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해설] 에픽vs애플 1차전 마무리, 어떻게 볼 것인가?

우티 (김재석) | 2021-09-15 09: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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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게임즈와 애플의 소송전 1차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0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연방지방법원의 곤잘레스 로저스 판사는 애플의 인앱결제 시스템이 반 경쟁적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판결일로부터 90일이 지나는 12월 9일부터 앱스토어에서 개발자들이 원하는 자체 결제 링크를 앱에 추가시킬 수 있습니다. 인앱결제 강제 빗장이 풀린 것이죠. 미국 법원이 에픽의 손을 들어줬다는 등 해석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에픽은 승리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팀 스위니 에픽 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판결은 개발자와 소비자를 위한 승리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에픽은 이내 항소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2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에픽은 왜 항소를 결정했을까요? 어쩌면 9월 10일의 판결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애플은 이번 결과에 만족한 모양입니다. 애플은 자사 뉴스센터에 보도자료를 내고 "오늘 법원은 앱스토어는 반독점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애플은 고객과 개발자들의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가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한다고 믿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앱결제 의무를 잃은 애플이 득의양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10개의 쟁점, 1개의 인정: 인앱결제 강제 금지

먼저 에픽이 고소를 하면서 내건 쟁점은 모두 10개로 9개는 반독점법 위반에 관한 건이고, 1개는 이번에 한 발짝 물러서게 된 외부결제 링크 허용입니다. 9개 사안은 서드파티 앱스토어 차단, 고의적 앱 심사 지연 혐의, 인기 순위 편집 등에 관한 건이었습니다. 에픽은 애플의 앱스토어 정책이 전체적으로 반독점법 위반이라고 본 것이죠.

재판부 판단은 달랐습니다. 9개 모두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185쪽 분량의 판결문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애플은 반독점법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볼 '소지'가 있을뿐, 실제 법을 어기진 않았다는 겁니다. 최근 애플의 여러 로비 행위에 대해서 집중 보도한 폴리티코는 "애플이 반독점 소송을 이겼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했습니다. 블룸버그, 씨넷, 벤처비트 등 주요 외신들 평가도 비슷합니다.

로저스 판사가 모바일 생태계에서 애플이 독점이 아니라고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녀는 "이 소송에서 문제가 되는 '시장'은 디지털 모바일 게임 거래이지 앱스토어 등 애플의 자체 OS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디지털 모바일 게임 거래 자체는 안드로이드에서 할 수 있고 삼성이나 샤오미 스마트폰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앱스토어를 독립된 시장으로 간주한다면, 그 안의 유일한 관리자인 애플이 취하는 행보는 독점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애플이 디지털 모바일 게임 거래 자체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고 본 겁니다. 이는 애플의 "앱스토어는 거대 시장의 일부분"이라는 주장과도 결이 다릅니다. 

로저스 판사는 디지털 게임 시장을 ▲모바일게임 ▲​PC게임 ▲​콘솔게임 ▲클라우드 스트리밍​으로 구분하고, 그중 모바일게임에 대한 소송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에픽은 '<포트나이트>는 크로스플랫폼 게임인데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아마도) 그 상태에서 법원이 애플의 파이의 추산한 결과, 57% 안팎이 나왔으므로 독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성공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로저스 판사의 논리였습니다.

게다가 법원은 에픽게임즈의 영업 방해 행위를 지적하기까지 했습니다. 판결에는 "에픽게임즈가 애플의 인앱결제를 무시하고 자체 빌링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계약 위반"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따라서 에픽게임즈는 작년 8월부터 10월까지 자체 빌링 시스템으로 번 돈 1,217만 달러(약 142억 원)의 30%를 고스란히 애플에게 내야 합니다. 계산해보면 약 360만 달러(42억 1,740만 원)가 나오네요. 

돈 나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짧게 짚고 가자면, 두 회사는 각자 소송 비용을 대기로 판결됐습니다. 에픽이 항소를 공식 선언했으니 이 비용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소송전이 장기화되면 소송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비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에픽게임즈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결과는 법원이 애플 측에 외부 결제수단 및 외부 애플리케이션 마켓을 허용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로저스 판사는 재판 중에도 애플이 앱스토어의 배타성을 방어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앱스토어 생태계를 공고히 통제하는 것은 고객 보호를 위한 애플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견해죠.

 


 

 

# 인앱결제 의무 폐지 이끌어낸 것이 대단한 진전?

수 개월 동안 생태계의 명운을 짊어진 듯한 에픽이지만, 정작 얻어낸 것은 '인앱결제 외 직접 구매로 연결할 수 있는 링크를 포함시키지 못하게 하면 안 된다' 하나입니다.

문제시된 인앱결제 강제는 연방정부의 반독점법 위반도 아닙니다. 판결문에 의하면, 이것은 '캘리포니아 부정경쟁 방지법(Unfair Competetion Law of California)에 따른 반경쟁적 행위'로 정의됐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에픽은 ​<포트나이트>에 자체 빌링 시스템 도입해서 번 돈 일부를 물어내게 생겼으니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격'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에픽은 당연히 항소를 선택했습니다. 

 

한국의 구글갑질 방지법 통과에 "나는 한국인!"이라던 팀 스위니는 라운드 2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에픽 입장에는 애플의 아성을 조금이라도 무너뜨린 걸까요? 아닙니다. 이미 무너질 성곽의 일부분에 흠집을 냈을 뿐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흠집이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타격이 되지 않습니다. 최근까지 애플은 2019년 일련의 개발자들이 제기한 앱스토어 독점 결제 관련 소송에 대한 법원 심리를 진행했고, 최근 그 합의안이 언론에 공개됐는데요. 

 

애플이 현지 법원에 제출한 합의안에 따르면, 애플은 연매출 100만 달러(약 12억 원) 미만 사업자에게 3년간 수수료를 감면함과 동시에 이메일을 통한 외부 결제 홍보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애플의 외부 결제 허용은 다른 소송에서 이미 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외부 결제를 허용하면 30%의 수수료를 떼지 않아도 될까요? 아직 외부결제 허용이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를 넘어 전방위적으로 시행 중이지는 않고 세부적인 시행 계획도 나오기 전입니다만, 애플은 보수적인 입장만은 그대로입니다.

애플에 따르면, 현재 앱스토어에서는 공식적으로 15만개의 API가 서비스되고 있으므로 안전하게 생태계를 관리하고, 각종 거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원이 필요하고, 따라서 30%의 수수료를 징수해야 합니다. 수수료 반값 정책은, 이제 갓 성장하는 앱 개발자(개발사)를 위해 '배려 차원에서' 펼치게 된 것이고요.

이제는 업계인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앱공정성연대(CAF, Coliation for App Fairness)라는 비정부기구(NGO)가 있습니다. 에픽게임즈 주도로 설립된 시민단체로 스포티파이, 매치그룹(틴더 소유주)이 구글과 애플에 대항하는 여러 활동을 펼치는 곳이입니다. CAF는 애플의 합의안이 허풍선(sham)이라는 입장입니다. 30%의 수수료 자체는 유지한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애플이 외부 결제에 속도 지연 등의 장애물을 설치해 견제할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결국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소송전에서 진전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히려 애플의 앱스토어 운영 행위가 반독점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만 나왔죠. (다른 소송을 통해서 합의된) 외부 결제 도입 허용이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규모있는 앱 제공자들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앱공정성연대 메인 이미지

 

 

# 이번 소송전으로 게임 생태계가 확인한 것들

그렇다고 이번 1차 소송전의 의미를 아주 평가 절하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소송전은 역대급 폭로전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애널리스트들과 기자들이 추측하던 이야기들이 숫자와 함께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요. 두 회사 모두 경영 상 보안 유지가 필요했을지도 모를 이야기가 만방에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회사 중에서는 비상장 회사로 대중에게 소상한 경영 활동 내용을 전할 의무가 없는 에픽게임즈에게 더 뼈아플 겁니다.

두 회사는 공판 심리 내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근거를 가지고 왔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회사의 대표는 직접 공판에 나서기도 했죠.

 

- 보안이 중요하다던 애플이지만, 정작 2015년 9월 앱스토어에서 악성 앱 2,500개가 노출됐고, 다운로더의 수는 1억 2,800명에 달하는데 애플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필 스펜서는 팀 스위니와 메일을 주고받고 에픽의 편에 서기로 했다.

- 에픽은 자사 스토어에 PS 독점작을 싣기 위해 소니에게 2억 달러를 제안했다.

- 애플 부사장 필립 실러도 수수료 30%가 영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 스티브 잡스가 30%의 수수료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애플 직원들도 모르고 있다.

- <포트나이트>는 2년 동안 약 9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두었다. 언리얼엔진의 연 수익은 2018년 1억 2,400만 달러, 2019년 9,700만 달러다. 

- 2018년 12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에픽게임즈는 총 1,160만 달러를 무료게임 유치에 소비했다.

- 소니가 PS에서 <포트나이트> 크로스플레이를 허용하는 대가로 서드파티가 소니에게 로열티를 지불하는 계약을 맺었다.

 

 

 

재판 중 에픽의 변론 슬라이드. 스티브 잡스의 메일 내용과 애플의 'Walled Garden'이 표현됐다

 

# 호기로운 '어그로', 2차 소송전은 개막 전... 스타팅 포인트는 한국?

에픽은 "자유로운 컴퓨팅은 프로그래밍의 기본"이라며 애플을 비꼰 광고를 내고, 아트스테이션을 인수해 수수료를 확 낮추며 환호를 받았습니다. 팀 스위니의 에픽게임즈는 투사 이미지는 성공으로 평가되지만, 법정 투쟁은 '일단'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습니다. 호기롭게 '어그로'를 끌었지만,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에픽은 전열을 가다듬어 항소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에픽은 트위터를 통해 “새로운 한국 법에 따라 에픽 결제와 애플 결제를 나란히 제공하는 <포트나이트>를 재출시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며 여론전을 시작했습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포트나이트>를 즐기던 유저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 된 상황이었는데, 에픽은 가장 먼저 법을 제정한 한국을 스타팅 포인트로 설정했습니다. 새로운 한국 법이란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입니다.

 

재무적으로 <포트나이트>의 한국 매출은 ("포륀이들"을 광고하고 지스타 메인 스폰을 맡을 정도로 투자했던 것에 비해) 인상적이지 못합니다. 감히 예측해보건대 <포트나이트> iOS ​버전의 한국 재출시 요구는 다분히 수사적인 전략일 것입니다. 에픽은 한국의 새로운 법이라는 우군을 얻었고, 이를 통해서 몇 가지 수를 더 낼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 언리얼엔진 솔루션 등의 업무가 있어 한국에 지사를 보유하고 있죠.

 

외신 더버지에 따르면, 애플은 에픽이 앱스토어 규정 준수를 약속하지 않는 한 <포트나이트>를 앱스토어에 복귀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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