게임에서 배운다고 다른데 적용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지라, 별 도움이 안되겠지요.
 
2) 게임은 모든 사람이 하는가?
 
 아닙니다. 다만 변해가고 있습니다. 과거 '만화' 가 처음 도입되었던 시절, 만화는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었고 교육에 몹시 방해가 되는 것으로 분류되어 엄청난 공격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나아졌죠. 그런겁니다.
 
3) 게임은 학습에 방해가 되는가?
 
 과몰입을 유도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해서, 우리나라에서 현재 목표로 삼고 있는 "그 룰"에 속해있는 공부가 워낙 재미가 없기 때문에(정확히 말하자면, 과도한 노가다와 스킬 레벨과 경험치바를 가려둔, 심지어 보상이 다소 랜덤으로 나오는 무조건 해야만 하는 온라인 게임에 가깝습니다.) 다른 게임들이 너무 재밌는 영향도 있어.... 간단히 말해서 그 게임으로 승부를 가릴게 아니라면 게임은 안하는게 좋습니다.
 
4) 게임은 불량한(혹은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행동인가?
 
 네, 그렇게 분류됩니다. 실재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에서 게임잘하는 애가 공부 잘하는 애일 확률은 학년이 올라갈 수록 낮아지더군요. 그리고 학부모의 모든 기준은 최종 결과로 수렴하기 때문에.... 게임은 불량한 학생들의 행동 맞습니다.
 
 즉, 네가지 중 세가지 기준에서 때려죽일 물건이라는 결론이 나왔으니. 게임은 때려죽일 물건이 맞습니다. 그리고, 계속 때려죽이시면 됩니다. 몹쓸것. 
 
3. 게임의 교육성, 게임이 가르치는 것들.
 
 자, 지금까지 온갖 개소리들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개소리라고 할것 까지는 아니고. 매우 속물적이며 근시안적이고 편협하면서도 딱, 표면밖에 보지 않는 관점이었습니다. 문제는 저런 관점이, 꼭, 꼭, 적은것만은 아니라는것을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는것 정도 되겠네요. 아주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교육의 목표가 사람에게 어떤 특정한 능력들,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함양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흔쾌히 납득할겁니다.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것이 아닌, 경쟁과는 완전히 무관계한 "능력이 있고 / 없고" 의 문제도 분명히 교육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들을 갖추는데에 게임은 강력한 도구입니다.
 
 요즘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ADH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증세(?)자체는 집중력이 부족하고, 무슨 일을 해도 집중을 못한다는 것인데.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이 증세를 보입니다. 최근은 이를 감별하기 위한 간단한 시험(?)이 이뤄지고 그에 대해 약물 치료까지 이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 약물이 별다른 문제점은 없는데 좀 졸리고 의욕이 없어지는 듯 하더군요.
 
 왜 이 친구들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이 친구들은 선천적으로 집중을 못하는것이 그 특징인데, 게임을 할때만큼은 집중을 합니다. 놀라울정도로, 정상인(?)과 구별이 안됩니다. 게임의 종류라도 가리면 모르겠는데, 간단한 퍼즐 게임부터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 집중을 잘합니다. 이들 마저도 집중시킬수 있는 엄청난 몰입력, 이것이 바로 게임의 "교육적 도구" 로서의 제 1번 무기입니다.
 
 또한, 게임은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공부를 하게 만드는 효과가 확실합니다. 예를들면 A4 두장 분량은 족히 나오는 레이드 공략을 중학생들이 줄줄 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남에게 설명하는 재주도 남다르게 보여주더군요. 무언가를 그렇게 통달하고, 의욕적으로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도 게임의 강점중 하나입니다.
 
 더해서, 게임은 내부적으로 이미 교육적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튜토리얼, 이라는 것이죠. 새로운 룰을 배우고 그 룰에 익숙하게 하는 과정을 가르치는 아주 간단한 구조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이 튜토리얼을 개발했다는 소문과, 튜토리얼을 개발한 사람이 교육계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못들어봤습니다만. 교육자인 제 입장에서 튜토리얼들의 "가르치는 방식"은 배울점이 많습니다. 전통적인 교육과 완전히 유리되어 잉태된, 실용 위주의 교육인 만큼 더욱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임은 사람에게 노력과 그 가치, 그리고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들에 대한 선경험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값진 교육효과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게임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더 깊게 해보자면, 물론 게임은 확률 덩어리입니다만, 하나하나 쌓아가다보면 그 확률을 뚫고 무언가를 "이루게" 해줍니다. 이 "이룸"은 게임의 근본적인 재미이자.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요소 입니다. 이 "이룸"을 게임에서 익혀서 게임 밖에서도 해낼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만... 현실은 모든이가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모양인지, 아니면 어딘가 우리가 잘못생각하고 있는지, 게임처럼 단순히 주어진 과제(퀘스트)를 성실히 수행하고, 노력을 겹쳐쌓아서 이뤄지지 않더군요.
 
 각설하고, 그런 소중한 경험을 게임은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체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게임의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임은, 인간과 사회를 닮았지만, 그 속도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게임 내의 모든 사건은 몇배속으로 흘러가고,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많은 일들은 쉽게 극단성으로 치닫습니다. 예를들면 전재산을 하루아침에 탕진하고 직장에서 일을 못하게 되는, 그런 엄청난 경험을 현실에서는 자기 손으로 하게 되기 쉽지 않지만, 게임에서는 강화기 앞에서 쉽게 경험하게 됩니다.
 
 충동구매 역시 마찬가지죠. 전재산 들어먹을정도로 쓸데없는걸 팍팍 사보신 경험이 게이머라면 몇번쯤 있으실겁니다. 그리고 패치 한번에 가지고 있던 물건이 쓰레기가 되는 경험 같은, 현실에서도 종종 이뤄지지만 대처가 쉽지 않은 그런 경험들을 잔뜩 하게 됩니다.
 
 인벤토리나, 하우징, 상점 이용에 대한것도 그렇습니다.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인 정리정돈, 돈계산을 배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인벤토리를 통해서 얻는 깨달음은 단순히 정리정돈뿐이 아닌 "인벤은 아무리 넓어도 부족하다." 는 절대 진리를 깨닫는데까지 이어지는데, 이 깨달음은 나중에 무조건 큰 평수로 이사가고 싶은 "우리집은 왜이렇게 좁지. 물건을 놓을데가 없어" 증상에 체득된 정답을 제시해주기 까지합니다. 이렇게 게임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경험해서는 안되고, 또 경험하기에 치뤄야할 대가가 많은 것을 미리 경험시키고, 그 대처를 체득하게까지 합니다. 다만 다들 그것을 "그건 게임에서 이야기고" 하고 넘어가서 그 가치가 안보이는것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맺으며.
 
 예, 사실 게임은 교육의 적이 맞습니다. 하지만 배울건 배우고, 또 쓸건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중에 여러분 자녀분들이 게임을 할때, 두번쯤은 생각하고 말리도록 합시다.
 
PS. 저라면 몽둥이 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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