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리뷰] 퍼즐로 마주한 아버지의 기억, '더 웨이크'

마루노래 (이준호) | 2020-07-06 1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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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카>, <리갈 던전>의 소미가 돌아왔다. 죄책감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더 웨이크>는 한 남자의 암호화된 일기장을 읽어나가는 퍼즐 게임이다. 학부 시절 들었던 암호학 교양 수업이 떠올라 긴장했지만, 다행히 수학적 지식이나 계산기는 필요없었다. 필요한 건 오히려, 누군가의(그리고 자신의) 치부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였다.

 


▲ 제목: 더 웨이크 (The Wake: Mourning Father, Mourning Mother)

▲ 개발: Somi
▲ 출시: 2020년 7월 11일 (예정)
▲ 장르: 암호/퍼즐/인터렉티브 노블
▲ 플랫폼: PC(스팀)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그래서 힌트가 뭐라고?

올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말해 유명해진 문구가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한 말이라고 했지만, 실은 스코세이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더랬다. 아마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오랜 구호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게임도 개인적일 수 있을까? 정의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우리가 어떤 게임에서 한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그야말로 어떤 '사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봉 감독 말마따나 '창의적'인 것일 터다.

소미의 <더 웨이크>는 아마도 가장 개인적인 암호 해독 퍼즐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이상한 기계를 통해 암호화되어 있는 한 남자의 일기를 읽게 된다. 일기는 조부의 장례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의 일화,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감정을 다룬다.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본다는 관음적 쾌락에, 암호 해독이라는 지적 만족감 충만한 유희가 깔끔한 플레이 동기를 제공한다.

다음 암호를 해독해보시오: "KU VJKU ICOG?" (-2)

픽셀 그래픽으로 그려진 기계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의 암호 기계인 에니그마를 닮았다. 다만 실제 에니그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회전자는 단순히 장을 넘기는 용도고, 플레이어가 신경써야 하는 것은 두 글자를 서로 바꿔주는 배전반이다. 

조작은 간단하다. 배전반 알파벳 옆의 전선을 다른 알파벳 옆의 소켓에 꽂으면 두 글자가 서로 바뀐다. 이걸 단일 치환 암호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규칙이 '+2'라면, 모든 알파벳을 두 칸 띄워 A는 C로, B는 D로 읽는다. 키워드 방식도 가능하다. 키워드가 GAME이라면, ABCD의 순서를 GAME의 순서로 바꿔읽으면 본문이 해독된다. 글자가 바뀔 때마다 촤르륵 하며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해독 전에는 이렇게 보였던 것이

  

배전반의 전선과 규칙을 활용해 알파벳을 치환하면

 

이렇게 해독되어 읽을 수 있게 된다

물론 2차 대전 시기 영국 블레츨리의 암호해독가들처럼 맨땅에 헤딩을 하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메모를 통해 규칙의 힌트가 주어진다. 맥락을 해석하는 퍼즐에 가까웠던 전작 <리갈 던전>보다 상당히 직관적이고 쉬워졌다.

오히려 한번 패턴에 익숙해지고 나면 약간 '쉽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왼쪽 아래 녹색 등의 점멸로 정답 여부도 알려주기 때문에, 규칙을 잘못 이해했다면 금방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로 설명하면 어려운데, 어쨌든 해보면 쉽다.

친절한 규칙 설명

사실 너무 어려워도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암호화된 일기는, 아마도 많은 일기가 그렇듯, 타인이 읽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읽어줬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 이상 말하지 않겠다. 게임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일까요, 아닐까요?

  

 

# 죄책감 삼부작: 이야기꾼이 게임을 선택했을 때

"게임에서 이야기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즐기는 취향을 가졌다.

소미는 이 게임을 '죄책감 삼부작'의 마지막이라고 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나머지 두 작품은 <레플리카>(2016)와 <리갈 던전>(2019)이다. 전자는 스마트폰이라는 테마로 감시와 권력의 문제를 조명했다. 후자는 경찰의 성과주의를 중심으로 구조와 윤리의 문제를 다룬다.

모두 가볍지 않은 주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미의 게임/이야기는 재미있고, 어렵지 않다.

"이리떼가 오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습니까." - 전작 <리갈 던전>(2019) 중에서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까운 곳에서 예를 취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能近取譬可謂仁之方也已) 개인적인 곳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보편적인 공감을 부르고, 그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란 뜻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혹은, 서로 비슷하다고 착각하기 쉽거나.

어쨌든 죄책감 삼부작은 그 '예'에 해당한다. 세 편의 게임이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공통점이 있다. 여러가지로 자전적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멀지 않고, 그래서 쉽게 이해된다. 

<더 웨이크>를 하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부성의 부재'가 한물 간 소재(요즘 말로 '힙하지 않은') 취급 받긴 하나, 적어도 금융위기를 전후해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1989년 7월 31일"

소미는 이 게임의 제작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젠더에 대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며, 그는 자신이 그들을 대상화하고 있지 않은지, "공감하고 연대하지 않은 내가 만드는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에니그마'라는 소재를 만났고, 거꾸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소수자성을 되돌아봤다.

소수자라고 하면 숫자가 먼저 떠오르지만, 영어로는 minority, 비주류라고도 해석한다. 인종, 성별, 사회적 지위...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권력 관계의 약자, 차별이나 혐오, 편견의 대상이 된다. 그런 자신의 소수자성을 진심으로 돌아볼 수 있을 때, 우리는 혐오를 넘어 연대할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더 웨이크>는 연대를 향한 첫 발걸음이다.


# 결론 혹은 사족: '갓겜'과 '토끼공듀'


<더 웨이크>에서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슬슬 암호에 익숙해지고 자신감에 불타오를 즈음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일종의 '토끼공듀' 모드라 할까.

  

나는 할 수 없다. 능이버섯이다...


사실 웃음거리로 소비되곤 하는 이 '토끼공듀' 담론은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몇 백, 몇 천 시간까지 할 수 있는 게임들, 같은 가격에 플레이타임이 더 긴 게임들을 '갓겜'이라고 한다. 하지만, 게임이 길수록 그걸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적어지고, 만드는 시간과 노력은 커진다는 근본적인 불합리함이 있다. 함부로 가격을 올리자니, 옆동네 다른 '갓겜'들이 신경쓰인다. "O쳐가 6만원인데 이 게임이 7만원인게 말이 되냐ㅋㅋ"는 투의 비웃음들.


한편 어떤 사람들은 게임이 지금보다 더 짧아져야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우리가 단편 소설 하나를 읽고 카페에 앉아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듯, 게임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온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다같이 게임 한 편(판이 아니라) 즐긴 뒤 외식하러 나가는 일상을 꿈꾼다. 플레이타임이라는 것도 장르에 따라 플레이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어쨌든 요지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모든 게임이 더 짧아져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성을 바란다. <더 웨이크> 같은 게임들이, 지금보다는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아주 개인적이고, 짧아서 한편으론 아쉽지만,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고, 마음 편히 추천할 수 있는 다채로운 경험, 그리하여 게임을 통해 우리가 함께 보는 세계가 더 넓어지는, 그런 풍경을 소망한다.

혹시 모른다. 글쓰기도 한때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언젠가는 게임, 혹은 상호작용 가능한 디지털의 무언가가, 우리가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웨이크>가 재밌었다면 <레플리카>(위 사진)와 <리갈 던전>도 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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