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서울 배경의 오픈월드 RPG, 끝까지 만들 수 있을까?

우티 (김재석) | 2022-04-08 16:14:04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인디가 '해적선 같아야 한다'면, 이들은 신참 해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청년 여섯 명은 경기도 군포의 아파트에서 먹고 자며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게임의 맵 트레일러를 공개했고,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응원의 댓글이 줄지었고 투자 문의가 들어왔다. 


현재 개발 중인 <프로젝트 류>는 한국의 랜드마크에서 펼쳐지는 싱글 플레이 RPG로 한 소녀가 광화문, 경복궁, 청계천 등의 공간을 탐험하며 특정한 미션을 수행한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의 게임이지만, 서울의 여러 얼굴을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혹자는 이 프로젝트 옆에 펄어비스가 개발 중인 <도깨비>를 놓기도 한다. 

이 '신참 해적'들은 원래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맵을 언리얼엔진으로 옮겨내던 동인들이었다. 관련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구독자를 10만 명 넘게 모았지만, 언제까지나 다른 회사의 IP를 가지고 활동할 수 없었기에 아예 전에 없던 게임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이전에 만들어본 게임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유튜브에 유저들과 제작 전 과정을 공유하면서 의견을 수렴하는 겸손한 방식으로 게임을 개발 중이다.

벚꽃이 여문 산본역 부근에서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트레일러 공개 이후 주변의 반응이 부끄럽고도 고맙다는 이들의 이름은 '류 프로덕션'이다.

 

류 프로덕션의 러셀(좌)과 재민(우)

 



Q.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고?

A. 류 프로덕션: 그렇다. 집에서 개발만 하는 방구석 개발자다. (웃음) ​감사하게도 트레일러를 올린 뒤 여러 업체와 기관으로부터 미팅 요청을 받고 있어서 앞으로는 외출을 더 하게 될 것 같다. 첫 번째로 만난 게 디스이즈게임이다. 예전부터 애독하던 매체에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Q. 트레일러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가?

A. 솔직히 예상 못 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들이 게임으로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트레일러를 내놓았고,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뜻깊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프로젝트인데, 좋아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Q. <프로젝트 류>는 몇 명이서 만들고 있나?

A. 류 프로덕션:​ 6명이다. 아파트 하나 잡아서 합숙하면서 만들고 있다. 우리가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 사이였기에 가능하다. 원래 <메이플스토리> 언리얼엔진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분야들이 있었고, 지금은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서 좋다.

원래는 같이 영상을 만드는 친구들이었다. 온라인에서 만나서 서로의 재능을 알고만 있었고,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5년 정도 알고 지낸 친구들인데 각자가 뭘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게임을 개발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 안에서 개발, 작곡, 기획, 디자인이 다 나뉘어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급하게 청소한 류 프로덕션의 작업실

Q.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마주하곤 하는 암초가 있다. 우정 파괴다. 열정과 의지로 시작하다가 팀이 와해되는 경우를 상당히 자주 봤다. 우정으로 이 팀이 지속될 수 있을까?

A. <메이플스토리>를 끝내고 나서 바로 이 프로젝트를 착수했고, 1년의 시간이 있었다. 그 기간에 서로의 방향성을 맞추면서 마찰이 없진 않았다. 대표는 아직도 팀원들에게 존댓말을 쓴다. 팀원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이므로 분쟁이나 싸움이 일어날 때 중재할 의무가 있다. 사실 여기 6명이 예술가고 창작자라서 의견이 있으면 그에 따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들어보고 존중한 다음에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과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뜻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적인 부분에서 발전도 있었고, 돈독해지기도 했다. 


Q. 지금까지 개발비는 어떻게 충당했나?

A. 개발하면서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부분이 개발비다. 팀원들의 월급을 챙겨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건설적으로 자금을 확보할까 고민하다가 언리얼엔진 활용 강의에 나갔다. 언리얼엔진을 배운 경험을 공유하면서 강연비를 벌고, 그것으로 개발비를 하는 순환 구조다. 이밖에 에픽게임즈의 'UE5에서 한국적인 아파트 절차적으로 생성하기' 강의 등에도 참가했다.

 


 

# "언리얼엔진은 어렵다?" 우리는 도전한다

Q. 혹시 지난 새벽(6일) 열린 언리얼엔진5 쇼케이스는 보았나?

A. 당연하다. 참 감명스러웠다. 예전에만 해도 불가능한 기능이 많았다. 우리 프로덕션이 눈을 못 뜬 것도 있었고. 그런데 이제는 정말 많은 기능이 업데이트됐다. 최적화 부분을 끌어올리고 리소스를 덜 들이면서 오픈월드 절차 생성을 돕는 게 이번 버전의 핵심으로 알고 있다. 


Q. 게임을 처음 만들어본다고 그랬는데, 언리얼엔진 사용 자체는 굉장히 능숙하다고 느꼈다.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A. 원래는 외부 기업에서 수주를 받아서 3D 애니메이션 광고 영상을 디자인해주는 일을 하면서 언리얼엔진을 썼다. 그러다가 영상 만드는 목적으로 쓰던 기술을 게임 만드는 데 넣어봤더니 결과물이 예쁘게 잘 나오더라. 플레이도 쉽게 만들 수 있고, 캐릭터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때부터 팀원들끼리 공부하면서 <메이플스토리> 언리얼엔진 버전을 만든 것이고, 그게 유튜브에서 대박이 났다. 못 만든 작품인데 좋아해 주시니 부끄러웠다. 그 일들을 계기로 언리얼엔진을 주력 무기로 쓰기로 다짐했다.


Q. '언리얼엔진은 어렵다'라는 인식이 있다. 다수의 인디게임 개발자가 다른 엔진을 사용하기도 하고.

A. '우리 인디인데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라는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언리얼엔진이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고, 새 버전(언리얼엔진5)도 나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 게 많았다. 리소스 제작도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 시작이 언리얼엔진으로 만든 세계이고, 그것이 봐주시는 분들에게 공감대는 주어왔으니, 앞으로도 언리얼엔진을 가져갈 생각이다.

사실 우리가 게임플레이를 막 깊게 기획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계속 공부하고 리서치하면서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인디 팀이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은 그것대로 가고 언리얼엔진의 파워를 빌리는, 그렇게 해서 재밌는 월드를 만드는 게 목표다. 

 

Q.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오픈월드 RPG를 만드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A. 완전한 오픈월드는 아닐 수 있다. 지금은 세미 오픈월드 쪽을 구상 중이다. 6명이서 (100% 심리스) 오픈월드를 만드는 건 말이 안 되기도 하다. 안정적인 출시가 가능한 방향으로 개발 중인데, 이를테면 경복궁도 있고 아파트단지도 있고 청계천도 있는데 맵당 1㎢ 되는 월드를 여러 개 만드는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 비교하자면 <슈퍼마리오 오디세이> 같은 느낌이다.


Q. 트레일러에는 광안대교 모습도 살짝 지나간다. 서울만 나오는 게 아닌 건가?

A. 맞다. 부산의 아름다운 모습도 담고 싶다. 우리 게임을 통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모두가 알 만한 명소부터 골목골목의 모습 같은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조사를 많이 하고, 때때로 답사도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국을 대동여지도 만들 듯 돌아다니며 게임을 만들 수는 없으니 콘셉트 측면에서 한국의 여러 모습을 융합해서 새로운 가상세계를 창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 공간감 있는 서울 위해 답사까지


Q. 답사를 했다고?


A. 청계천이나 광화문 일대는 6번 이상 답사했다. 광화문역에 딱 내렸을 때의 그 공간감을 느끼고 싶었다. 웅장한 정경과 거기 모여있는 사람들 같은 것들을 최대한 피부로 느끼면서 그 경험을 게임에 넣으려고 했다. 사진 찍은 것을 돌아보기도 하고, 로드뷰도 많이 참고했다. 원래는 이전에 있던 세계(메이플스토리)를 모방했는데, 이제는 실제 도시를 모방하게 된 것이다.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골목길은 성남시 태평동을 모티브로 했다. 

 
Q. 서울만큼 자주 바뀌는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프로젝트 류>는 어떤 시점의 서울을 만들고 싶나?

A. 게임의 시점을 명확하게 구현하고 있지 않다. 서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공감대나 추억은 모두가 다르다. 어느 시점의 지역을 가고픈 분들이 계실 거고, 없어진 것을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실 텐데. 인 게임에 정확한 시간 설정은 하지 않고 있다. 최대한 공감대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 텐데, 이제는 사라진 부분을 복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Q. 맵도 중요하지만 맵에서 일어나는 이벤트가 중요하다. 트레일러를 보면 서울에서 한 소녀가 걸어 다니는데, 이 소녀가 무슨 모험을 하는 게임일까?

A. 많이 부족한 프로젝트다. 이번 트레일러는 우리 프로젝트가 단순한 그래픽 데모가 아닌 플레이어블한 게임이라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 공개한 것이다. 세계관 부분에서 구체화해야 할 것들이 많다. 작가 같은 분들과 협력도 생각하고 있다.

중심 스토리 라인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게 하려 한다. 플레이가 중심이다 보니까 서브퀘스트 중심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생각이다. 게임이라는 가상세계 안에서 행동하는 데 중심을 두려 한다. 월드를 돌아다니면서 간단한 퍼즐을 맞추거나 미니게임을 하는 방식도 구상 중이다.


Q. 방금 '공간감을 만들고 싶다'라고 했는데, 트레일러에는 1개의 NPC도 등장하지 않는다.

A. 지금 우리가 부족한 부분 중 하나다.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은 물리적 리소스의 영역이다.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런 물리적 리소스 부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 아직 월드 퀄리티도 부족한데 NPC까지 집어넣으면 시간이 더 소요될 거다. 물리적 리소스가 엄청 많다고 게임이 비례적으로 재밌어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꼭 NPC를 욱여넣지 않아도 게임플레이가 재밌으면, 그것대로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추후 협업을 통해 물리적 리소스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검토 중이다.


Q. 원하는 그림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 추가 채용을 바라고 있지는 않나?

A. 3D 디자이너가 필요한데 역시 막막한 상황이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와 뜻이 맞으면 좋을 텐데.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같이 기술을 공유하고 배워가면서 일할 수 있다. 우리 자체가 그렇게 경력을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관심만 있다면 같이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 "유저와 개발자가 함께 만드는 게임"

Q. <프로젝트 류> 유튜브 채널에 가면 개발 근황을 만날 수 있다.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소통을 중요시하는데,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되지는 않나? 

A. 그런 고민은 하지 않고 있다. 감사하게도 구독자분들이 우리 팀의 방향을 응원하고 계시다. 한국을 표현하는 데도 지지를 보내주시고,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부분에서도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적용하고 있다. 개발 방향에서부터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는데, 우리가 경력이 많은 개발자들이 아니다 보니 플레이어가 될 분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피드백을 부탁할 뿐이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의 키를 잡은 사람이라면 자기 철학을 밀고 나가야 하는 순간이 있어야지 않을까?

A. 게임을 만들면서 공감대를 살리고 싶다. 

그 공감대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공감대 형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최대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다른 게임의 유저이기도 하고, 다른 게임의 방향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프로덕션의 철학은 유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전달하려는 재미가 진심으로 와닿기를 바란다.

사실은 게임을 개발하면서 그 중간 과정의 모습을 유튜브에 소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정제되지 않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셈이니까. 그래도 우리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조언을 들어가며 유저와 개발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게임으로 자리잡고 싶다.


Q. 트레일러에 짧게 등장하는 '치악산 복숭아' 이스터에그도 그런 취지에서 넣은 건가?

A. 맞다. 개발자와 유저의 벽을 가능한 한 허물고 싶다. 우리도 사람이고 20대로서 재밌는 걸 많이 즐기고 싶다. 유행하는 밈이나 개그 요소를 세세하게 넣어보려 한다. 나중에 개발이 잘 돼서 회사를 만들게 되면 치악산 복숭아 현수막을 걸고 싶다.

 

 

 

Q. 트레일러에 쓰인 음악은 팀원이 직접 작곡했다고?


A. 그렇다. 지금까지 유튜브에 업로드된 모든 영상의 배경음악은 우리 팀에서 작곡한 것이다. <라테일> 느낌 난다는 좋은 평을 주셔서 감사하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게임 음악 전곡을 혼자서 만들기는 쉽지 않다 보니 스튜디오EIM과 협업을 맺기로 했다. 유명한 게임 음악 스튜디오인데 과거 <메이플스토리>의 음악을 담당했던 곳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준 회사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다음에는 그 스튜디오로부터 받은 음악을 쓰는 그래픽 영상을 만들려고 한다.

 


 

 

# 클라우드펀딩, 투자는 조심스럽게... 4년~5년 끌지 않을 것

 

Q. 클라우드펀딩이나 투자 모집 계획은 없는지?

A. 고민이 많다. 연락도 많이 받았다. 좋게 봐주신다는 것이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돈이 오가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소중한 돈이고 그만한 가치를 보여 드려야 한다. 게임플레이, 서사, 최적화 등 개선해야 될 부분 많다. 클라우드펀딩은 당장 잘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다른 분들의 돈을 받을 자격이 되는가라는 물음에 고민이 많다.

펀딩을 한다면 얼리억세스 수준의 게임이 나온 뒤야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언리얼엔진5도 이제 막 업데이트가 되어서 공부할 부분이 많다. 기술적 노하우가 더 생기면 여러 업체랑 협업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부분유료화는 당연히 고민하고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한국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한 미션이다. 첫 게임으로 좋은 평을 받는다면 멀티플레이 게임도 해보고 싶고, NPC도 더 많이 넣어보고 싶다.


Q. <프로젝트 류>의 출시 일정이 궁금하다. 언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지?

A. 아직 프로젝트 초기이기 때문에 출시 일정을 못 박기는 어렵다. 우리가 게임으로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개발 기간을 4년 ,5년 이렇게 길게 가져가고 싶지는 않다. 현실적인 마무리 시점은 내부적으로 설정했다. 출시를 질질 끌어서 오매불망 기다리게 하지는 않으려 한다. 유튜브를 다 올려놓고 출시를 안 하면 안 될 일이니까.


Q. 끝으로 게임을 기대할 독자 여러분들께 한 말씀.

A. 부족하고 개선할 게 많은 팀인데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다. 항상 겸손하게 초심을 유지하면서 게임을 만들려 한다. 더 노력하는 팀이 되겠다.

 

전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