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반가움과 아쉬움의 교차, ‘배틀필드 2042’ 베타 체험기

톤톤 (방승언) | 2021-10-06 18: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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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필드 2042>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대와 관심을 끌고 있는 타이틀이다. 시리즈의 역사와 최근 행보를 돌이켜보면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직전 작품인 <배틀필드 5>를 둘러싼 논란이다. <배틀필드 5>는 기획 및 마케팅에서 팬들의 기대 및 요구와 많은 마찰을 빚었고, 이 과정 중에 임직원 일부가 팬을 적대한 사실이 드러나며 물의를 일으켰다. 여기에 인게임 콘텐츠에 대한 직접적 불만까지 겹쳐 판매부진을 겪어야 했다. 후속작인 <배틀필드 2042>가 전작의 ‘오명’을 씻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시선이 많다.

두 번째는 현대 전장으로의 복귀다. 각각 1,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았던 <배틀필드 1>, <배틀필드 5>이후 시리즈가 다시 현대전 내지는 근미래전으로 무대를 옮기길 바랐던 팬은 많다. 각종 개인장비와 탈것이 시너지와 카오스를 만들어내던 특유의 경험은 <배틀필드 2>에서부터 <배틀필드 4>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시리즈가 사랑받은 비결 중 하나였다.

세 번째는 팬 친화적 마케팅이다. <배틀필드 5> 당시 틀어져버린 팬덤과의 관계를 의식한 듯, <배틀필드 2042>는 마케팅에서부터 팬의 환심을 살만한 요소들을 대거 기용했다. 특히 공식 트레일러에 등장한 시리즈 전통의 기예 ‘랑데주크’ 장면은 FPS 커뮤니티 전반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 나아가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FPS’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자 ‘역대 최대규모의 <배틀필드>’라는 마케팅 수사를 적극 사용하며 기대를 더욱 끌어모은 바 있다. 이에 걸맞게 64인이던 게임 정원을 128인으로 늘리고, 전장 크기 역시 기존 대비 1.5배에서 4배 규모로 확대했다.

지난 10월 4일, 매체와 스트리머를 대상으로 진행된 베타 플레이를 통해, 수개월 동안 궁금증을 쌓이게 만든 <배틀필드 2042>의 실제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심정은, 안타깝게도 플레이를 거치며 우려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 그러나 기존 시리즈에 없던 고유의 플레이경험이 기대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자.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 같은 점과 다른 점

베타테스트는 우주선 발사대가 있는 ‘오비탈’ 전장에서 컨퀘스트 모드로 진행됐다. 컨퀘스트 모드는 시리즈에서 항상 핵심적 역할을  차지해온 전통적 모드다. 룰은 간단하다. 맵에 존재하는 점령 포인트들을 과반수 차지하면 적의 병력 충원 포인트인 ‘티켓’을 더 빠른 속도로 소모시킬 수 있다. 티켓이 먼저 0에 도달하는 팀이 패배한다.

<배틀필드 2042>의 컨퀘스트는 넓어진 전장에 맞춰 이러한 룰에 약간의 변화를 줬는데, 먼저 맵을 몇 개 지역으로 구획한 뒤, 지역마다 점령 포인트를 1~2개씩 배치했다. 점령 포인트가 2개인 경우 둘 다 점령해야만 지역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 게임성에는 차이점이 없어 전반적인 양상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두 작품에 도입된 일부 긍정적 편의 요소를 굳이 ‘롤백’했다는 점은 조금 의아하다. 예를 들어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 주변 아군의 거리가 표시되는 UI가 사라졌다. 부활 화면에서 맵 상의 분대원을 선택하면 ‘줌 인’하여 현재 어떤 상태에 처했는지 볼 수 있게 해주던 유용한 시스템도 사라졌다.



물론 기술적 문제로 구현을 ‘일단 막아둔’ 것일 수 있다(사후 Q&A에서 질문했지만 시간관계상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경우 또 다른 걱정이 앞선다. 게임의 다른 기초적 기능까지 일부 막혀 있었기 때문. 병사 로드아웃 세팅이나 진척도를 확인할 수 없던 것까지는 이해하더라도,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에 필수적인 ‘맵 보기’ 기능(M 단축키)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식 출시가 임박한 현시점에 반기기 어려운 일이다.

전투에서는 특유의 ‘싫지 않은 혼란스러움’이 유저들을 반긴다. 특히 현대전 설정에 맞춰 다양한 개인 전투 장비와 탑승물이 난무하던 3, 4편의 전투와 유사한 경험이 펼쳐진다.

병과별로 장비와 무기가 제한되던 기존의 ‘병과 시스템’이 사라져 플레이어의 선택권이 늘어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된 느낌이다. 선호하는 총기와 맡고 싶은 역할이 서로 맞지 않아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게임의 정체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되었던 ‘스페셜리스트 시스템’도 예상보다 훨씬 더 전투에 잘 어우러졌다. ‘스페셜리스트’들이 지닌 센트리건(자동포탑)이나 그래플링 훅과 같은 특수 능력은 영향력 측면에서 기존의 각 병과가 가지고 있던 UAV, 박격포, 공중폭발탄 등 유용한 가젯들과 비교했을 때 체감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새로 도입된 '그래플링 훅' 능력

 

 

특정 스페셜리스트 능력이 너무 강해 플레이 경험을 해치는 상황도 우려했지만, 베타 테스트 시점에서는 스페셜리스트 숫자가 4명으로 한정된 덕분인지 ‘밸런스 붕괴’가 포착되지는 않았다. 정식 출시 때는 총 10명의 스페셜리스트가 선을 보일 예정이다.

물론 앞으로 추가될 스페셜리스트의 능력에 따라 유저들이 ‘불균형’을 느끼게 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 특히, 병과 시스템 삭제로 장비와 무기 선택 자유도가 높아진 탓에 리스크는 더욱 크다. 밸런싱에 각별히 주의하지 않는다면, 일부 능력이 특정 장비 혹은 무기와 의도치 않은 시너지를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 ‘넓어진 전장’ 자랑거리 삼았지만

‘넓은 전장’은 대대로 <배틀필드>의 상징적 요소였다. 좁은 맵에서 최대 32명의 플레이어가 맞붙는 것이 보통이었던 FPS 시장에서 64인이 동시에 전투를 벌이는 <배틀필드>의 ‘규모’는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러나 <배틀그라운드> 등 대형 FPS가 시중에 많아지고, ‘차세대 게이밍’에 대한 소비자 기대가 커지면서 <배틀필드> 차기작을 향한 혁신의 요구도 함께 커졌다. 이에 맞춰 다이스는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128인 참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듦과 동시에 전장 규모를 급격히 확대하는 적극적 선택을 했다.

그런데, 적어도 이번 공개된 오비탈 맵의 경우, ‘더 큰 전장’에서 오는 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오비탈 전장


1. '공허한' 전장

맵의 크기만큼이나 그 ‘밀도’ 역시 중요한 요소다. 맵의 각 구간마다 구조물, 지형, 이동 경로를 적절히 설계하지 않으면 유저의 이동 및 전투 경험에 아무런 재미를 더하지 못하는 ‘공허한’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무의미한 공백이 많다면 거대한 맵 크기는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다.

오비탈 맵은 아쉽게도 불필요한 공백이 꽤 많다는 인상이다. 일단 조감도를 보면, 단순 산지가 많으며 건축물·구조물의 비중이 전체 30% 정도에 그친다는 사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비슷한 레이아웃을 지닌 맵은 기존 작품에도 꽤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맵의 절대적인 크기와 디테일에 있다.

<배틀필드 4>의 ‘자보트 311’ 맵을 예시로 들어 비교해보자. 조감도로 봤을 때 자보트311 맵을 구성하는  ‘건축물’과 ‘삼림’의 비중은 오비탈 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자보트311 맵을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숲 구간은 오비탈과 비교해 절대적으로 작다. 도보로도 금방 주파할 수 있을 만큼의 면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 머물게 되는 시간은 사실상 짧은 편이다.
 
<배틀필드 4> 자보트 311 전장

 

 

반면 오비탈 맵 A, C, F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산지는 점유 공간이 매우 넓은데 반해 흥미도는 크게 떨어지는 지형이다. 기존 작품들에서 산간지역을 표현할 때 절벽, 계곡, 개울물, 늪지, 동굴 등을 배치했던 것과 달리 오비탈의 산지는 높낮이가 다소 변할 뿐 같은 풍경을 반복한다는 점도 다르게 느껴진다.

다행히 <배틀필드 2042>는 넓어진 맵 크기를 고려해 탑승장비 호출을 훨씬 쉽게 만들어 놓았다. 어느 위치에서든 공중 투하를 요청할 수 있다. 그 덕에 이렇듯 ‘지루한’ 지형을 빠르게 통과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애초에 이러한 공간을 넓게 만들어 둘 절실한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맵의 상당부분은 산지로 구성돼있다.


각 점령지의 구조 역시 디테일 측면에서 아쉽다. 특히 앞서 지적한 A, C, F 지역의 점령지는 산지 한복판에 ‘기본 건물’이 몇 개 배치된 단순한 모습이다. 다시 자보트 311과 비교하면, 각 점령지가 공장, 레이더 기지, 기차역, 벙커, 주택단지 등의 확실한 콘셉트를 가지고 각자에게 맞는 이색적 구조를 띠고 있었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건물의 내부설계 또한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잡동사니만 몇 점 배치된 컨테이너 형태의 몇몇 건물들은 게임의 전반적 완성도를 하락시키는 느낌마저 준다. 복잡성이 떨어져 침투 경로나 방어 전략을 고민하는 재미를 찾기 힘든 건물도 많다.

텅텅 빈 인테리어가 실망을 주기도 했다.
아무것도 배치되어 있지 않은 터널


비교적 정교한 형태를 갖춘 B, D, E 지역 건물들도 막상 그 안팎에서 싸워 보면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복잡한’ 건물인 우주선 격납고마저 복층 구조를 띠고 있기는 하나 내부에 전략적으로 활용할 만한 지형이 많지는 않았다. B지역과 E 지역 사이의 드넓은 도로는, 맵의 콘셉트에는 어울릴지 모르나 보병으로서는 횡단할 엄두조차 잘 나지 않는 지형이다. 엄폐물이 전혀 없기 때문에 탱크 등 장비를 타더라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보병으로서는 막막해지는 구간


2. 실종된 거점 간의 역학 관계

게임 규모를 키운 결과 발생한 또 다른 단점은 거점 간의 역학 관계가 약화했다는 사실이다. 거점끼리의 거리가 워낙 먼 탓에, 한 거점의 점령 상황이 근처 거점의 싸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할 때가 많으며, 서로 단절된 채 각개 전투를 벌이는 경향이 훨씬 강화됐다

이는 단일 플레이어 혹은 분대가 전체 경기 내용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의미가 된다. 거점 간 거리가 적당히 가까울 때는 적절한 거점을 탈환함으로써 전선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거나 더 나아가서는 전황 역전까지 노려볼 여지가 훨씬 많다.

예를 들어 기존 맵 구조에서는 팀이 중앙 거점 탈환에 애를 먹고 있을 때 소규모 분견대로 적의 측·후방 거점을 점령해 역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주변 거점에서 부활한 아군들이 자연스럽게 중앙의 적을 포위하는 형국이 연출되고는 했다.

<배틀필드 4>의 상하이 타워. 골치가 아플 때는 무너뜨리는 선택지도 있었다.

 

 

거대 맵에서는 각 거점의 ‘중요도’와 ‘역할’을 서로 다르게 설정하는 심층적 맵 설계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배틀필드 4>의 ‘상하이 봉쇄’ 맵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설계가 주는 별도의 재미요소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하이 봉쇄 맵 중앙 고층빌딩의 최상층에는 ‘C 거점’이 있다. C 거점은 주변 지대로의 강하가 자유로워 다른 거점의 전황에 계속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주변에 총격을 가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곳이어서, 너무 많은 병력이 여기에 ‘상주’했다가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결국 C 거점의 방어 병력은 일순간 줄어들기 마련이고, 이때를 노려 적이 탈환에 성공하면 전황은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배틀필드 2042>의 경우 ‘태생적’ 한계 탓에 이러한 거점간 상호관계 설정이나, 전선의 자연스러운 형성이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베타 테스트 결과 그 우려는 얼마간 사실로 확인됐다. ‘전선’과 ‘전황’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다 보면 승패가 어느새 ‘무작위’로 정해진다는 인상을 강하게 줬다.



# 게임의 ‘전체 가치’는 속단할 수 없다

물론 베타테스트만으로 게임의 전체 가치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선, 상술한 내용은 이번 공개된 ‘오비탈’ 단일 맵에 국한된 내용이라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기존 시리즈에서도 맵에 따른 플레이 경험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기존 발표 내용에 따르면 본 게임에는 인천 송도 배경의 ‘칼레이도스코프’ 등 소규모 맵들도 준비되어 있다. 설령 대형 전장이라 할지라도, 상세한 레이아웃이나 거점별 기믹, 탑승장비의 숫자 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전술했던 '공허함'이나 거점간 관계 약화 등의 문제도 보완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아시아권 서버의 베타테스트 인원이 충분치 않아 64명이 아닌 30여 명이 한 팀을 이뤄 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빠져서는 안 될 고려사항이다. 정원의 절반에 불과한 유저들 및 AI와 함께 했을 때는 허술해 보였던 디자인적 결정들도, 더 많은 플레이어와 함께할 때는 합리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를테면 ‘허허벌판’ 처럼 보이는 개활지마저도 십수 명, 수십 명의 병력이 그 위를 뒤덮는다면 얼마든지 ‘흥미로운’ 장면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배틀필드> 시리즈는 멀티플레이 FPS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자유도'를 핵심 재미요소로 내세운 IP다. <배틀필드>에 바라는 재미는 유저별로 다르다. 제작진이 이번 게임의 마케팅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샌드박스식 전투'와 '혼란'에 방점을 찍은 유저라면, <배틀필드 2042>에서 부족함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맵의 규모가 비주얼적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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