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본에서도 금지된 최악의 뽑기, 한국에선 흔하다?

다미롱 (김승현) | 2020-06-15 09: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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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금지된 최악의 뽑기 '컴플리트 가챠'. 그런데 이게 국내 일부 게임에 아무렇지 않게 녹아 있다는 것 아시나요?

 

오늘의 이야기는 '국내에 스며들고 있는 컴플리트 가챠의 위험성'입니다. 

 


 

 

 

# 컴플리트 가챠가 뭔데?

 

컴플리트 가챠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뽑기에서 나오는 어떤 아이템들을 모으면 보상으로 또 다른 아이템을 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유료 뽑기로만 나오는 타임 스톤, 파워 스톤, 스페이스 스톤 등의 정해진 세트를 모으면 보상으로 '인피니티 건틀릿'을 얻는 식입니다.

 

'뽑기'로 필요한 것을 몇 번이나 얻어야만 최종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구조죠. 얼핏봐도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이 엄청나게 낮아 보이죠?

 

하지만 컴플리트 가챠의 진짜 문제는 확률이 아닙니다. 바로 유저가 재료를 얻는 확률이나 최종 보상 얻을 확률을 속을 수 있다는 '기만성'이 진짜 문제죠.

 

카드 5개를 모아 보상을 얻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드 5개가 동일한 확률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필요한 카드들이 희귀 등급이어도, 각 카드의 등장 확률 자체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일부 업체는 이 중 특정 카드만 획득 확률을 낮게 만듭니다. 다른 카드 4개는 3% 확률로 나오는데, 나머지 카드 하나만 0.5%에 나오는 식으로요. 국내외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례입니다.

 

이러면 유저는 자연스럽게 확률 낮은 재료 하나만 없는 상태에서, 이것도 다른 것과 같은 확률로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 뽑기를 하게 되겠죠. 만약 이 뽑기 이벤트가 기간 한정이라면 유저는 더 광적으로 빠져들고요.

 

이러한 기만성은 컴플리트 가챠의 또 다른 위험인 '강한 유혹'과 맞물려 치명적인 결과를 만듭니다.

 

일단 잠깐 유혹에 대한 얘기를 해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완의 것을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 어떤 것에서 손해보기 싫다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컴플리트 가챠는 이런 심리를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구조입니다.

 

앞서 말한 것을 예로 들면, 컴플리트 가챠 이벤트 중에 뽑기를 한 유저라면 자연스럽게 재료 몇 개는 얻게 됩니다. 유저는 자연스럽게 '1~2개만 더 모으면 된다'라고 생각하겠죠. 기간제한까지 걸려 있으니까, 재료를 어느 정도 모은 상태에서 이걸 기간 내에 끝내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 쉽고요.

 

이런 심리가 가뜩이나 확률 낮은 상품에서 유저가 확률까지 착각한 상황에서 생긴다고 가정해 보세요.

 

직접 부딪히며 확률이 낮다는 것을 깨달아도, 이미 거기에 수백, 수천만 원을 쓴 상태입니다. 이러면 쓴 돈이 아까워서라도 포기 못하죠.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겁니다. 설사 게임사가 재료 확률을 동일하게 만들었더라도 다른 뽑기보다 낮은 확률, 강한 유혹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가고요.

 

실제로 일본에서 컴플리트 가챠가 퍼지자 지나친 사행성 조장 때문에 신문과 지상파 뉴스에도 나오고, 소비자청이 업계에 경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일본 게임 업계는 문제가 공론화된지 1달도 안 돼 자율적으로 컴플리트 가챠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이후 컴플리트 가챠를 규정하고, 이런 걸 도입하지 말자는 자율규제까지 시작했고요. 뒤이어 정부에서도 컴플리트 가챠는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일본에서 컴플리트 가챠는 금지되게 됩니다.

 

 

# 한국에 숨어든 컴플리트 가챠

 

문제는 이 컴플리트 가챠의 핵심 구조가 여러 한국 게임에서도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조처럼 직접적인 경우는 많지 않지만, 돈 써서 랜덤한 결과를 얻고, 이걸 세트로 모아 더 큰 보상을 얻는다는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최근 <카트라이더>에 추가된 빙고 이벤트가 대표적입니다. 히페리온 X라는 최상급 차량을 영구적으로 얻으려면 뽑기에서 나오는 숫자를 모아 빙고를 100% 완성하는 수 밖에 없죠.

 

물론 뽑기에서 숫자판 말고 다른 아이템도 나오기 때문에 빙고 맞추는 것을 보너스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료 뽑기에서 랜덤한 결과를 얻고, 이걸 다 모아야 '가장 좋은' 보상을 얻는다는 구조는 컴플리트 가챠와 같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회사는 뽑기에서 나오는 다른 아이템 확률은 공개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숫자판 확률은 공개하지 않는 등 유저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힘들게 상품을 디자인했죠.

 

물론 <카트라이더>의 사례는 수집형 RPG에 비해 기대값이 싼 편이긴 하지만, 게임 특성 상 미성년자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잠재적인 위험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리니지2M>의 컬랙션 시스템도 컴플리트 가챠와 유사한 원리입니다. 게임엔 유저가 뽑기로 얻은 변신 캐릭터를 모아 보너스 능력치를 받는 '컬렉션'이란 시스템이 있습니다. 처음에 변신 캐릭터가 적을 땐 컬랙션으로 얻는 보너스가 적기 때문에 마치 '덤'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저가 변신 캐릭터를 많이 가질수록 캐릭터 하나로 완성되는 컬랙션도 늘어나고, 보너스 능력치 수치도 어지간한 장비 하나보다 나을 정도로 커집니다. 이쯤되면 변신 캐릭터가 덤이고 능력치가 메인이 되는 셈이죠. 보너스 능력치를 위해 쓰지도 않을 변신 캐릭터를 저격해야 하죠..

 

즉, 게임을 오래 하거나 돈을 많이 쓸수록 시스템이 점점 컴플리트 가챠로 변하는 셈입니다. 심지어 일부 변신은 그나마 얻을 확률이 높은 '합성'으론 안 나오고, 오로지 뽑기에서만 얻을 수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변신 캐릭터를 가진 최상위 유저들은 원하는 캐릭터 하나를 얻기 위해 수천만 원을 쓰기도 할 정도죠. 만약 새로운 변신 캐릭터와 컬랙션이 업데이트된다면 이 일은 스케일이 훨씬 더 커지고요.

 

이런 사례들 외에도 연예인 캐릭터를 사면 얻는 퍼즐 조각을 다 모으면 팬미팅 참여 기회를 줬던 <서든어택>, 뽑기 캐릭터를 모아 고급 캐릭터를 얻는 <모두의 마블>의 앨범 시스템 등 컴플리트 가챠와 유사한 시스템은 국내 게임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했습니다.

 

 

# 8년 전과 지금의 과금 인식 차이

 

게임은 사람의 심리를 제어하는 콘텐츠고, 때문에 같은 기법이라도 어떻게 구현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때문에 컴플리트 가챠와 이 원리를 이용한 다른 모델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죠. 애초에 컴플리트 가챠 또한 '마일리지'의 일종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호함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게 어떻게 '변질'되진 않을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게임은 처음에 마일리지였던 시스템이 언제부턴가 사실상 컴플리트 가챠로 바뀌기도 했으니까요.

 

2012년 일본에서 컴플리트 가챠가 금지될 때, 언론은 컴플리트 가챠의 사행성 조장을 지적하며 1년에 2천만 원을 쓴 주부, 며칠 만에 140만 원을 쓴 학생의 사례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8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선 모바일 RPG를 한다고 했을 때 저 정도 돈을 쓴다는 것은 크게 이상하진 않은 시대가 됐죠.

 

이 모든 게 컴플리트 가챠 방식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 구조를 차용한 일부 게임이 이런 흐름을 가속한 것도 사실입니다. 덕분에 일부 업체는 역대급 매출을 얻었지만 그와 비례해 유저들의 마음도 빠르게 떠나갔죠.

 

이런 시스템, 이런 흐름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린 머지않아 가장 열성적인 유저들이 가장 열렬적인 안티가 된 모습을 보게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이게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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