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TIG 퍼스트룩] 괴물 추격전, 당할 때는 무서웠는데... 내가 해보니 재미있네!

톤톤 (방승언) | 2021-01-11 09:35:05

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15년 역사의 게임 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어떤 게임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대신 찍어먹어드립니다.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 짧고 굵고 쉽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TIG 퍼스트룩! 


오늘 소개해 드릴 게임은 2D 메트로배니아 ‘역호러’ 게임 <캐리온>입니다.

개발사 ‘디볼버 디지털’이 말하는 ‘역호러’(reverse horror)는 말 그대로 호러 장르를 ‘역(逆·reverse)’으로 즐긴다는 콘셉트를 뜻합니다. 호러 게임은 괴물에 쫓기는 내용이 많은데, 거꾸로 괴물이 되어 사람을 사냥하는 작품인 거죠. 얼핏 낯설어 보이는 개념이지만 사실 유사한 게임은 꽤 많습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가깝게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가 있습니다.

 

 

​<캐리온>에서 플레이어는 괴생명체가 되어 인간들을 ‘해치우며’ 지하 연구소를 탈출해야 합니다. 주인공은 거대한 근육 뭉치 입니다. 스파게티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괴물은 빠르게 움직이며 촉수를 뻗어 사람을 공격합니다. 형태를 바꿔 비좁은 공간을 통과하거나 천장에 달라붙어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어딘지 익숙한 모습입니다. 영화 <더 씽>, <라이프>, 만화 <기생수> 같은 작품에 이렇게 흐물거리고 무서운 친구들이 나오죠.

 


 

역호러의 매력은 호러물의 ‘클리셰’를 거꾸로 즐기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공포물에도 클리셰가 많습니다. 살인마에게서 도망치던 주인공이 모퉁이를 돌았더니 갑자기 놈이 앞에서 나타나는 장면, 많이 보셨죠? 역호러는 이 장면에서 살인마 입장이 되어 본다는 발상 전환에서 출발합니다.

<캐리온>도 클리셰 역전의 재미를 잘 구현했습니다. 문을 ‘쾅‘ 두드리면 건너편의 불쌍한 인간은 두려움에 떨면서 문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이때 천장 환기구를 통해 뒤로 돌아가 공격하면 인간은 영문도 모른 채 당하게 됩니다. 많이 본 장면이죠? 인간을 물속에서 튀어나와 끌고 들어가거나, 거미줄을 발사해 벽에 매달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당하는 입장에서 봤을 땐 끔찍했는데, 입장을 바꿔 괴물이 돼보니 재미있네요.

 

무장한 적은 해치울 수 있지만 '섭취'할 수 없다

2D 픽셀 그래픽이라는 이유로 게임의 ‘수위’를 얕보면 안 됩니다. 꽤 적나라하고, 잔인합니다. 전투능력이 없는 민간인 NPC들은 한 번만 공격해도 상·하체가 분리됩니다. 숨겨진 이빨로 인간을 ‘섭취’해 체력을 채울 때면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실감 납니다.

호러물에서 비명은 잔혹함을 배가시키는 포인트입니다. NPC들이 괴물에 놀라 도망갈 때나 공격당할 때 내는 다양하고 끔찍한 소리는 호러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합니다.

문제는 이런 요소들이 초반에만 생생하게 다가올 뿐, 금세 감흥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AI의 행동이 너무 단순한 데다 반복이 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첫 30분 정도가 지나면 민간인 NPC들은 ‘공포에 질린 인간’이 아니라 ‘비명 지르는 헬스팩’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특색 없는 맵디자인도 ‘흥이 식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각 스테이지는 ‘우라늄 광산’, ‘연구소’ 등 특색있는 공간으로 설정돼있지만, 시각적으로 서로 다 비슷해 보이는 점이 아쉽습니다. 다양한 공간 속에 펼쳐지는 호러 상황 연출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겁에 질린 민간인 NPC가 공포 분위기를 담당

시간이 갈수록 ‘역호러물’이라는 콘셉트보다는 메트로배니아의 정체성이 점점 강해집니다. 게임 플레이 핵심은 크게 길 찾기·퍼즐·전투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모두 공포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혼비백산하는 민간인 NPC들만이 호러의 구색을 맞춰줍니다.

다만 장르적 재미는 충실한 편입니다. 적과 퍼즐의 유형이 점점 다양해지며 즐길 콘텐츠가 계속 추가됩니다. 스테이지를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특수능력은 전투와 퍼즐 양쪽에 적절히 활용됩니다. 그래서 능력을 얻을 때마다 플레이 양상이 유의미하게 변하고, 그 획득 간격이 적당히 벌어져 있어서 선형구조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어줍니다.

괴물은 좌클릭 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우클릭 된 곳을 공격합니다. 이동속도는 매우 빠른 편인데, 대신 관성이 강해 ‘마이크로 컨트롤’하기는 어려운 편입니다. 적들보다 주인공 속도가 훨씬 빠를 때 발생하는 난도 하락 문제를 막는 장치로 여겨지지만, 종종 움직임이 직관에 어긋나는 경우가 있어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드론 같은 비인간형 적도 등장

전투는 기본적으로 은신-습격의 반복입니다. 적들은 다양하게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면 대결은 어렵습니다. 그 대신 환기구, 하수도, 출입문 등 다양한 지형지물을 활용해 전투할 수 있도록 스테이지가 적절히 설계되었습니다. 적은 반응속도가 빠르며, 다양한 스킬을 잘 활용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꽤 ‘피지컬’이 요구되지만 그만큼 ‘손맛’이 있습니다.

퍼즐의 등장 주기는 잘 안배된 편입니다. 전투와 전투 사이의 공백을 적절히 메워줍니다. 게임 흐름을 끊을 정도로 어렵거나,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 느껴질 만큼 지나치게 쉽지 않습니다.

간혹 등장하는 ‘회상’ 장면은 의외로 이 게임의 백미입니다. 스테이지에 가끔 나타나는 특정 기계장치와 상호작용하면, 인간이 되어 플레이하는 짧은 회상씬이 전개됩니다. 편의상 ‘회상씬’이라고 말했지만, 누구의 언제 기억인지는 초반에는 알 수 없습니다. 괴물의 정체와 세계관을 추리할 힌트를 조금씩 제공하기 때문에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지고, 게임을 계속 플레이할 동기도 생깁니다.

 

곳곳에 놓인 전광판이 시설의 전반적 상황을 알려준다

‘역호러’를 마케팅 키워드로 내세웠지만, ‘SF 괴수물’로 바라봤을 때 더 이해하기 쉬운 게임입니다. 물론 괴수물도 호러의 하위장르지만 액션 등 기타 장르에 중심을 내준 ‘하이브리드’일 때가 더 많은데, 이는 <캐리온>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러’는 분위기 연출의 역할을 맡았고, 핵심 게임 플레이는 메트로배니아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장르 클리셰를 여러 곳에서 차용했기 때문에 괴수물을 평소 즐겨왔다면 재미가 배가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평범하게 액션 어드벤처로 즐길 만 합니다. 연약한 인간을 괴롭히며 웃는 모습을 주변 분들에게 들키지만 않게 조심하세요.

 



▶ 추천 포인트
1. ‘손맛’ 있는 전투
2. 다양한 적과 퍼즐
3. 다음이 궁금해지는 스토리

▶ 비추 포인트
1. 여러 맵이 시각적으로 비슷해 보임
2. 종종 직관적이지 못한 판정
3. 조금 부족한 AI

▶ 정보
장르: 역(逆)호러, 메트로배니아, 퍼즐
개발: 디볼버 디지털
가격: 20,500원
한국어 지원: O 
플랫폼: 스팀, Xbox One, Xbox One X, 닌텐도 스위치

▶ 한 줄 평

즐길 거리 풍부한 호러 메트로배니아,
괴수물 마니아라면 재미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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