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비주얼 노블 장르의 게임은 뭐라 평하기 좀 그렇습니다.
비주얼 노블 이라는 게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중간에 선택을 넣고 이에 따라 내용 전개가 변하는 걸 즐기는 게임이라. 게임 시스템 적으로 따지고 들기도 그렇다고 내용적인 면을 따지고 들기도 힘듭니다. 게다가 저 스스로부터가 미스터리 장르의 열렬한 팬이고 탐정소설을 쓰는 아마추어 소설가이다 보니 평소보다 더 강한 주관이 들어갈까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어쩔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평소 보다 강한 주관이 들어간 탓에 제가 기존에 평한 게임들에 비해서 형평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밀도가 짙은 평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탐정의 왕은 무료로 공개된 프롤로그와 유료로 플레이 가능한 상, 중, 하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현재 플레이 가능한 건 상편 뿐 이라 나머지 중, 하편은 플레이 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게임을 클리어하고 리뷰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하편이 나왔을 때 리뷰를 했다간 시간이 너무 늦어지기 때문에 리뷰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만약 하편이 공개된 후에 정정 할 곳이 있다면 그 때는 그에 대해서 리뷰를 한 번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장르의 한계인가?
까놓고 말해서 탐정의 왕은 오마쥬적인 면이 강한 게임입니다. 현장의 수사한 부분을 탭해서 단서를 얻고, 얻은 단서를 인물들에게 제시해서 또 다른 정보를 입수하는 것. 그리고 추궁 시스템은 역전재판 시리즈의 시스템과 동일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게임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자유를 빼앗고 강제로 살인게임에 참가하게 하는 것과 게임에 참가하는 인물들 중 범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고유한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PSP로 발매된 게임 단간논파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 점을 가지고 탐정의 왕을 깎아내릴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든 단간논파 역시 역전재판의 시스템을 일부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역전재판 역시 진구지 사부로 시리즈와 닮은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탐정의 왕의 게임 진행 중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역전재판과 단간논파를 들먹이며 스스로 닮아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스터리 비주얼 노블 장르가 가지는 한계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 단계 더 진화된 비주얼 노블 시스템을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탐정의 왕이 특별함이 없는 그저 그런 게임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2. 선택이 상황을 변화시킨다.
비주얼 노블이라는 장르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게임입니다. 아니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중요하고 선택지가 있더라 하더라도 사건의 큰 틀 까지는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주얼 노블 장르는 선택지가 많은 강제 진행 형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선택지가 있다 해도 그 중 태반은 게임오버로 향하는 선택이고 엔딩을 본다 해도 굿 엔딩이 아니면 다시 게임을 처음부터 플레이해서 옳은 선택을 찾아야 하는 반복형 게임입니다.
탐정의 왕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대한의 자유도를 주려고 노력한 것을 게임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보통 사건조사 파트에서는 주어진 모든 단서들을 수집해야 다음파트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건 강제성이 있고 주인공이 얻는 단서의 수가 변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탐정의 왕은 다릅니다. 주인공이 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부분을 조사 했냐에 따라 추리 파트에 가져가는 단서의 종류가 변합니다. 그리고 이는 사건의 결말을 변화시킵니다. 결말을 변화시킨다는 건 엔딩의 수를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결말이 변하며 이렇게 변한 결말은 다음 이야기에도 영향을 줍니다.
3. 억지를 설정으로 풀어낸 이야기.
이야기 적인 면에서 탐정의 왕은 평범합니다. 전형적인 탐정 소설의 사건과 구조, 그리고 어제까지 친구였던 등장인물이 하루 밤 사이에 돌변해서 물어뜯는 장면은 앞서 말한 단간논파나 다른 매체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라 새롭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적인 면 외의 다른 부분들이 눈에 거슬리고 답답합니다.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장르는 단서를 모으고 이를 이용해 모순과 트릭을 파해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결과를 근거로 용의자를 추궁하고 범인을 밝히는 것이 순서입니다. 하지만 탐정의 왕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는 직감을 무기로 활동하는 미나리 라는 이름의 탐정이 존재합니다. 이 탐정은 작중 주인공의 조수로 활동하며 조사파트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줘서 큰 도움을 주지만 이게 추리파트까지 연결되는 게 문제입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지금 내 감이 좋지 않으니 어떻게든 해 봐라.’ 이렇게 방향을 제시 줍니다. 설정이 설정이니 이해는 할 수 있는데 사건을 추리하는 입장에서는 맥이 빠지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범인으로 지목 된 자와 살해 방법의 모순을 밝히는 장면에서는 더 가관인데 지금까지 단 한번 도 언급된 적도 없었고 조사파트에서도 이에 대해 전혀 정보를 얻을 수 없었는데 갑자기 선택지에 범인이 범행을 실행 할 수 있었던 방법이 떡하고 떠오릅니다. 그것도 장난 식의 의미 없는 선택지와 같이 말이죠.
한 마디로 추리파트의 구조가 엉망입니다. 상편의 추리파트도 마찬가지로 눈앞에 뻔히 보이는 의문점은 한 번도 지적하지 않다가 갑자기 트릭을 설명하더니 사건이 종료됩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대활약을 해야 할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화만 넘기다 보니 사건이 종결된 거와 같습니다. 적어도 현장사진을 제시해 주고 어느 부분이 의심스러운가? 같은 문제를 내서 한 단계씩 플레이어가 집적 사건을 풀어나가는 식의 접근으로 사건을 풀어나갔어야지 플레이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게임 속 주인공들 끼리 알아서 사건을 푸는 걸 보고만 있는 것을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4. 도대체 무엇이 하드코어 한가?
탐정의 왕이 출시 전에 하드코어라는 단어를 내세웠고 이는 정말입니다. 탐정의 왕의 난이도는 정말 어렵습니다. 단 어렵다는 건 추리나 조사 파트가 아니라 게임의 엔딩 수집에 대해서입니다.
게임의 엔딩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사건 전, 그리고 사건 후에 어떤 선택지를 선택 했나에 따라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는 한 번 게임을 클리어 하고 나면은 사건의 피해자와 범인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를 생각해서 선택지를 고르고 하면 대충의 엔딩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엔딩은 정말 찾기가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각 인물에 대한 호감도 시스템과 각 챕터서의 결정이 다른 챕터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호감도 시스템은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그러니까 하편에서의 최종 엔딩에 영향을 미칠 뿐 중간 과정의 엔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엔딩을 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상당히 줄어들긴 합니다만 조사 파트는 물론 추리 파트까지 선택지가 불필요하게 많은 게임이다 보니 모든 엔딩을 수집하려면 난이도가 만만치 않습니다. 만약 이런 방법의 엔딩 수집 방법을 좋아하신 다면 꼭 탐정의 왕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엔딩의 입수는 추리파트와 더불어 실망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저는 엔딩의 변화가 조사파트에서 입수한 단서의 개수와 추리파트에서 단서의 올바른 사용 법 이 두 가지가 적극적으로 결말에 영향을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단서가 부족하면 범인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거나 아니면 모든 의문을 해결하고 완벽하게 사건을 해결하거나 그런데 이런 부분보다는 선택지에 따른 호감도에 의해 엔딩이 갈리는 것이 대부분이라 안타까웠습니다.
정리합니다.
결론을 말 하자면 미스터리를 푸는 재미를 기대하시고 이 게임을 구매하시려는 분들은 구입을 하지 않는 걸 권합니다. 차라리 추리소설을 읽는 쪽이 백번 더 유익합니다. 나중에 중편과 하편이 공개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내용은 절대로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즐길 만한 게임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스터리를 장르라는 것을 배제하고 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선택지도 많고 증거제시로 볼 수 있는 텍스트도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전 사건의 결말이 다음 사건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매력적입니다.
탐정의 왕은 아직 모든 편이 출시가 되지 않고 무료인 첫 번째 챕터와 유료로 구매 할 수 있는 상편만이 출시된 상태입니다. 후에 마지막 편까지 공개가 되고 모든 플레이를 마치면 그 때 한번도 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