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느린 템포에서 찾는 고민의 즐거움, 국산 SRPG '트러블슈터'

텐더 (이형철) | 2020-12-18 14: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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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주어진 타일 위에서 캐릭터를 움직이며 전투를 펼치는 SRPG를 좋아했습니다. <창세기전> 시리즈나 <삼국지 조조전> 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명작들인데요. 상대와 턴을 주고받으며 펼치는 두뇌 싸움은 많은 이를 SRPG에 빠져들게 했었죠.

 

오늘 소개할 <트러블슈터>는 이러한 SRPG의 기본을 잘 따라간 게임인데요. 개발사 댄디라이언은 SRPG의 기본 요소에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일러스트까지 더해 게임의 풍미를 살렸습니다. 오랜만에 국내 개발사의 SRPG를 만난 기자 역시 정신없이 게임을 플레이했습니다. 과연 <트러블슈터>는 과거 명작 SRPG처럼 또 한 번 게임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수 있을까요?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 문제를 해결하는 '트러블슈터'가 되자

 

트러블슈터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직업의 이름으로, 말 그대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유저들은 주인공 알버스가 되어 경찰을 대신해 범죄자와 싸우고 다양한 인물을 만나 그 속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풀어가게 됩니다.

 

보통 RPG는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동료가 합류하곤 하죠. <트러블슈터> 역시 이러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형태는 조금 다른데요. 다른 RPG와 달리 <트러블슈터>의 동료들은 주인공이 차린 '스타트업' 트러블슈터 회사에 인턴사원 신분으로 합류합니다. 조금 색다른 구조입니다.

 

따라서 게임의 중심이 되는 사무실 풍경이나, 인재 영입 시 등장하는 '임금 결정' 등은 하나같이 동료를 영입한다기보다 신입사원을 스카우트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일정 미션을 달성하면 월급을 지급해야 하며, 해당 동료와의 관계를 위해 움직일 때도 많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동료 시스템'과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다른 껍데기를 통해 신선함을 불어넣은 셈입니다.

 

임무 성공 여부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항목도 있다

 

여기에 <트러블슈터>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을 스토리에 대거 배치해, 유저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유도합니다. 특히 주인공 알버스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조연급 인물들 또한 지속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맴돌며 자신의 사연을 흘리고 유저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죠.

 

이러한 특징은 <트러블슈터>의 일러스트와도 강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트러블슈터>는 기본적으로 3D 그래픽을 통해 캐릭터를 표현하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공들인 일러스틀 통해 분위기를 만들어갑니다. 3D 캐릭터나 표정만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죠. 게다가 <트러블슈터>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일러스트를 제시함으로써 최대한 다양한 느낌으로 게임을 바라보게 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들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살린다. 떠나는 날에 걸맞은 어두운 일러스트가 나오는가 하면

 

새로운 시작에 맞는 밝은 일러스트가 등장할 때도 있다

 

# 전투 외 상황에서도 고민은 계속된다

 

<트러블슈터>의 전투는 기력을 기반으로 턴을 주고받으며 이동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공격, 아이템 활용 등 다양한 선택지 중 가장 올바른 것을 골라야 하는​ SRPG의 기본 구조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트러블슈터>는 이러한 요소에 더해,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그만큼, 서로 간 얽혀있는 스토리도 풍부하게 풀어내고 있죠. 사명감으로 무장한 전형적인 주인공 알버스부터 스스로를 히어로라 칭하는 아이린, 먹는 걸 좋아하지만 어딘가 어두운 시온 등 <트러블슈터>는 퀘스트와 스토리를 통해 캐릭터들이 가진 개성을 지속적으로 노출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지난 11월 출시된 무료 DLC 백사자와 검은 마녀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트러블슈터>에 등장하는 귀족 비앙카와 트러블슈터 알리사의 배경을 다룬 백사자와 검은 마녀는 본편 이후 스토리를 배경으로 높은 완성도를 뽐내며 많은 유저의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발사가 <트러블슈터>의 캐릭터 구축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비앙카와 알리사의 이야기를 다룬 DLC는 큰 호평을 받았다 (출처: 댄디라이언)

 

 

<트러블슈터>의 또 다른 특징은 '선택지'인데요. 

 

전투 중 등장하는 선택지들은 전투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테면 작전을 펼칠 때 몇 명을 후방으로 보낼 건지, 별동대 임무에는 어떤 캐릭터를 합류시킬지 등 다양한 옵션이 존재하며, 유저가 어떤 걸 고르느냐에 따라 전투의 흐름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명중률'만' 보면 엑스컴과 비슷해 보이지만, 선택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전투에 들어가면 <트러블슈터>가 가진 매력을 조금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요. <트러블슈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평타'없이 기력을 소모하는 스킬로만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유저들의 플레이에도 고민과 제약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셈이죠.

 

유저가 직접 전장에 숨어있는 적을 찾아야 한다는 점 역시 다양한 변수를 만듭니다. 무계획적으로 맵을 탐색하다 보면 적에게 둘러싸여 순식간에 게임이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유저들은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맵을 전진해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사각지대를 활용하며 조심스럽게 플레이를 전개해야 합니다.

  

적 대부분은 안개에 가려져 있으며 인기척을 통해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캐릭터 육성은 어떤 구조일까요? <트러블슈터>의 캐릭터들은 바람, 번개, 화염 등 다양한 속성 중 하나를 부여받는데요. 유저들은 여기에 무기, 방어구, 장신구를 착용시키는 한편, '턴 대기 시간 감소', '범죄 조직 공격 시 피해량 증가' 등 다양한 특성을 추가해 다채로운 전투를 펼칠 수 있습니다.

 

글로만 봐도 느끼셨겠지만, <트러블슈터>는 익혀야 할 것도 고려할 것도 많은 게임입니다. 따라서 튜토리얼만으로 게임의 모든 요소를 온전히 파악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워낙 많은 요소가 존재하는 만큼, 줄글로 나열된 가이드만으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물론 전투가 아닌 상황에서도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은 느낌도 들었던 이유입니다.

 

 

# 편의성 제공과 소통 의지는 좋지만...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처음 <트러블슈터>를 플레이했을 때, 기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전투 시 카메라가 지나치게 빨리 움직이는 데다, 캐릭터의 모션과 연출이 다소 과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혹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옵션을 통해 해당 부분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거든요. 특히 '모션 효과 제거'와 같이 단 하나의 옵션으로 퉁치는 게 아니라 '아군 외 행동 빠르게 연출', '타켓팅 카메라, 어빌리티 카메라 끄기' 등 개별 옵션이 제공되는 부분은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누군가에겐 소소할 수 있지만, 충분히 유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포인트죠.

 

지속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개발사의 의지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트러블슈터>는 2017년 12월 얼리 억세스를 시작해 올해 4월 정식 발매된 게임으로 지금껏 정기 업데이트 횟수는 무려 91회에 달합니다. 물론 게임이 공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를 감안해도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그만큼, 댄디라이언은 유저들의 피드백에 귀 기울이며 계속해서 게임의 완성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평가도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17일 기준 <트러블슈터>는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평가 시기를 최근 30일로 좁히면, 유저 평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 등급까지 올라갑니다.

 

유저 코멘트 역시 인상적인데요. 한 유저는 "개발자가 고생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유료 DLC라도 만들어서 개발비나 인력을 보충해라"라는 코멘트를 달기도 했습니다. 참 낯선 유저 평가입니다.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출처: 스팀)


하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냉정히 말해 <트러블슈터>의 그래픽은 썩 좋지 않습니다. 캐릭터 모델링은 나쁘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퀄리티가 좋지 않을뿐더러 배경이 뭉개지는 현상도 종종 발생합니다. 게다가 캐릭터 모션이 지나치게 과장되어있어 마치 타이쿤 게임의 NPC가 걸어 다니는 것처럼 어색한 느낌이 들 때도 잦습니다. 

 

시스템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요소가 준비되어 있는 점도 장벽으로 다가옵니다. 분명 요소 자체는 재미있고 고민할 여지를 주지만, 이를 튜토리얼과 플레이를 통해 천천히 따라가기엔 다소 볼륨이 커서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트러블슈터>의 전투는 꽤 '천천히' 진행됩니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미니맵에 대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트러블슈터>는 전투 시 비교적 자유로운 시야 전환이 가능하지만, 미니맵은 유저의 시점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의 방향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장 파악을 위해 맵을 돌리다가 미니맵을 확인하면 헷갈릴 때가 적지 않죠. 물론 적의 위치를 인기척으로 알려주긴 하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입니다. 차라리 전장에 미니맵을 배치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미니맵은 가시성도 떨어질뿐더러, 하나의 방향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 '지켜주고 싶은 게임', 트러블슈터

 

<트러블슈터>는 살짝 찍어 먹기만 해도 여러 단점이 눈에 들어오는 게임이지만, 그만큼 장점도 적지 않은 게임입니다.

 

<트러블슈터>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그리고 켜켜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플레이할 가치가 있습니다. 게다가 유저들을 위해 준비된 다양한 편의성 옵션은 소소한 감동마저 불러옵니다. 투머치토커가 연상되는 수많은 피드백과 업데이트는 덤이고요. 분명 단점이 있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지켜주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한 수 한 수를 주고받는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선호하는 SRPG 매니아라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전투를 원한다면 <트러블슈터>는 한 번쯤 플레이해볼 만한 타이틀입니다. 분명 <트러블슈터>는 SRPG의 즐거움과 고민의 재미를 한가득 안겨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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