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전쟁 속에서 우정은 피어날 수 있을까?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

민초 (이소현) | 2020-06-25 11: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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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제1차 세계대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럽 역사 상 그렇게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온 대륙이 휘말린 전쟁은 1차 세계대전이 처음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전쟁 이후 다시는 전쟁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겨우 21년 후에 더 큰 전쟁이 발발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6년 동안 최소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류는 전쟁을 멈췄을까요? 아닙니다. 2차 대전 종전 5년 후인 1950년 6월 25일에는 한국 전쟁, 1955년부터 1975년까지는 베트남 전쟁, 1990년에는 걸프 전쟁 등 인류는 전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서 전쟁 속 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퍼즐 플랫포머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을 소개합니다. 대체 전쟁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깊은 상흔을 남기는 걸까요?  






# 흑백의 세상 속 '빨개진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책을 좋아하는 한 소녀로부터 시작합니다. 소재에 비하면 상당히 가벼운 출발이죠. 그러나 귀여운 주인공, 그림체와 별개로 게임은 어딘지 답답하고 칙칙한 느낌을 줍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색깔’이 없거든요. 

플레이어는 어느 책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드디어 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빨간 조끼를 입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책방 구석의 빨간 책에서요. ‘빨강’은 이 세계의 유일한 색이자 길잡이입니다. 중요한 물건은 빨강으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소녀는 책방에서 소녀와 소년이 그려진 책 하나를 발견한다

할아버지에게 책을 가져다드리면 동화 같은 옛날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왕자와 공주가 아니라 한 도둑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지만요.

과거 어느 날 한 소년은 경찰에 쫓기다 쓰레기통 위로 떨어졌습니다. 마침 근처에서 공놀이하던 소녀가 손을 내밀었고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손을 맞잡고 있는 동안 두 주인공은 각자의 능력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소년이 앞서면 은신을 하고 소녀가 앞서면 빠르게 달립니다. 그리고 소녀는 새총으로 멀리서 물건을 작동시킬 수 있고 소년은 거울로 NPC의 주의를 돌릴 수 있습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잠시 손을 떼고 각자 움직일 수도 있고요. 

소년과 소녀는 능력을 활용해 사과를 따고 케이크도 훔치면서(?) 즐겁고 평화로운 한때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갑자기 쳐들어온 ‘로봇 왕’에 의해 산산조각이 납니다.

소년은 거울로 빛을 반사해 NPC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다

갑작스레 쳐들어온 로봇 왕과 그의 군대들

전쟁은 갑작스럽고 무자비하게 평범한 삶을 파괴했고 도시는 무너진 잔해와 로봇 군인으로 가득 찼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한 건 로봇 군인들이 소녀를 데려가 멋대로 색을 칠해버린 겁니다. 

소녀가 어디 달라진 것도, 원해서 빨간 옷을 입은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소녀는 ‘빨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소녀를 비웃고 차별하기 시작합니다. 로봇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 조차도요. 이제 소녀는 맘대로 기차를 탈 수도 식당에 들어설 수도 없습니다.

이 게임 속 유일한 색이자 길잡이가 되어주는 강조의 색이던 빨강은 차별과 억압의 색이 되었습니다.

로봇들은 소녀에게 강제로 빨간 색을 덧칠한다

강제로 빨간 칠을 해놓고는 자유를 빼앗았다. 이동부터 무엇 하나 맘대로 하기 어려워졌다

로봇 왕의 침공 이전과 이후로 게임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두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해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물론 전쟁터 한복판에서 아이 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겠죠.

하지만 두 친구에게 언제나 가능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손을 꼭 잡고 함께 극복해나가는 것입니다. 비록 적의 공격이 점점 거세지고, 함께 했던 이들이 한둘 씩 사라져간다 할지라도요. 

과연 이 우정이란 꽃은 전쟁터 속에서 끝까지 피어있을 수 있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에 관심 가져보시길 추천합니다.



# 전쟁, 게임은 그 참혹한 현장을 어떻게 담고 있나?

 

‘전쟁’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는 참 많습니다. 전쟁만큼 잔혹하고 자극적이면서도 온갖 인간 군상이 엮이는 독특한 배경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겠죠.

 

'게임'도 이 소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배경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전쟁'의 형태를 띤 게임이 대다수였지만, 점차 진짜 역사 속 전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게임도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군인이 아니라 단지 봉쇄된 도시 속의 한 민간인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디스 워 오브 마인>, 제1차 세계대전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발리언트 하츠: 더 그레이트 워>가 그렇습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
<발리언트 하츠: 더 그레이트 워>

이렇게 전쟁을 풀어내는 여러 게임 중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조금 색다른 화법을 선택했습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입니다.

'나는 금년 6살 난 처녀애입니다'는 첫 문장이 인상적인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 수용소의 공포를 줄이기 위해 아들에게 거짓말을 했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등 다른 콘텐츠로는 이미 익숙하죠? 하지만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에서는 보기 드문 표현법입니다.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폭력적이고 광기에 차고 잔혹했던 전쟁을 소재로 하면서도 게임의 화자를 어린아이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전쟁을 동화적인 필터가 덮인 은유적인 화면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런 필터는 전쟁의 참혹함을 일정 부분 가리고 숨기지만 한편으론 부각하는 역할을 합니다. 

수용소를 향하는 하늘 열차. 동화적인 표현법이지만 수용소의 실상을 가릴 수는 없다

적으로 등장하는 아귀 잠수함. 주인공들은 날아다니는 욕조를 타고 맞서게 된다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동화적인 표현 속에 상당한 역사적 알레고리가 들어갔습니다. 게임이 은유하는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폴란드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게임 전에 알지 못하더라도 게임 속 묘사에서 미루어 짐작이 가능합니다.

적으로 등장하는 '악의 로봇 군단'은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수용소로 끌고 갑니다. 거기에 독수리 모양의 문장, 군복이 더해지면 이 집단이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라는 것을 알면 공간적 배경도 쉽게 연결되죠. 

게임 속 수집 아이템인 '사진'은 아예 폴란드의 역사적 위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게임으로 보는 폴란드 근대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폴란드

나치에 의해 차별당하고 수용소로 끌려가는 '빨간 사람'은? 유대인을 의미하겠죠. 실제로 차별받던 유대인들이 뭉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바르샤바 봉기', 고아를 돌보다 끝내 죽음을 맞이한 실존 인물 '야누시 코르차크'도 게임 속에 등장합니다.

이 알레고리를 통해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로봇 군인이 소녀를 빨갛게 칠한 이유가 무엇인지, 로켓 기차를 타고 도착한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플레이어는 자신의 역사적 배경 지식과 동화틱하게 순화되거나 '게임'이기 때문에 조금은 쉽게 넘어간 표현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는 거죠. 현실에 일어났던 일이니까요. 그렇게 둘 사이의 괴리가 플레이어에게 더 인상 깊게 다가오게 됩니다.

폴란드 자력 독립을 위해 유대인들이 주도했던 '바르샤바 봉기'


 

게임은 많은 매체 중에서도 높은 전달력과 몰입성을 자랑합니다. 문제를 접하고, 풀고, 피드백을 받는 모든 플레이 과정을 통해 유저가 게임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더 쉽게 공감하니까요. 

 

그래서 직접 겪지도 보지도 못한 제2차 세계대전 속 민간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이 게이머에게 가깝게 다가오게 됩니다.

 

대한민국도 이런 아픈 역사가 많이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부터 6·25와 근현대까지 한국사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부디 우리나라의 이런 아픈 역사와 사건들도 좀 더 다양한 미디어와 화법으로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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