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서비스 기간 16년, 모바일로 확장하는 '던파'의 히스토리

4랑해요 (김승주) | 2021-11-29 1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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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플이 개발하고 넥슨이 서비스하는 액션 RPG <던전 앤 파이터>(이하 던파)는 서비스 기간만 16년에 이른, 국내 온라인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게임이다. 기자가 처음 <던파>를 접했던 것이 초등학교 때였고, 성인이 되어 취직한 지금까지도 성황리에 서비스 중인 게임이니, 어떻게 보면 같이 성장해 온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최근 <던파>는 <던파 모바일>, <DNF DUEL> 등 다량의 신작을 통해 IP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본 게임인 <던파>에도 유저 사이에서 '띵진이형'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윤명진 디렉터가 복귀해 개선과 업데이트를 예고했다. 한때 온라인 게임계를 호령했던 <던파>는 다시금 미래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냉정히 말해 기자는 <던파> 전문가가 아니다. 만렙이 60~70레벨이던 시절 심심하면 서버가 '포화'상태에 빠지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던파>에 대한 추억은 있지만, 이후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역사만 16년에 이르는 만큼 아무리 굵직한 내용만 요약한들, <던파>의 역사를 한 기사에 녹여내는 일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미래를 꿈꾸고 있는 <던파>인 만큼 지나온 과거를 한 번 쯤 돌아볼 필요는 있다. 이번 기사는 <던파>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올드함'을 내세웠던 <던파>의 첫 시작

 

<던파>가 유저들에게 첫 선을 보였던 날은 2005년 8월 10일이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던파>가 '복고'를 내세웠단 점이다. 지금이야 <던파>가 16살이라는 나이를 먹은 게임이기에 그래픽 측면에서 "연식 있는 게임"으로 받아들여지는 점은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첫 시작부터 <던파>는 "오락실 향수"를 내세운 게임이었다.

당시엔 발전한 3D 그래픽을 내세운 온라인 RPG 게임이 주류였고, 여기에 도트 그래픽과 벨트스크롤 액션을 내세운 <던파>는 과감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디스이즈게임 필진이 2006년에 <던파>를 리뷰했던 기사를 살펴보면 "<던파>는 3D 게임이 범람하는 현 시대상에 역행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당시 게이머들의 관점으로도 던파는 '올드'한 느낌을 주는 게임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CBT 시절에는 "시대를 역행했다"는 일부 유저의 혹평도 있었다.


<던파> 그래픽은 당시 기준으로도 올드한 편이었다

네오플이 이런 전략을 취했던 것은 차별화를 위해서였다. 당시 네오플 대표 '허민'은 AOGC 강연에서 '네트워크 기술'이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기존 게임업체가 네트워크 기술력을 문제로 기피해 왔던 액션 장르를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해 격투 게임에서나 느낄 법한 긴장감을 살려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네오플이 2D 그래픽에 대한 노하우가 깊었던 만큼 어설픈 3D보단 2D로 개발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를 통한 '해외 시장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2D 그래픽을 통해 낮은 사양으로 많은 유저를 확보함과 동시에, 네트워크 기술력을 통한 파티 플레이의 재미를 살려 해외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였다.​

 

과거 기사 : 던전앤파이터가 노린 틈새는 네트워크 기술

 

 

사실 <던파>가 첫 선을 보였을 때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콘텐츠는 부족했고, 직업 간 밸런스는 개발진이 몇 번이나 사과문을 올려야 했을 정도였다. 강조했던 네트워크를 통한 파티 플레이도 부족한 면이 많았다.

네오플은 부단한 업데이트를 통해 <던파>를 개선해 나갔다. CBT 시절부터 피드백을 수용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초기에는 '귀검사', '격투가', '거너' 세 직업밖에 없었지만, 'ACT.1 마녀의 유희' 업데이트를 통해 신규 직업 '마법사'를 추가하고 던파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을 하나하나 추가해 나갔다.

 

마법사가 업데이트된 '마녀의 유희'

 

기사에 모두 담긴 힘들겠지만, 키리의 강화 시스템,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전쟁지역', 첫 고대 던전 '왕의 유적', 거너 클래스를 개편한 '사격개시', 항아리 아이템을 추가한 '뽑기의 제왕' 등 <던파>의 핵심 시스템이 1~2년이 지나며 차례차례 업데이트됐다.

게임이 개선되고 충분한 콘텐츠가 확보되자 네오플의 의도는 정확히 적중했다. <던파>는 비교적 저사양 컴퓨터에서도 즐길 수 있었으며, 다양한 공격 판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스타일리시 시스템과 커맨드 입력으로 발동되는 스킬 등 2D 게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핵심 재미를 적절히 살려내 큰 호평을 받았다.

지금도 <던파>가 자랑하는 도트 그래픽과 OST도 호평 요인 중 하나였다.

 

초기만 해도 올드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도트 그래픽은 세월이 쌓이며 타 게임과 비교할 수 없는 <던파>의 고유한 특징으로 발전했다. <던파> 특유의 감성을 담은 OST도 유저들에게 주목받았는데, 가장 유명한 곡은 서버 선택창 BGM이다. 이 곡은 지금도 '바람의 너를'이라는 노래로 번안되어 사용되고 있다. 

 

첫 도입부만 들어도 학생 시절 추억이 생각난다. 

<던파>를 해본 유저라면 누구나 포화로 가득한 서버 로비에서 이 BGM을 듣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출처 : yeon H 유튜브 채널)

 
모두가 기억하는 <던파>의 최고 전성기는 이 시절이다. 떠올리는 툭하면 '포화' 상태에 빠져 들어갈 수 없는 서버, 던전 입구에 들어가면 1초마다 들리는 수많은 거너의 장전 소리까지. 모두 이 시절 <던파>의 모습이다.

 

그만큼 유저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최전성기 시절 <던파>는 2006년에 동시 접속자 수 10만을 기록하며 놀라운 상승세를 이어갔다. <서든어택>, <WOW>, <리니지> 등 쟁쟁한 온라인 게임들이 경쟁하고 있던 시기에 얻어낸 결과이기에 더욱 값졌다.


끊김 없이 콤보를 이어나가야 올릴 수 있는 스타일리시 게이지
초등학생이었던 필자에겐 일정 스타일리시를 넘겨 던전을 클리어해야 했던 레인저 전직 퀘스트가 꽤 어려웠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던파 유저라면 익숙할 모습 (출처 : 이글루스 블로그)

 

 사진만 봐도 거너가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자~ 돈 넣고 돈 먹기", "자넨 아직도 크리처가 없구만?"이라는 대사까지 합치면 완벽하다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던파>는 국내 퍼블리셔를 삼성에서 넥슨으로 이관하고(이전까진 삼성이 퍼블리싱을 맡았다. 여러분이 아는 그 삼성이 맞다), 텐센트를 통해 중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중국 각 지역에 맞게 네트워크 환경을 조정하고, 대규모 업데이트를 주기적으로 단행하는 등 현지 유저를 적극 공략한 결과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 선점에 성공했다. 

 

결국 자신들의 강점을 잘 살려내,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큰 그림까지 그려낸 셈이다. <던파>는 2010년에 전 세계 회원 2억 명 가량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게임 오프라인 행사'라는 명성을 가진 '던파 페스티벌'도 2007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디스이즈게임 사진 자료를 확인하면 엄청난 인파가 <던파> 업데이트 발표 하나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위부터 제 1회, 2회 던파 페스티벌

 

# 자타공인 <던파>의 실수, '키리의 약속과 믿음'

 

<던파>이야기를 하면 늘 나오는 사건이 있다. 바로 '키약믿'(키리의 약속과 믿음)이다. 

 

그만큼 키약믿은 <던파>를 해 보지 않은 게이머라도 알 만한 큰 사건이었다. 던파의 최대 전성기를 무너트린 주범이기도 하며, 넥슨도 NDC를 비롯한 여러 자리에서 키약믿이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면, 키약믿은 "강화 실패를 방지해 주는 캐시 아이템"이다. 덕분에 충분한 현금만 있다면 15강까지 무기를 강화하기 굉장히 쉬워졌고, 고강 아이템이 범람하면서 <던파>의 경제와 밸런스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여기에 누적된 직업 밸런스, 부족한 콘텐츠 이슈와 2013년 진행된 '대전이' 패치까지 겹치며 던파는 꾸준한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세로 들어들고 말았다.

 

 

 

# 윤명진 디렉터와 두 번째 전성기

 

유저들에게 애증의 대상으로 손꼽히는 윤명진 디렉터

유저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내용이지만, 키약믿 사태 후 혼란을 겪던 <던파>는 윤명진 콘텐츠 디렉터 체제 하에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윤명진 디렉터 시절 가장 큰 성과로 손꼽히는 것은 단계적 파밍 체계를 구축했단 점이다. 키약믿 사태로 인해 무너진 아이템 체계 개선을 위해 에픽 아이템을 파밍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크로니클, 레전더리, 투기 장비, 에픽 아이템으로 연결되는 파밍 체계를 갖췄다.

 

물론, 가약 없이 헬 파밍을 돌아야 한단 점에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다수의 유저가 파밍 체계 개편을 윤명진 디렉터의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다.

 

또한 귀족과 천민으로 대표되는 캐릭터 밸런스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직업 콘텐츠 추가 속도를 늘려나갔다. 외에도 통합 경매장이나 최적화 등 유저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 나갔다. 이후 2017년, 윤명진 디렉터는 김성욱 디렉터에게 자리를 넘기고 <던파 모바일> 총괄로 이동하게 된다.

 

2013년 디스이즈게임 인터뷰 당시 PM팀 윤명진 팀장, 개발실 라이브팀 김성욱 팀장의 사진


# 내실 다지기와 IP 확장 통해 새로운 도약 나서는 <던파>

 

이후 던파는 ▲할렘 업데이트 ▲궁댕이맨단 사건 등 수많은 업데이트와 부침을 겪으며 현재 자리까지 이르렀다.

 

2017년 김성욱 디렉터에게 자리를 넘겼던 윤명진 디렉터도 <던파> 총괄 디렉터의 자리로 돌아왔다. 취임 후 윤명진 디렉터는 8월 진행된 '던파로 ON 2021 서머'에 등장해 유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을 약속했다. 키약믿 사태 이후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한 <던파>를 이끌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셈이다.

 

던파로ON 2021 (출처 : 던파TV)

 

또한 <던파 모바일>, <DNF DUEL> 등 IP를 활용한 신작 티징 영상도 공개되며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이전부터 <던파> IP를 활용한 작품에 대해 꾸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정확한 출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었다. 2022년은 이제 <던파> IP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시동을 거는 해로 보인다.

 

첫 스타트는 <던파 모바일>이다. 2022년 1분기 국내 서비스를 예고했다. 현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을 받고 있다. <DNF DUEL>도 11월 26일 국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과연, 16주년을 맞이한 <던파>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때마침 앞서 언급한 국내 최대 단일 게임 행사 중 하나인 '던파 페스티벌'도 12월 2일 세부 정보를 공개하고, 19일 온라인 생중계를 진행할 예정이다. <던파>의 미래가 궁금한 게이머라면 분명 주목할 만한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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