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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리뷰] "이 게임, 분명히 뜹니다" 비버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팀버본'

우티 (김재석 기자) | 2021-09-30 21: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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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 분명히 뜹니다"

게이머로서 스팀에서 될 만한 게임을 찾아 나서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스팀의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는 '먼저 맛보는 재미'와 '하염없는 기다림'이라는 평가가 함께 나옵니다만, 개발자와 게이머를 더 밀접하게 연결해준다는 점은 확실한 듯합니다.

 

기자는 최근 스팀에서 흥미로운 얼리 액세스 게임을 발견했습니다. 이름하여 <팀버본>. 인류가 절멸한 지구에 비버들이 새로운 문명을 구축한다는 콘셉트의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시티 빌더)입니다. 지난 16일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따끈한 신작인데 반응은 그 이상으로 뜨겁습니다

 

게임은 출시 2주 내내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주에는 아마존의 MMORPG <뉴월드>와 <피파 22>의 뒤를 잇는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기대를 품고 결제한 뒤 플레이한 소감을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팀버본>은 한국어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데, 귀엽습니다. 게임의 정가는 26,000원인데, 모르는 회사의 게임을 '얼액' 단계에 이렇게 투자하는 게 맞을까 싶었지만, 하나도 후회되지 않습니다. 유명 시뮬레이션의 요소들을 훌륭하게 차용했을 뿐 아니라 독창적인 재미까지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 분명히 뜹니다.

 


 

# 인간이 미안해

본격적인 소감에 앞서 <팀버본>의 콘셉트를 살짝 살펴봅시다.

 

무책임한 우리 인간들은 지구를 황무지로 만든 뒤 멸종해버렸습니다. 우리의 영리한 비버 친구들은 지구에서 살아남습니다. 어떤 각성이 일어났는지, 비버들은 지구에서 새로운 문명을 키우겠다고 결심합니다. 앞니로 나무를 캐서 댐과 집을 짓던 비버들은 오두막을 짓고 나무를 심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런가 하면 '철의 이빨'이라는 비버들은 스팀펑크 풍의 문명을 새로 구축하려 합니다. <팀버본>에는 자연 친화적인 '시골 꼬리'와 '철의 이빨' 두 세력이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발전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목재펑크'(Lumberpunk)를 구현할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인간이 남기고 간 지구의 날씨는 며칠 간격으로 끝없이 우기와 건기가 반복됩니다. 비버들의  '귀염뽀짝' 자연 힐링 게임을 바라셨다면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생존과 번영의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거든요. 물론 비버는 여전히 귀엽습니다.

 

두 세력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작 전 난이도와 맵 구성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바싹 마르는 건기

비버들의 경외심 그래프.

 

  

# 치수(治水)의 게임 <팀버본>

벼농사의 DNA를 분석하면서 재난에는 능숙하게 대처하지만, 언제나 불평등의 씨앗을 품고 있는 한국 사회를 분석한 저작 <쌀 재난 국가>에서는 물의 중요성을 자세하게 서술합니다. 지배자의 최우선 관심 사항은 언제나 전쟁과 먹거리 생산이었는데, 전쟁은 간헐적이라면 후자는 일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치수와 수리(水利)에 사활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당대의 핵심 시스템은 강의 범람과 가뭄에 대비해 관개시설을 축조하고 물길을 관리해 비옥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책의 저자 이철승 교수는 "가뭄은 전근대 농업사회가 겪을 수 있는 최대의 위기였으며, 국가와 정권의 존망을 뒤흔드는 대형 재난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선의 왕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고, 기우제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면 신하들 듣는 자리에서 자신의 부덕을 한탄했습니다.

 

지금까지 체험한 <팀버본>은 치수에 관한 게임이었습니다. 극단적인 건기와 우기의 반복 속에서 물이 마르지 않게 잘 끌어오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 퀘스트입니다. 실제와 마찬가지로 거주지에 물이 있어야 열매와 나무가 자라고, 구성원들이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팀버본>에는 물 펌프와 저장시설을 시작으로 댐이나 제방을 지어 물을 가두게 할 수 있고, 다이너마이트로 지형을 바꿔 저수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 물가에서 방아를 돌려 에너지를 생산해 밀가루를 제분할 방아를 돌립니다. 

 

가뭄에 대비하지 않으면 비버들은 집단 폐사합니다. 플레이 타임이 길어질수록 한 달 가까이 건기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플레이어들도 옛 군주처럼 치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가뭄은 치명적이다.

 

물길을 틀어주는 중

 

# 이것도 다 '비버'가 하는 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팀버본>은 물만 잘 관리하면 굴러는 갑니다. (물을 잘 관리한다는 것이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문제죠.) 물만 잘 주면 초창기 20마리 단위의 부족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뮬레이션 게임이 그렇듯, 현상 유지보다는 다음 단계를 위한 발전에 나서는 것이 권장됩니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과학' 포인트를 쌓아서 회전목마 같은 여가 시설이나 조각상 같은 장식물, 그리고 물류를 관리하는 배급소와 하차장을 해금하는 데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구역이 발전하면 다른 구역을 설정해서 세력권을 넓혀 더 큰 게임을 즐기게 됩니다. 이같은 모든 행동을 위해서는 비버들이 알맞게 잘 살아있어야 합니다.

 

과학 포인트를 사용해야 해금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적당한 오두막을 지어주고 비버들을 집어넣어 비버의 후손을 '생산'해야 적재적소에 '유닛'으로 부릴 수 있습니다. 게임은 흥미롭게도 비버들의 노동 시간을 설정시킬 수 있는데 너무 오래 일을 시키면 비버들은 2세를 낳지 않습니다.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현재 세대의 비버들을 마구 몰아붙이면 더는 게임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이런 모습은 '인구 절벽'을 현실로 맞닥뜨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굉장히 씁쓸하고도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비버들에게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면서 '사원'을 만들어 경외심을 높이면 이들의 수명도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플레이어는 그렇게 40세, 50세면 죽어 나가던 비버들을 80세까지 부릴 수 있습니다. (게임이 그렇다고요, 게임이)

 

비버들에겐 수명이 있습니다.

 

# YOU JUST ACTIVATED MALTHUSIAN TRAP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생활 수단(Subsistence)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게임에서도 비버들이 먹고살 만해지면 아이를 많이 낳습니다. 그렇지만 토지를 개간해 얻을 수 있는 식량은 한정되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이는 비버가 발생합니다. 게임에서 농경지에 '벌집'을 놔서 얻을 수 있는 추가 수확량을 15~20%로 정해졌습니다. 플레이타임이 누적될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물도 있고 빵도 있는) 행복한 비버들은 자고 일어나면 2세를 낳습니다. 종족 번식은 아주 강력한 본능이죠.

 

곳간이 차오르면 배가 부른 비버들은...

 

개체 수가 많아지면 그에 따른 보급이 이루어져야 하는 게 정상적인 모델입니다만, 자원은 한정됐습니다. 앞서 <팀버본>에 가뭄은 상수로 존재하고,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고 말씀드렸지요? 공간의 한정되고 생산 단절(가뭄)은 더 오래된다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수는 무엇일까요?

 

바로 적절한 방치나 전쟁을 통해 인구수를 조절하면서 맬서스 트랩의 스트레스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팀버본>에 전쟁까지는 구현되지 않았지만, 적절한 방치는 때에 따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개체가 많을 때 비버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적을 때에는 낮일을 덜 시키고 밤일을 유도하는 '비버 보완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정 감당이 안 되는 상황까지 플레이했다면 죽어도 되는 비버들을 다른 구역으로 배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실제로 맬서스는 국가가 강력한 인구 통제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대적 맥락이 있습니다만) 노골적으로 저소득층을 죽게 내버려둬도 좋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죠.

 

개체수 통제를 위해서 온종일 일만 시킬 수도 있습니다.

 

비버 문명은 그렇게 발전합니다.


# 효율적인 x축 - y축 관리를 찾아서

그러한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버를 최대한 살리면서 문명을 발전시켜야겠죠? 게임에서 답은 주어진 땅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팀버본>은 수직 건축을 지원합니다. 플레이어는 오두막 위에 오두막을 짓고 창고 위에 창고를 쌓을 수 있습니다. 즉,  y축을 발전시키면서 x축을 아낄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많은 인구를 필요로 하는 대도시가 고층 빌딩 마천루를 빽빽하게 세우면서, 비싼 땅을 최대한 잘 활용케 하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시티 빌더 명작 <시티즈>의 부제 '스카이라인'은 메트로폴리스의 고층 빌딩이 연출하는 선을 뜻합니다.

 

더불어 다이너마이트를 통해 맵에서 물이 닿는 공간을 넓혀서 못 쓰던 건조한 땅을 촉촉하게 만들면 x의 발전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쌓을 수 있는 건물은 세로로 올리고, 가로로 이용할 수 있는 땅을 최대한 넓히면서 비버들에게 적당한 생산 활동을 지시한다면 얼리 억세스 단계의 <팀버본>은 클리어라고 불러도 지장이 없습니다.

 

위로 잘 올려야 옆으로 잘 쓸 수 있다

 

 



# 클리어는 무슨!

클리어라고 불렀지만 거짓말입니다. 단지 기자의 기준에서 '무슨 게임인지 알겠으니까 클리어했다'는 것입니다. 

 

벌써 커뮤니티에는 <팀버본>을 통한 맵 에디팅이나 독창적인 실험을 하는 유저들이 모여있습니다. 기자의 지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러한 코어 유저분들에게는 기자가 설명한 단계야말로 튜토리얼에 불과합니다.

 

기꺼이 잉여 자원을 투여할 유저들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이 게임은 성공의 기미가 감지됩니다. 게임에서 주어지는 튜토리얼이 굉장히 빈약하며, 이후의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아직 얼리 액세스 단계입니다.

 

<팀버본>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동시에, 게임적으로도 머리를 쓰게 만들었는데, 그 대상이 귀엽다는 점에서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이 게임의 진로를 제안할 재주가 없어서 안타까운데요. 여기까지 스크롤을 내린 독자 여러분께 이 게임을 하면서 다른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오마주를 찾아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는 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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