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첫 공개 당시 온라인게임과 ‘달리기’라는 소재의 만남으로 주목을 받았던 <테일즈런너>. 하지만 오픈 베타테스트 초기 <테일즈런너>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컨텐츠는 부실했고 달리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속도감도 느낄 수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신선하지만 그게 전부였던 게임’ 정도. 결국 <테일즈런너>는 1,000 명 이하의 동시접속자수를 기록한 채 유저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동시접속자수는 5~6 만 명을 오가고 컨텐츠는 오픈 초기에 비하면 수 십 배로 늘어났다. 올해에만 신규 캐릭터와 맵, 시스템 등이 포함해 9주 연속 업데이트를 두 차례나 진행하면서 유저들의 부정적인 반응도 사라졌다. 이 정도면 캐주얼 게임으로서는 정상에 오른 성적임에 틀림 없다.
비결은 무엇일까. <테일즈런너>의 개발사 라온엔터테인먼트의 정민종 팀장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직할 정도로 끊임 없는 노력과 어떤 컨텐츠도 가져다 쓸 수 있는 열린 마음가짐이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우리의 힘은 ‘끈기’
정민종 팀장이 꼽은 <테일즈런너> 개발팀의 최대 장점은 ‘끈기’다. <테일즈런너>는 오픈 베타테스트 이후 늦어도 한 달, 빠르면 보름에 한 번씩 유저들이 체감할 수 있는 규모의 업데이트를 진행해 왔다. 덕분에 초창기 10개도 안됐던 맵은 33개로 늘어났고, 공원과 마이팜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스템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에만 두 번째 진행하는 9주 연속 업데이트다. 2009년을 맞아 진행한 이벤트 성 업데이트에서는 총 4종류의 시스템과 1명의 신규 캐릭터, 2개의 맵과 아이템 패키지를 선보였다. 유저들의 반응이 좋자 이번에는 여름을 맞아 두 번째 9주 연속 업데이트를 시작했다.
<테일즈런너>는 맵 여기저기를 ‘달리고 뛰는’ 게임의 특성상 맵의 자유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맵 곳곳에는 장애물 역할을 하는 기믹과 지름길이 엄청나게 숨어 있다. 맵 하나를 만드는 데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든다는 뜻이다. 반면 개발팀은 30여 명, 그런데도 9주 연속 업데이트라니 조금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지치지는 않을까?
올해 들어 두 번째 9주 연속 업데이트. 이벤트까지 포함된 대규모 패치다.
정민종 팀장은 “결과만 좋으면 얼마든지 힘을 낼 수 있다”고 답했다. 이를 위해 그는 연속 업데이트에서 팀원들이 원하는 부분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관심이 있는 곳에서 일할수록 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다만 <테일즈런너>는 효율성을 위해 하나의 맵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추가되어야만 ‘업데이트’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개발팀의 실력 역시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카트라이더>처럼 인기 있는 캐주얼게임들을 보면 업데이트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역시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민종 팀장의 자신감 넘치는 답변이었다.
유저들의 반응은 확실했다. 동시접속자수는 꾸준히 늘어났고, 지난 겨울 시즌에는 5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에도 4만 명 정도를 꾸준하게 유지하다가 다시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유저가 몰려들 것을 예상해 서버 안정화 작업까지 마쳤다.
정민종 팀장은 “이렇게 방학 때 늘어난 유저 중 상당수는 방학이 끝나고도 남아있다. 매번 방학이 지날 때마다 동시접속자수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일단 게임에 접속하고 나면 유저들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을 즐기면 농작물이 자라는 팜과 동물탑승 등 다양한 시스템도 추가되었다.
■ 암산부터 액션까지, 못 넣을 컨텐츠는 없다
업데이트가 많은 만큼 <테일즈런너>의 컨텐츠는 다양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양함을 넘어서 도통 기준을 알 수 없는 수준이다.
달리면서 계산 문제는 푸는 암산왕을 비롯해 영어단어를 외우는 맵이 나오는가 하면, 올 봄에는 난데없이 연금술 시스템이 등장했다. 상반기 업데이트에서는 유저들이 대립해서 싸우는 PvP 모드도 선보였다. 이쯤 되면 오픈 베타테스트 초반의 ‘동화를 달린다’는 콘셉트는 이미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
정민종 팀장은 이에 대해 “아이디어만 있다면 무조건 막지 않는다”고 답했다. ‘달리기’라는 콘셉트만 유지한다면 다른 어떤 제한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의 아이디어를 답습하면 안 된다는 확고한 내부 방침도 세워 놓았다.
“다양한 종류의 컨텐츠를 제공하고 그 중 유저가 ‘입맛에 맞는’ 것들만 뽑아도 충분히 즐길만한 볼륨이 나와야지 비로소 모든 유저들의 취향에 맞출 수 있다.” 정 팀장이 말하는 <테일즈런너> 개발팀의 목표다.
물론 업데이트에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다. 유저들이 필요로 하는 시스템은 최우선적으로 만든다는 것. 대표적인 것인 올해 추가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맵과 팜, 그리고 스토리다.
기존의 <테일즈런너>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맵은 높낮이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허들과 슈퍼점프였다.
거기에 여러 유저들이 게임 내의 숨겨진 요소들을 찾으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추가한 맵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다. 물론 맵에는 다양한 점프장치와 일종의 이스터 에그의 성격의 도적 40인이 모두 숨어 있다.
지금까지 쌓인 노하우를 집대성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유저들이 대기방에서 게임은 하지 않고 대화만 나누는 것을 보고는 소규모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팜’을 만들었다. 물론 단순히 이야기만 나누는 장소라면 재미가 없으니 게임에서 얻는 경험치에 따라 팜에서 작물이 자랄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목적 없이 달리는 데 지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게임의 컨텐츠를 하나로 묶는 ‘메인 스토리’도 만들어 넣었다. 이왕 스토리를 만드는 김에 유저들의 감정이입을 더 많이 유도할 수 있도록 서로 진영을 선택해 대립하는 PvP 컨텐츠도 넣었다.
겸사겸사 지난 해 선보인 닥터헬의 고난이도 모드에 대한 진실도 밝혀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게임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업데이트 덕분에 <테일즈런너> 개발팀 내부에서는 “우리게임은 칼만 들면 MMORPG도 된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테일즈런너>에 MMORPG 모드를 만들 생각은 ‘아직은’ 없다고.
■ “아이들 취향의 게임이란 인식이 아쉽다”
서비스가 오래된 만큼 아쉬워하는 점도 많다. 정민종 팀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테일즈런너>는 아이들 게임’이라는 인식이다.
실제 게임의 컨텐츠나 난이도는 성인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인데 서비스 초반에 인식이 굳어지고 나니 이를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 그나마 암산왕 같은 교육용 컨텐츠 덕분에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경우는 많아졌지만 20대 유저는 아직 많이 부족한 수준이다.
“오픈 베타테스트 초기에 인식이 굳어지고 나니까 이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정민종 팀장은 지금부터라도 20대 유저들을 확보하기 위해 ‘<테일즈런너>를 접하는 성인유저들의 반응’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작 게임의 난이도 자체는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픽의 한계도 아쉽다. 아무래도 <테일즈런너>가 오래된 게임인 만큼 엔진과 그래픽의 한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높은 그래픽 퀄리티의 신규 캐주얼 게임이 쏟아지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정민종 팀장은 “혹시나 해서 게임의 일부 컨텐츠만 다른 엔진으로 옮겨 봤더니 개발자 자신도 몰라 볼 만큼 뛰어난 그래픽이 나왔다. 하지만 워낙 많은 컨텐츠가 추가된 게임이라 섣불리 엔진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아쉬워했다.
물론 아쉬움과 포기는 다른 만큼, 해상도를 올리는 방법 등으로 가능한 수준에서의 그래픽 업그레이드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 “경험과 즐거움이 게임을 만든다”
정민종 팀장은 <테일즈런너>에는 아직도 추가될 것이 많다고 말했다.
우선 공원에서는 오픈 TV와 점보기 시스템 등이 추가될 예정이며, 첫 번째 메인 스토리인 카오스 제네레이션이 곧 완료된다. 이번 업데이트 기간 내에 PvP에서 보스전으로 이어지는 대단원의 스테이지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업데이트가 끝나고 잠시 숨을 돌리고 나면 고레벨 유저들을 위한 ‘도전의욕이 샘솟는 고 난이도의 보스모드’도 추가할 계획이다.
인터뷰 도중 앞으로 추가할 아이디어가 적힌 종이를 보여 주고 있는 정민종 팀장.
아직도 남아있는 아이디어만 55가지, 그나마도 사용하기 어렵다 싶은 것은 모두 제외하고 남은 것이란다. “앞으로 2년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아 놨다”고 답하는 정민종 팀장의 웃음에는 여유로움까지 느껴졌다.
아직도 추가하지 못 한 많은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다른 게임에서 적용한 시스템도 새로운 고민과 해석으로 <테일즈런너>에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신규 캐주얼 게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긴장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팀장은 “게임에는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이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재미있는 게임은 시대를 타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끈기를 갖고 자기 자신의 게임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게임으로 풀어내고, 개발자가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정민종 팀장.
새로운 업데이트를 만들 때마다 유저와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수없이 컨텐츠들을 점검하다 보니 개발팀 전원이 몰라보게 게임 실력이 늘었다며 머쓱하게 웃는 그에게서 <테일즈런너>의 힘찬 원동력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