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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통신] 사탕을 입에 문 무방비의 디자이너가 좋다. 그래서홀로 12-17 조회 2,880 공감 2 5
사탕을 입에 문 무방비의 디자이너
 
자신을 철저히 인위적으로 디자인하는 철직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뽐내고 싶어하는 인간에 대하여.
 
디자이너라니까 그래픽이나 건축을 떠올릴텐데 아니다. 요즘 내 필이 꽂힌 대상은 '김학규' 다. 그가 누구인가. 한국에서 잘 나가는 게임 디자이너, 벤츠와 버버리가 잘 어울리는 여피같지만 사실은 천진난만한 구석을 감추고 있는 사내. 나는 게임디자이너 중에 김학규를 좋아한다. 서관희, 김동건, 이원술씨도 나름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김학규만큼은 아니다. 게임을 잘 지지고 볶고를 떠나, 그는 같은 테두리의 사람들과는 달리 좀 유별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히 이 게임판에서 이름좀 있다는 디자이너들을 보라. 대부분이 취재기자를 한껏 의식한채 인공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 일쑤다. 그러고는 자 어디 한번 질문 해 보시지, 하는 눈빛이다. 그런 사진을 보고 있으면 웬지 내 자신이 괴롭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개발도 했다, 고 짐작되는 김택진씨가 한 인터뷰에서 무슨 게임 개발 책을 탐독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던데, 사실 그 책들은 발간된지 꽤 지나서 나도 가지고 있던 책들이었다. 뭐 한시를 다투는 기업의 우두머리가 철지난 책을 읽고 있다는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인위적인 포즈는 어떻게도 봐줄수가 없었다.

그런데 김학규는 언젠가 인터넷에 퍼진 그 "깨'는 사진에서 짐짓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기마자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완전 무방비 노출 상태였다. 참나 '사탕을 입에 문 파란 양말의 게임 디자이너'라니, 보자마자 꽤 제멋대로인 사람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후에 그건 계산된 행동이라고 실토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리 속에는 함박웃음을 한채 한손에는 츄파츕스를 든 콧수염의 사나이가 자리잡은 뒤였다. 그러더니 얼마 전에는 자기가 제작하는 게임 홈페이지에 '반말 게시판'까지 만들었다. '학규흉아, 너무 웃겨'같은 댓글이 오고가니까. 어 좀 막나가는거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명색이 '디자이너'에 '사장'인데. --학규흉아라는 명칭도 그가 시켜서 부르는 거다.

암튼 얼마 후 신문을 보다 화가 김점선씨의 인터뷰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외제 자동차 타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예술가가 아니라 동네에서 슬리퍼 끌고 시장바구니 들고 다니는 사람이 예술가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사탕을 입에 문 '학규흉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김학규의 저런 푸줏간 백정같은 무방비의 푸근한 이미지가 그의 원동력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를 유별나게 보고 있는 내가 유별난걸지도 모르지. 아냐, 혹시 저치는 그런 이미지를 조종할줄 아는 간사함을 지닌 인간일지도 몰라, 같은 잡생각이 연이었다. 9시에 아침, 12시에 점심, 6시에 저녁처럼 자신을 철저히 인위적으로 디자인하는 철칙주의자? 걷다가 카페가 보이면 커피나 한잔하고, 걷다가 영화관이 나오면 영화 한편같은, 삶의 우연은 끼여들 틈이 없는 인조인간? 나라는 놈은 이렇다. 상상은 공상을 넘어 비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덧없는 비상이 멈추고 웃음이 나왔다. 김학규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Harley-Davidson Leather Jacket'을 걸친 모습을 봤으니까. 디자이너도 사장도 아닌 그냥 뽐내고 싶어하는 인간. 그는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화가 김점선처럼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부시시한 그를 볼 수는 없지만, 손가락 끝으로 몇 번만 클릭하면 닿는 곳에 있는 무방비의 인간이었다. '학규 흉아, 뭐해?'라고 물으면 '놀아'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 사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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