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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답답해서 팬이 만든 '포탈 3'?…'포탈 리로디드' 핸즈온

톤톤 (방승언 기자) | 2021-05-05 12: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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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고전 게임의 리메이크나 후속작을 직접 만드는 사례는 생각보다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하프라이프>를 리메이크한 <블랙 메사>가 대표적이고, <엘더스크롤: 오블리비언>을 <스카이림> 엔진으로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죠.

2021년 4월 <포탈2> 출시 10주년을 맞아 발표된 <포탈 리로디드> 역시 ‘팬이 만든 <포탈 3>’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원작의 게임성을 최대한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 포탈’이라는 제3의 시스템으로 새로운 재미를 더해 호평받는 커뮤니티 모드입니다.

팬들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뜨겁습니다. 5월 4일 기준 스팀에 6,700여 개의 리뷰가 달렸고, 그중 무려 97%가 긍정적입니다. 무료이기 때문에 평가가 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대단한 성과입니다. 과연 어떤 매력을 지닌 게임일까요? 간단히 플레이해봤습니다.



# 힘을 뺀 주변부 연출

정직하게 말해서 <포탈 리로디드>는 퍼즐 이외 구간에 아주 많은 공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원작의 그래픽 에셋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했기 때문에 비주얼과 분위기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반면 퍼즐 사이사이 스토리텔링 구간의 연출·디자인적 디테일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매력적 악역이자 사실상의 주인공 ‘글라도스’가 등장하지 않는 점도 괜히 아쉽습니다. 글라도스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남성형 AI의 목소리입니다.

그렇다고 내러티브 연출이 아주 어설프지는 않습니다. 특히, 게임을 관통하는 유머감각 만큼은 원작을 빼닮아 <포탈>을 향한 제작자의 애정과 ‘덕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명을 가소로운 것으로 여기는 애퍼처 사이언스 특유의 막 나가는 기업철학(?)과 AI의 가증스러운 친절함이 본편처럼 위트있게 어우러져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첫 챕터부터 게임은 무수한 사람을 가둔 '인간 저장소'를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이내 AI는 "죽음 등의 부작용을 겪는다면 실험 보고서에 꼭 적어 넣으세요" 따위의 아이러니한 안내방송을 내보냅니다. 원작의 뒤틀린 유쾌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원작처럼 AI의 대사가 길게 이어질 만한 본격적인 스토리 연출 구간이 거의 없어 대사의 양이 적은 것은 아쉽습니다.

게임 도입부 '인간 저장소'의 모습.


# 시스템과 내러티브의 조화

퍼즐 게임에서 스토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은근히 많습니다. 장르 특성상 주인공이 제한된 능력(혹은 도구)으로 반복적인 장애물들을 돌파하는 게임플레이가 이어지는데, 이런 특수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경과를 내러티브 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쉽지 않아서입니다.

<포탈>시리즈는 퍼즐 장르의 이런 고질적 고민을 현명하게 해결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일종의 ‘실험체’여서 그 어떤 작위적이고 가혹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상황적 설득력이 충분합니다. 실험 진행자인 AI 글라도스가 퍼즐의 난도를 점점 높여가며 주인공을 괴롭히는 전개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모범답안’에 가까운 <포탈>의 설정을 <포탈 리로디드>는 가감 없이 잘 활용합니다. 꼭 필요한 ‘기본개념’을 먼저 주인공에게 익히게 한 뒤, 어려운 응용문제를 뒤이어 내놓는 정석적인 게임 설계가 내러티브와 보조를 맞춰 무난하게 전개됩니다. 



# 퍼즐의 성격

‘시간 포탈’은 연두색 테두리의 정사각형 포탈이며, 미래와 현재를 이어 줍니다. 미래의 애퍼처 사이언스 실험실은 군데군데 부서져 있어 ‘현재’에서는 갈 수 없는 공간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용, 두 가지 시간대를 넘나들며 스테이지를 돌파해나가면 됩니다.

‘시간 포탈’ 시스템은 원작의 핵심 게임플레이를 적잖이 바꿔 놓습니다. 본편의 경우 물리법칙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퍼즐을 푸는 핵심적 능력입니다. <포탈 리로리드>에서는 사건들의 발생순서를 올바른 서순으로 머릿속에 정렬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많이 요구됩니다.

이는 <포탈 리로디드>의 메카닉들이 복잡한 전후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시점에 설치한 포탈 및 큐브의 위치는 미래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미래의 '큐브'를 시간포탈을 통해 현재 시점으로 가져온 뒤, 현재 시점의 큐브를 움직이면 가져온 '미래 큐브'가 증발하게 됩니다. 이런 기본 법칙들을 모두 염두에 둔 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두 시간대를 오가며 취해야 하는 작업들의 순서를 틀림없이 계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풀이가 중간에 막히게 됩니다.


시간포탈의 이러한 시스템적 성격은 <포탈 2> 후반부에 추가됐던 ‘젤’ 시스템과 대비됩니다. 젤 시스템은 가속, 반발 등의 기믹을 더해 ‘물리 퍼즐’이라는 <포탈>의 기본 정체성을 확장·강화하는 보조적 역할이었습니다. 반면 ‘시간 포탈’은 전체 퍼즐의 무게중심을 가져갑니다.

본편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합니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억지스럽게 난도를 높여 놓은 구간 없이 몰입할 수 있어, 게임에 대한 열광적 평가를 납득하게 됩니다. 다만, <포탈>의 코어적 재미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유저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서 원작에 나왔던 추억의 장치들을 다시 만나는 부가적 재미도 있습니다. '하드라이트 다리'나 '신뢰 도약 발판', 심지어 악명 높았던 '터렛'마저 모두 반갑게 느껴집니다.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터렛


# 아쉬운 점, 혹은 어쩔 수 없는 한계

<포탈 2>는 애퍼처 사이언스의 목적, 글라도스의 정체 등 여러 미스터리로 서스펜스를 더하다가 막바지에 그간 쌓아 온 긴장을 한 번에 해소하는 스릴러적 이야기 구조를 가집니다. 게임 내내 습득한 ‘지식’을 모두 쏟아부어 싸워야 하는 보스전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임팩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종종 언급됩니다.

플레이타임이 짧은 <포탈 리로디드>에서 이런 스펙터클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팬이 만든 무료 모드에 바라기에는 미안할 정도의 기대입니다. 오히려 게임의 ‘사이즈’에 맞게 1편의 ‘덜 강렬한’ 엔딩을 벤치마킹했다는 사실에서 제작진의 명석함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포탈 리로디드>는 원작을 향한 팬레터같은 작품입니다. <포탈>의 팬들이 사랑했던 여러 요소를 최대한 게임 속에 녹여내려 한 여러가지 노력이 눈에 선명히 들어옵니다. ‘<포탈>만큼 재미있다’는 평가는 과장이겠지만, 시리즈 팬이라면 한 번쯤 시간을 투자해볼 가치는 충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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