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비스되는 온라인게임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제작됐는데, 제목이 '우리의 게임을 찾아서'라니, 지금은 우리 게임이 없다는 말인가?” 하며, 웬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물론 게임 제작사의 국적만 본다면 모두 우리의 게임이 맞습니다만, 그 내용들을 놓고 ‘진짜’ 우리의 게임이라 내세울 게 몇개나 있는지 세어본다면 좀 달라지겠죠. 열 손가락도 채워지지 않아 '이거밖에 없나' 의문을 품으실 테니까요.
온라인게임의 주류를 이뤘던 MMORPG의 경우 장르와 소재 특성상 대부분 서양 판타지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아시아권에서 한국 온라인게임의 인기가 높아져 수출 실적이 좋아졌을 때는 동양 판타지라 불리는 중국문화 색이 짙은 무협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고전소설이 우리 게임의 주 내용물이 되었습니다.
온라인게임에서 동양적인 이미지라 하면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삼국지, 봉신연의 이외에도 여러 무협물과 역사물, 그리고 일본의 닌자, 사무라이, 전국시대, 인기 만화,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나아가서는 전세계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게임을 만드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람의 나라> <조선협객전> <거상> <칼> <군주> <이터널시티> <퇴마록> 등과 같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판타지, 우리의 게임을 만든다는 포부 아래 제작, 서비스된 게임들도 있었습니다.
이중에서 현재 제대로 서비스되고 개발이 계속되는 게임은 몇개 안 된다는 것과, 7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 역사와 문화를 담은 게임이 고작 이 정도밖에 없다는 것은, 소위 온라인게임 강국이란 명칭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을 어찌 게임 개발사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근본적인 문제는 찬란하고 파란만장했던 우리 역사와 문화 컨텐츠 개발 노력과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데 있지 않을까요?
공중파는 물론이고, 케이블TV 만화 채널을 보면 99%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들이 매일 방영되고 있습니다. 출판만화 분야 역시 오래 전부터 일본 만화들에 밀리고 불법복제로 침체된 지 오래입니다.
반면 TV드라마, 영화, 소설에서는 다양하고 꾸준한 노력이 있어왔습니다.
<다모> <대장금> <용의 눈물> <태조왕건> <무인시대> <불멸의 이순신> <해신> <은행나무 침대> <영원한 제국> <무사> <청풍명월> <황산벌>...... 등등 지금까지의 모든 타이틀을 전부 나열하기 힘들만큼 이런 작업은 계속돼 왔습니다.
올 하반기만 해도 백제 30대 왕이었던 ‘무왕’의 일대기를 그린 <서동요>, 고려말의 신승 ‘신돈’을 재조명할 <신돈>(원작:다정불심), 고구려, 백제, 신라의 탄생부터 삼국통일까지의 고대사를 그린 소설<삼한지>가 대하드라마로, 제작비만 30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는 광개토대왕 ‘담덕’의 일대기가 핵심인 <태왕사신기>, 고구려 말기 강력한 집권자로 군림했던 ‘연개소문’의 시대를 그릴 <연개소문> 등이 TV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며, 영화계에서도 최근 개봉된 <천군>에 이어, <무영검>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붐을 일으킬 정도로 사극이 인기를 얻은 것을 단순히 유행의 흐름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그들은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해서,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을 것이고, 작가들과 미술팀 등은 충분하지 못한 자료에 허덕이며 항상 상상과 고증 사이에서 고민을 하며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유명 연기자의 열띤 연기와 화려한 화면 뒤에 보이지 않는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시대극에 열광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온라인게임 제작에서 그런 노력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인지 묻고 싶습니다.
헌데 현재 영화 시장을 뛰어넘을 정도의 시장규모를 보여주는 온라인게임은 어땠습니까?
PC패키지 시장은 무너지고, 비디오 게임 시장은 걸음마 수준이고, 게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화, 애니메이션 시장은 현실적으로 마비 상태에 있다고 하지만, 온라인게임만큼은 계속해서 성장해왔으며 이미 그 시장규모는 1조원대를 돌파하였습니다. (많은 업체들이 힘들다고는 하나 시장이 죽은 건 아닙니다.)
이런 온라인게임에 한반도 역사와 문화를 다뤄주는 게임이 가뭄에 콩 나듯, 시도만 하는 것도 자랑이 될 정도로 개발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수치가 아닐는지? 매년 3월1일과 8월15일이 다가오면 가끔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 식민지’라는 말...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 컨텐츠 개발노력 없이 지금 이대로 이렇게 흘러간다면 온라인게임 분야 역시 ‘식민지’가 될지, 아니 이미 되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의 내용이 국적 불명 서양 판타지, 중국의 고전, 무협소설과 역사서, 일본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은 컨텐츠로 채워지는데, 이것을 과연 진정 우리 게임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봅니다.
이미 많은 게임들이 수출을 위해 또는 소재가 매력적이고, 시장에서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중국의 역사와 고전을 원작으로 하여 개발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개발될 예정입니다.
일본 문화개방 이후로는 게임상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현재 게임 기획, 개발, 디자인하는 세대들이 어릴 적부터 일본 만화와 게임을 주로 즐기며 자란 점에서 비롯된다고도 할 수 있으나, 원인은 이런 이미지를 시장이, 우리들이 선호한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최근 선보인 게임들만 봐도, 개발단계에서부터 중국, 일본 수출을 생각하고 만든 <요구르팅>에서는 한·중·일 캐릭터들이 총출동 하며, 그 중에서도 게임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일본색이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오픈한 <삼국천하> <천도>는 중국의 고전 ‘삼국지’와 ‘봉신연의’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8월 오픈을 준비중인 <던전&파이터>에는 케이블TV 등을 통해 익히 봐오던 만화에서 나오는 일본식 한자 발음의 기술과 몬스터들이 나오고, 며칠 전 비공개 테스트를 시작한 <건들렛>에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모습을 한 ‘시키가미’라는 소환수가 등장합니다.
<구룡쟁패>는 정통무협 세계 구현을 위해 고증 작업을 통해 게임을 디자인된 게임으로, 퀘스트에 고려청자 얘기가 등장하거나, 게임에서 등장할 ‘중원랑객’이라는 영웅이 조선 해동 출신이란 점을 빼고는 중국 무협 이미지를 살리는데 주력하였고, 중국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참여한 <길드워>에는 동양적인 캐릭터라는 이름 하에 ‘몽크’ 캐릭터가 중국인을 모델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게임상에서 괜히 쿵푸를 하는 것이 아니었죠.
RPG는 서양 판타지 세계관을 가지고 만들 수밖에 없고, 무협은 원래부터 중국이 원조고,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본 게임과 만화에서 컨텐츠를 빌려올 수밖에 없다는 이 현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번 주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게임들을 죄인으로 만들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외국의 문화 컨텐츠를 즐기는 것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버리는 시장 선호도에 있고,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 컨텐츠 개발 노력이 너무 미미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단지 수출 성과를 위해, 투자를 좀더 쉽게 받기 위해, 발굴되고 개발되어 있는 우리 컨텐츠가 부족해서, 위험부담이 적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 미루고 기피하는 현실은 만드는 이들, 즐기는 이들 모두가 자성의 시간을 가져봐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몇개 게임의 실패로 사실상 그런 게임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과 해도 안될 것이라는 억측들로 이렇다 할 개발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된다는 생각이전에 과연 얼마나 컨텐츠 개발에 힘썼는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를 소재의 한계라고 보기엔 힘듭니다. 게임의 한계였다고 봐야 된다는 얘기지요.
우리가 태어난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는 참으로 매력적인 소재가 무수히 많습니다.
서양 신화들 못지않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한반도 역사엔 이름을 남긴 영웅들 또한 즐비합니다. 청동기문화, 철기문화, 불교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운 곳, 동북아 최강국으로 군림했던 역사, 끊임없이 분열하고 침략 당했던 역사,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이렇게 다채로운 나라가 어디 흔한가요?
(인터넷에선 대충 검색만 해도 며칠밤을 새야 할 정도로 얘깃거리가 풍부한 민족입니다.)
몇몇의 드라마가 수출되어 해외에서도 점차 한반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데, 수출에서만 3억8,000만 달러 규모를 돌파한 한국 온라인게임 계에서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게임은 고작 몇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라니, 아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드라마들에서와 같이 전문 작가의 육성과 역사, 문화 컨텐츠 개발노력이 대형 업체를 필두로 활발해진다면 이런 아쉬움이 언젠가는 지나간 옛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희망해봅니다.
“한국 게임에 한국은 없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게임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는 외면당한 채, 언제까지 얼마나 더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컨텐츠 개발에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업체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게임 관련 정부부처,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 한국게임산업개발원 등에서 나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라인게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느라 챙기지 못한 자국 역사와 문화 컨텐츠 개발을 현재도 소홀히 하고 있으며, 게임 내용들 또한 세계관을 살린다는 이유로 발음대로 한글로 옮겨 적고, 국적 불명의 외래어와 갖가지 게임 용어들이 혼용되어 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작년 겨울 <월드오브워크래프트>라는 한 해외 온라인게임은 현지화라는 이름으로 게임내 한 종족의 도시에 숭례문을 꼭 닮은 건물을 입구에 만들어 놓고, 마을 곳곳에 있는 건물과 가구, 일부 아이템 디자인 등에 한국 정서를 반영하는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게임은 이와 함께 게임 내에서 쓰이는 수많은 말과 음성을 일부 인물, 지역 명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수준 높은 한글화를 통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직역 수준이 아닌 적절한 우리말 표현으로 원작의 특색을 살리는 수준으로, 한자어를 포함한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나온 어색해서 게이머들이 적응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평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이는 다른 게임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국내 업체들이 몇 개의 게임을 제외하고는 대단히 소극적이었던 이런 시도를 외국 게임이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려선 안될 것이며, 그런 시도와 노력을 우리의 손으로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훗날 "우리 역사가 배경인 괜찮은 대작 온라인게임 하나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요?
▶ 현재 개발중인 ‘우리’ 게임들!!
- <거상2> 16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경제 온라인게임 <거상>의 속편, 올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며 ‘조이온’에서 개발 중이다.
- <신암행어사> 동명의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현재 ‘조이온’에서 2006년 서비스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 <계백전> ‘마루게임스’에서 개발중인 우리 역사인 삼국시대 백제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온라인 연재 SRPG, 차후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삼한일통>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와 유사한 게임으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제작에 들어갔으나, 지난 2004년 12월 개발 중단을 선언하면서 팀이 해체되고 사실상 개발이 중단된 상태이다. 현재 다음카페에서 자료를 보존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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