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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내가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인디 어드벤처 '30일'

톤톤 (방승언 기자) | 2021-09-13 15: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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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알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까?’ 2021년 부산인디커넥트(BIC) 선정작으로 꼽힌 <30일>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는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고시원 총무로 일하게 된 주인공 ‘박유나’가, 30일간 고시원 입주자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하면서 그들 중 누군가의 죽음을 막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타인의 자살 전 징후를 발견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습득할 기회가 많지 않은 지식입니다. 약 2년간의 인터뷰와 강의 수강, 정신건강의학 자문을 통해 청년들의 삶에 닥칠 수 있는 문제를 다뤘다는 <30일>은, 그래서 관심이 가는 타이틀입니다. BIC에 제출된 데모 버전을 통해 어떤 게임인지 살펴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 ‘주변 누군가’의 얘기

 

<30일>의 주인공 박유나는, 언론인을 꿈꾸는 취업준비생입니다. 고모가 운영하는 고시원에 총무 일자리를 얻으면서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이 '고시원'을 배경 삼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취업준비생은 역대 최다인 86만 명을 기록했고, 30%가 공시생입니다. 그 외에 각종 ‘시험’과 ‘고시’를 준비하는 비율도 상당하고, 그중 많은 수가 고시원 등 최소한의 주거 환경만을 갖춘 채 살아갑니다. 평범하지만 고단한, '우리 주변 누군가', 혹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런데 막상 총무가 된 박유나가 만난 입주민들은 20~30대 고시생들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정으로 인해 고시원에 몸을 의지하게 되는 경우도 현실엔 많죠. 주인공 역시 ‘생각보다 연령층이 다양해 놀랐다’는 독백을 하며 이런 사실을 환기합니다.

 

이렇듯 고시원이라는 무대의 선정뿐만 아니라, 그 내부의 구조와 사건에 대한 구체적 묘사에서도 <30일>의 요소요소는 현실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 근거하고 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고시원의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입주자의 구성, 주인공의 업무 루틴까지 사실성 높은 묘사로 이야기의 현장감을 배가시킵니다.

 

'현장감'을 주는 내부 묘사

 

 

# 게임플레이

 

게임플레이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식의 조작법을 따릅니다. 옥상을 포함해 총 4층으로 이뤄진 고시원 건물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소화하면서 입주자들과 교류해나가면 됩니다.

 

‘고모’와 입주자들이 퀘스트 NPC 역할을, 인게임 스마트폰의 ‘투두리스트’(to-do list)와 ‘메모장’ 앱이 퀘스트 UI 역할을 합니다. 투두리스트의 모든 할 일을 완수해야만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데모 버전에서는 총 30일 중 첫 한 주일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영 시뮬레이션과 같은 게임플레이는 아닙니다. 총무로서의 업무는 매우 단순해서 그 자체로서는 콘텐츠가 되질 못 합니다. 그보다는 잡무를 하며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와 상호작용이 핵심입니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각자의 성격과 상황, 입주자들끼리의 관계 등을 조금씩 파악하게 됩니다.

 


 

# 분명하지만 어려운 게임의 목표

 

게임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최설아’라는 인물의 이름이 적힌 ‘사망진단서’를 인트로에서 보여주며 게임은 시작됩니다. 입주민 ‘최설아’의 죽음을 막는 것이 플레이어가 할 일입니다.

 

대상 인물이 누구인지 미리 알려주는 이런 ‘두괄식 구조’는 어떻게 보면 조금 아쉽게 느껴집니다. 자살 위험자를 올바로 대하는 방법 못지않게, 그런 이를 ‘알아차리는’ 방법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중 하나니까요. 게임플레이적 측면에서도, 위험에 처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는 상태로 플레이해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목표를 분명히 제시했다고 해서 게임이 마냥 쉬워지는 것은 아니고, 그 의의가 그다지 퇴색하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까다롭고 중요한 질문은 남아 있으니까요. 힘든 상황에 직면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그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요?

 

뜬금없이 “옥상에 올라가고 싶다”는 최설아에게 주인공은 ‘흡연자셨냐’고 물을 수도 있고, ‘옥상에 올라가고 싶은 이유’를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사소해 보이는 차이지만, 제작진에 따르면 ‘모든 선택이 중요’하고,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두 대사에 최설아는 각각 다르게 반응합니다.

 

 

 

시험을 오래 준비하는 자신이 한심해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왜 나에게 묻느냐”고 반문하면 물론 안 될 겁니다. 그런데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 있을 거다”와 “오래 붙잡는다고 능사는 아니다” 중에서는 과연 무엇으로 답해야 할까요?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대화뿐만이 아닙니다. 최설아의 행동과 상태를 유심히 살피고 추적하면 발견할 수 있는 추가적인 상호작용, 퀘스트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스마트폰 메모장 앱의 ‘히든’ 항목에 따로 기록됩니다.

 


 

# '진정성' 느껴지는 게임

 

일부만 체험해봤지만, <30일>은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게임플레이를 이미 보여줬다고 느껴집니다. 일반적 게임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그리고 일상에서도 무시하기 쉬운 작은 행동과 관찰, 교류가 어떤 이에겐 큰 울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고민하게 만듭니다.

 

편안한 게임 아트와 막힘 없는 플레이, 유저 편의를 적절히 고려한 UI 등 시스템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이후 플레이 분량에 대한 신뢰를 줍니다.

 

그러나 더욱더 전체 게임에 기대를 걸어 보게 만드는 부분은 현실세계를 향한 제작진의 관찰력입니다. 게임 속 사건을 통해 현실 속 플레이어의 생각과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런 게임에서 리얼리티 추구는 꽤 중요한 지점입니다. 플레이어가 현실과 게임 사이의 괴리감을 크게 느낄수록 그 효과가 반감될 테니까요.

 

 

 

제작진은 여기에서 '인물'과 '대사'로 승부를 건 듯합니다. 부분적인 어색함이 없지 않지만, <30일> 속 인물들의 행동거지와 말은 꽤 사실적입니다. 특히 각자의 부족함을 안고 있는 ‘평범한 인간성’에 대한 묘사, 연령, 성격, 상황에 맞는 언어사용 묘사가 탁월합니다.

 

다만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이동속도가 지나치게 느리고 한 가지 배경음악이 반복돼 좁은 게임월드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과하게 줍니다. 간혹 인물별 대사의 퀄리티 차이가 느껴지는 점도 이질적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제일 먼저 확인하게 되는 ‘뉴스’는 게임 플레이에 힌트가 되어주긴 하지만, 그날의 주요 이벤트와 지나치게 연관성이 깊어 작위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사실 자체에 안주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최대한 게임을 경험하고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설계했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다양한 엔딩과 숨겨진 요소들은 플레이 가치를 더욱 높여 주는 또 다른 긍정적 요소입니다. 현재 <30일>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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