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극렬'팬'이었던 제가 어쩌다가 이렇게 마비노기 극렬'까'가 되었나 개탄스럽습니다.
초창기 마비노기는 자유로운 성장과 반턴제 전투 시스템 뿐만 아니라 캠프파이어로부터 비롯된 활발한 커뮤니티와 능력치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디자인의 의상을 통해 옷을 갈아 입히며 즐길 수도 있는 다양한 강점을 갖춘 게임이었습니다.
지금의 변질된 마비노기는 현존하는 다른 게임과 비교해봐도 큰 매리트를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 사실은 제게 커다란 배신감을 안겨줬습니다. 이미 초창기 마비노기의 매력에 길들여진 저는 이제 다른 어떤 게임도 손대지 못하고 한숨만 쉬고 있죠.
(어쩐지 오랜기간 믿고 의지하며 교제하던 연인에게 이별당한 것 같은 말투라 묘하게 어색하지만 일단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 넘어가겠습... 아니 글쎄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진 않다니까요;;)
저는 이 모든 사태의 원흉으로 무한환생을 꼽습니다.
솔직히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오토디펜스의 존재도 제게 있어선 충격이었고 불평거리였지만 그건 다른 수많은 장점으로 커버가 됐습니다. 뭐, 지금와서 보면 '오토디펜스 도배'로 인한 불만은 여전하지만 말이죠.
무한환생이 캐릭터 성장의 제약을 풀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약이 없다'는 것이 '자유로움'과 같은 말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마비노기에도 분명 캐릭터 성장의 제약이 있었지만 클래스와 직업군을 나누어버리는 타 게임에 비하면 월등한 자유도라 분명히 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느낀 마비노기의 자유도 또한 그와 같은 맥락이었죠.
'올마스터'를 허용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방종입니다. RPG에 있어 R을 무시하는 처사죠.
하지만, 그것도 사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역할이 필요한 스킬을 필요한 수준으로 키워서 효율적으로 '솔플'을 하는 캐릭터라면 원하는 그 방식으로 키워야죠. 그게 마비노기가 가진 자유도의 장점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묵묵히 한 우물만 판 유저'보다 '잡캐를 키운 유저'가 더욱 강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잡캐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 우물만 파고든 캐릭터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 배경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무한환생입니다.
물론 스킬 계열별 특성화에 실패했다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죠.
무한환생이 없었다면 유저들은 자신이 꿈꾸는 역할을 향해 한걸음씩 캐릭터를 성장시켜갔겠죠.
과연 무한환생으로 AP를 무한대로 누적할 수 없었다면 제련과 방직이 DEX를 높이기 위한 필수 교양 스킬로 전락했을까요? 그럴리 없다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활을 이용한 원거리 전투를 위해 필요한 DEX를 얻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스킬은 '레인지컴뱃마스터리'였을테니까요. 하지만 무한환생이 가능해지면서 레인지컴뱃마스터리를 성장시킬대로 성장시킨 유저들은 남아도는 AP를 방직과 제련에 쏟아부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그 스킬이 활 데미지를 높여주는 DEX를 높여주니까요. 그러다보니 '어라, 실패수련이 필요한데 솜씨(DEX)가 높으니 힘들구나' 하게 된거고, 그로 인해 지금 마비노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유저들은 지루함을 억지로 참으며 제련부터 찍습니다. 윈드밀도 마찬가지죠. 지루함과 괴로움을 억지로 참으며 윈드밀부터 1랭 만들고 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돈에 눈이 먼 운영에 의해 계획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잡캐만큼 훌륭하게 무한환생을 반복해댈 캐릭터는 없거든요.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환생은 곧 돈이죠. 그러니 유저들을 '잡캐'라는 오직 하나의 제한된 직업으로 내몰았을 수 있죠. 최대한 많은 이익을 원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지금의 마비노기를 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돈에 미쳐 게임을 말아먹으려드니까요.
추가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극심한 초보유저와 고수유저 간의 격차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도 두말 할 것 없이 무한환생입니다.
간단히 옛 리니지의 예를 들어볼게요. 리니지를 그렇게까지 즐기진 않았지만, 리니지를 즐기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레벨 49에서 50을 만들기 위해선 1부터 49까지 키우는데 들인 노력을 한번 더 들여야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간단한 산술이 가능해집니다.
여기 이제 막 레벨 49에 도달한 고수와 이제 갓 시작한 레벨 1의 뉴비가 있습니다. 레벨 49의 유저가 레벨 50을 만들기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동안 동일한 노력을 들인 뉴비는 레벨 49를 만듭니다. 격차가 컸지만, 뉴비는 48이라는 어마어마한 레벨 격차를 1로 줄여냅니다.
여타의 모든 게임이 동일합니다.
하지만 마비노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부익부빈익빈. 누적레벨이 높을수록 캐릭터의 성장은 가속화됩니다. 일주일도 필요 없이 하루면 질린다고 할 정도로 레벨을 올리고 멍하니 시간보내다가 한주가 지나기 무섭게 환생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죠. 그리고 계속해서 스킬을 찍어올립니다. 이미 한가지 계열에 있어선 마스터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른 스킬을 마구마구 찍기 시작하죠. 모조리 다 찍어버린 채, 혹은 반복수련에 지쳐 내버려둔채 새로운 스킬의 도입만 기다리며 AP를 누적시켜갑니다.
누적 3000을 돌파한 제 친구가 딱 그렇더군요. 그리고 연금술이 도입되고 터무니없는 수련량을 보며 마비노기를 접어버렸습니다. 목표를 상실해버린거죠.
그래요. 결국 마비노기에서 제공할 수 있는 유저들의 컨텐츠 소모속도 조절 방책은 터무니없는 수련량 뿐입니다. 이미 가속화될대로 가속화된 유저들의 성장속도와 컨텐츠 소모속도는 운영차원에서 컨트롤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하는 여담입니다.
저는 마비노기의 반턴제 전투시스템을 아주 높게 평가하는 유저입니다.
그래서 오토디펜스의 존재에 불평했었죠. 그리고 기껏 '더욱 강력한 몬스터'라고 등장하는 녀석들이 하나같이 3종 오토디펜스를 온몸에 두른 피통 짱크고 공격력 짱세고 똘마니 짱 많이 부리는 몬스터라는 사실에 그 불평과 불만이 커져갔죠.
치고 막고 날아가는 방식의 다이나믹한 마비노기 전투는 이미 없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절대적인 다운판정을 지닌 윈드밀만 난무하죠. 드물게 터지는 크리티컬 기대하며 스매시를 꽂아주느니 손쉽게 터지는 윈드밀의 크리티컬을 더욱 선호합니다. 오직 윈드밀 윈드밀 윈드밀.
사실상, 제가 마비노기를 집어치우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도플갱어입니다.
경악스러웠습니다.
새로운 몬스터, 좋습니다. 나의 모습을 카피하는 몬스터, 좋습니다. 새롭게 도입된 연금술 스킬을 사용하는 몬스터, 훌륭합니다. 수 많은 똘마니 소환, 맘에 들지 않으나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똘마니들은 막무가내로 집단 공격을 퍼부을 뿐 이렇다할 신선함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플갱어!
무경직에다 스매시를 맞고도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그 자태!!
'너는 때려라, 난 실린더 장전한다'+'너는 때려라, 난 널 때린다'
제가 가장 경멸하는 방식의 전투입니다. 맞는 모션조차 없이 묵묵히 할 일만 하죠.
솔직히 그 도플갱어와 싸우면서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이가 갈렸습니다.
기껏 강한 몬스터라고 내놓은게 고작 이건가 싶었습니다.
'앞으로 무경직 몬스터 쿵쿵 찍어내겠네? 피통 크고 공격력 세면 이제 양산도 되겠네?'
네, 곧바로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맘 놓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몬스터를 양산해낼거라 생각하니 섬뜩했습니다. 마비노기, 너희가 자랑하던 반턴제는 어디다 내팽개쳐버린거냐! 싶었죠.
그 외에도 뭐 섬세함을 잃어버린 개발방식, 팀장이 교체될때마다 산으로 우주로 차원을 넘나드는 개발과 운영 등등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크게 꼽는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무한환생입니다.
불을 보듯 뻔히 보이는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걸까요? 하니면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오늘날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돈만 뽑고 집어치우자는 심산이었을까요?
많은 유저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면서라도 돈을 벌고싶었다면, 훌륭한 방법이라고 해야겠죠.
....차분하게 쓰려했는데 쓰다보니 감정이 격해지네요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