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인간이 미안해!” 과몰입 유발하는 ‘고블린 게임’ 데모 체험

톤톤 (방승언 기자) | 2022-09-08 11: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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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씬에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타이틀이 많습니다. 익숙한 게임 구조를 뒤집거나, 생각해보지 못한 조합으로 두 장르를 섞거나, 게임계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를 건네는 등의 여러 사례가 독특함을 찾는 유저들을 즐겁게 합니다.

 

2022년 BIC에 출품한 여러 작품 중 오크찹 게임즈의 <고블린 스톤> 또한 역발상의 아이디어와 익숙한 몇 가지 시스템이 만나 만들어진, 눈에 띄는 게임입니다. 시간을 두고 플레이해야 진가를 파악할 수 있는 턴제 전략 RPG 장르인 만큼, 현장에서는 충분히 그 장단점을 파악할 수 없다고 느껴 스팀에서 다운받아 느긋하게 즐겨봤습니다.

 

처음에는 공략하기 어려웠던 최종 전투를 2회차에서야 클리어하고 데모 분량을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짧은 경험을 통해 느낀 좋았던 점과 기대, 그리고 우려되는 점까지 간단히 살펴보려 합니다.

 

 

 

# "인간이 미안해!" 과몰입되는 괴물들의 이야기

 

<고블린 스톤>의 가장 직관적인 차별성은 고블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괴물’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삼는 게 드문 일은 물론 아니지만, 잔학한 인간의 폭압에 맞서서 어렵게 생존하는 귀여운 고블린들의 이야기는 전형적 내러티브를 뒤집는 데서 오는 특유의 풍자적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고블린 스톤>은 인간과 다른 야수형 괴물들의 공격에 터전을 잃고 사라져가는 고블린, 놀 등 휴머노이드 몬스터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현실의 멸종위기종들에 대한 아날로지 같기도 합니다.

 

아트 디렉션을 보면 일단 동화 같지만, 이야기의 수위를 보면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는 그림 형제 스타일의 고전 동화, 혹은 그 원전이 되는 지방 민담 쪽에 가깝습니다. 폭력 연출의 비주얼 역시 귀여운 것과 하드코어한 것의 중간 어디쯤입니다.

 

"갑옷 입은 키 큰 인간은 '너를 처치하고 레벨업을 하겠다'며 작은 놀을 조롱했습니다. 그리고는 잠깐 멈춰 낄낄대더니, '가족도 찾아서 똑같이 해주겠다'고 덧붙였어요."

 

이런 분위기는 튜토리얼의 짧은 스토리에서도 확인됩니다. 주인공 고블린 일행은 사라진 친구 놀을 추적하다가, 어떤 꼬마 놀이 인간 모험가들에 둘러싸인 상황을 마주합니다. 이때 인간들은 “널 잡아서 레벨업을 하고 네 가족한테도 똑같이 해주겠다” 따위의 잔인무도한 대사를 읊습니다.

 

주인공들이 쫓던 친구 놀이 모험가들을 막아서지만 소용없습니다. 그가 무참히 목숨을 잃은 뒤에야 본격적 전투는 시작됩니다. 이쯤 되면 <고블린 스톤>의 나머지 이야기가 대략 어떤 정서일지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다소 잔인하고 전형적이지만, 플레이 동기만큼은 잘 부여해주는 스토리텔링입니다. 특히, 높은 퀄리티의 핸드 드로잉 컷씬과 유려한 내레이션이 몰입을 돕습니다. 인간이라는 위협을 ‘물리쳐야’하는 세계관에도 잘 부합합니다. 제작진은 ‘인터렉티브 그림책’ 같은 게임이라고 설명했는데, 정식 버전이 나온다면 이야기를 전부 보기 위해서라도 플레이할 것 같습니다.

 

"고블린들이 마침내 도착했을 때 목격한 것은 처참한 광경뿐이었습니다. 세 명의 중무장한 괴한에 둘러싸인 채, 고블린들의 친구는 진창에 움직임 없이 누워있었습니다."

 

 

# ‘덜 맞고 더 때리기’ 중심의 전투

 

<고블린 스톤>의 게임 플레이는 전투와 기지 건설의 두 갈래로 나뉘는데, 데모 버전에서는 이중 전투 부분만 플레이해볼 수 있습니다.

 

전투는 ‘행동 속도’ 기반입니다. 상단 타임라인에 적 유닛들과 아군 유닛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양쪽으로 각각 표시되고, 시간 흐름에 따라 이 아이콘들이 가운데로 모여듭니다. 가운데에 도착한 유닛 순서대로 행동을 취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전략성을 심화하는 것은 진형 시스템입니다. 양쪽 유닛들은 마주 본 채 일렬로 섭니다. 각 팀에서 가장 먼저 행동할 유닛은 맨 앞에 위치하고, 행동을 마친 뒤 후열로 빠집니다. 행동 코스트가 클수록 더 뒤로 물러나 나중에 행동하게 됩니다. 또한 스킬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 중 가장 앞에 있는 적만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가장 앞의 상대만 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전투의 승패는 ‘나에게 유리한 순서’대로 상황을 풀어내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대전제에 어울리게 적과 아군의 행동 순서를 그때그때 꼬아버릴 수 있는 상태 이상과 스킬 등 변수가 다양합니다.

 

이를테면 ‘슬로우’로 적의 속도를 늦춰 행동을 미루거나, ‘스턴’으로 오랫동안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하거나, 취약한 아군을 ‘보호’해 순서를 무시한 채 공격을 대신 받아내거나, 원거리 공격으로 후열의 체력이 적은 적을 없애 다음 공격 기회를 빼앗는 식입니다.

 

스턴에 빠진 유닛은 자기 차례가 와도 행동하지 못한다.

 

이외에도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 요소가 빼곡합니다.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면 '피곤함' 상태에 빠져 다음 턴에 더 많은 대미지를 받습니다. 일부 스킬은 적 처치 시 코스트가 덜 소비되는 등의 특수한 기믹을 가집니다. 지속적 대미지를 입히는 상태이상을 주면 물러나 있는 동안에도 계속 체력을 갉아낼 수 있습니다.

 

정확한 수 계산이 용이하도록 적 유닛들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노출해 둔 점도 재미있습니다. 적의 공격력, 아머, 속도, 상태이상 저항력, 그리고 다음 공격 대상까지 모두 알려줌으로써, 전투의 무작위성을 최소화하고 전략적 사고로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게끔 안배했습니다.

 

튜토리얼의 플레이타임은 짧았지만, 그 안에서도 하플링, 인간, 쥐, 지네 등 여러 팩션이 등장하고 팩션별로 일종의 ‘클래스’가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팩션별로 각각 콘셉트에 맞는 스킬을 사용하는 것 또한 몰입감과 전략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플러스 요인입니다.

 

마우스 오버한 적의 스탯, 상태, 다음 타깃을 알려준다.

 

 

# 확인 안 된 ‘기지 운영’ 파트가 관건

 

아직 기지 운영 시스템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전투와의 연계 방식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블린 스톤>의 고블린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부모의 ‘유전자’ 중 일부를 물려받는다는 설정입니다. 기지를 강화하고 부족을 잘 육성해 강력한 고블린을 많이 얻을수록 전투가 유리해지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전투 중에 고블린을 완전히 잃거나, 체력이 영구히 절반으로 깎이는 ‘치명적 부상’(mortal injury)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여정에 나서면 마땅한 체력 회복 수단이 없이 전투를 꽤 많이 치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전투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잘 고민해야 합니다. 동귀어진 식의 전략 구사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결과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는 추측일 뿐, 실제로 기지 건설 파트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두 시스템이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알 수 없어 아직은 게임을 온전히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체험할 수 없는 기지 운영 화면

 

관건은 두 파트의 ‘밸런싱’입니다. <고블린 스톤>에서 효율적 기지 운영을 통해 새 세대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다른 RPG에서의 캐릭터 ‘육성’ 혹은 ‘성장’ 개념을 갈음합니다.

 

대부분의 RPG에서 육성 난이도와 전투 난이도의 ‘속도 맞추기’는 전반적 재미를 좌우하는 게임의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고블린 스톤>의 경우 육성(기지 운영)이 별개의 복잡한 시스템인 만큼 이 과정이 더욱더 중요하고, 또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난이도가 육성에 의해 너무 쉽게 따라잡히면 잘 만들어놓은 전투는 ‘김빠지는 것’이 되고 말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고블린들을 최대한 생존시키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자해 새롭고 강력한 세대를 만들어 나가는 기지 운영 파트 또한 다소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다만 조심스럽게 밝은 전망을 제시해봅니다. 전투 파트의 세심한 UX와 다층적이고도 정교한 시스템은 개발진들의 게임 디자인 역량에 기대를 걸게 했습니다. 의도한 재미를 전달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게임으로 출시하길 기대합니다. 데모 버전은 현재 스팀에서 다운받아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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