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신년기획] 다시 열리는 중국 문, 호재인가요?

우티 (김재석) | 2023-01-04 11: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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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게임, '대륙'에서 다시 그 위용을 펼칠 수 있을까요?

 

2022년의 마지막 수요일, 넷마블 북미 자회사의 게임을 포함해 총 7개의 한국 게임이 외자판호(해외 게임 출시 라이선스)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13억 중국 시장에서 <로스트아크>, <제2의 나라>, <메이플스토리 M>, <그랑사가>를 정식으로 서비스할 수 있게 된 겁니다.

 

2020년부터 <서머너즈 워>, <검은사막 모바일>, <카운터사이드>​, <가디언테일즈> 등의 게임이 간간히 판호를 받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한국산 게임에 판호를 내준 것은 '사드 국면'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장은 곧바로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12월 29일, 게임주는 일제히 급등했습니다.

 

넷마블은 전일 대비 21.44% 상승한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웹젠의 '뮤' IP를 활용해 만든 밸로프의 <뮤레전드>도 같은날 판호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자, 밸로프의 주가는 29.91%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리퍼블리시'를 전문으로 하는 밸로프는 작년 말 합병상장​(스팩) 방식을 통해 코스닥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3년, 한국 게임은 중국에서 성과를 낼까요? 각 게임사들은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부터 <로스트아크>, <제2의 나라>, <그랑사가>, <메이플스토리M>, <에픽세븐>의 판호 목록

 

TIG 신년기획 

 

① 메타버스 하이프, 결국은 계속 간다? (바로가기)

②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바로가기)

③ 역대급 불황에도 "살아남자" 7개 인디 개발사의 생존법은? (바로가기)

④ 2023년, 어떤 게임이 출시될까? 30개 작품 둘러보기 (바로가기)

⑤ 라오어·마리오·테트리스?… 기대되는 2023년 게임 영화·드라마 (바로가기)

⑥ [신년기획] 다시 열리는 중국 문, 호재인가요? (현재 기사)

 


 

# 전에 알던 중국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할 만한 지점은 중국 게임의 퀄리티가 괄목할 만큼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판호를 받은 한국게임들이 가졌던 비교우위가 이제는 거의 없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호요버스의 <원신>은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 뿐 아니라, 탄탄한 유저층을 보유한 게임이 됐습니다. 호요버스가 지난 지스타에 출품한 TRPG <붕괴: 스타레일>과 ARPG <젠레스 존 제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2년 텐센트의 <브이 라이징>과 넷이즈의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는 스팀 상위 판매 게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센서타워 집계에 의하면, <기적의 검>(4399)과 <히어로즈 테일즈>(37게임즈)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모바일 RPG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게임성에 대한 논쟁에도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던 것입니다. '중국산 게임은 똑같다'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라는 듯, <무기미도>, <닌자 머스트 다이> 같은 독특한 콘셉트의 모바일게임도 계속해서 한국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 게임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게임성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도 <기적의 검>과 <히어로즈 테일즈>는 한국에서 돈을 잘 버는 모바일 RPG입니다. (출처: 센서타워)

 

이뿐 아니라 중국 게임 생태계는 이른바 'AAA 게임'에도 과감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트레일러만으로 <갓 오브 워>의 코리 발록을 감동시킨 <블랙 미스: 오공>, 텐센트의 오픈월드 액션 RPG <왕자영요 월드>​, 2021년 도쿄게임쇼에서 주목을 받았던 <어라이즈 오브 어웨이크너>가 대표적입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언리얼엔진과 유니티엔진의 활용성이 높아진 덕에 인디 팀 단위에서 빼어난 수준의 게임 트레일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흔한 말로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일'이기 때문에, 개발 단계의 게임을 두고 뭔가를 단언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만 봐도 중국 게임의 수준이 전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박람회에서 중국인 바이어들이 한국산 게임이면 자세히 들여다 보지도 않고 '팔아달라' 하던 PC 온라인게임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게임사이언스의 액션 RPG <블랙 미스: 오공>은 새 트레일러가 나올 때마다 환호에 가까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 문이 열렸지만, 눈이 높아졌다

작년 4월, 펄어비스는 외자판호를 취득하고 대형 마케팅을 진행하며 <검은사막 모바일>을 서비스했지만, 바라던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자사 실적 발표에 따르면, 펄어비스의 '지역별 영업수익'의 아시아 비중은 <펄어비스 모바일> 중국 출시 이전에도 52%였지만, 그 이후였던 2022년 2분기에도 52%로 동일했습니다. 펄어비스는 3분기에서 영업이익 120억 원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증권가에서는​ <검은사막 모바일>의 중국 부진에 '홀드' 투자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나간 여덟 게임(<메이플스토리 M>, <A3>, <제2의 나라>, <샵타이탄>, <로스트아크>, <에픽세븐>, <그랑사가>, <뮤 레전드>)은 어떨까요? 기록적인 주가 상승까지 보여줬는데 게임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회사는 '조정'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기대감에 부응하려고 마케팅까지 진행했다가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 판호를 받은 게임 중에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출시된 것도 있습니다.

 

외자판호 발급을 통해 '중화권'의 완전한 진출에 성공한 엔픽셀의 <그랑사가>

 

중국 시장이 문이 열렸다고 하더라도, 중국 게이머들의 눈이 올라갔습니다. 중국 모바일마켓 탭탭(Taptap)의 인기 게임 목록에는 <원신>, <왕자영요>, <명일방주>, <화평정영> 등 전부터 잘 나가던 게임들이 보입니다. "중국 인기 30위가 한국 인기 1위 이상"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중국 시장은 크기 때문에, 시장에 안착하면 '대박'이 나겠지만, 그 길은 전과 달리 좁고 험해졌습니다.

 

한국 게임 업계는 ​이번에 판호를 취득한 게임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입니다.

 

 

# 문이 열리긴 했는데... 

 

다종의 한국 게임이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분명 반길 일입니다. 이번 판호 발급이 이례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2021년 6월 이후 약 1년 반 만의 외자판호 승인이었고, 게임 44개가 판호를 새로 받았는데, 한국 게임은 7개로 전체 44개 중 15.9%에 달합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에 많은 해석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 확정에 따른 사회적 유화 조치', '해외 여행 허가 등 중국 내 위드코로나 정책의 일환', '한중 정상회담 주요 아젠다였던 "양국 문화 교류"의 반영', '한한령의 해소' 같은 이야기들 말입니다. 이번 외자판호의 퍼블리셔에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있다는 점에서 중국 당국이 현지 빅테크에 쥐었던 고삐를 살짝 풀어줬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도 물어봐야 합니다. '중국 문이 진짜 열린 것이 맞나?'​ ― 중국의 게임 이용 환경은 아직 대단히 통제적입니다. 한국의 옛 셧다운제보다 훨씬 강력한 미성년 보호 시스템이 작동 중입니다. 선혈(붉은 피) 묘사는 엄격히 통제됩니다. '배금주의'에 단호히 대응하기 위해, 인앱 결제는 감독됩니다. '남성답지 못한​' BL 콘텐츠는 서비스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게임은 '인민의 정신문화 생활'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반사회·반체제적인 게임도 금기의 대상입니다.

미성년 보호 시스템, 선혈 묘사 금지 등 중국의 통제 기조는 계속됩니다.

여덟 게임의 현지 퍼블리셔는 넓게는 중국 공산당, ​좁게는 국가신문출판서를 만족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뜻을 거스른다면 게임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는 그에 따른 리스크까지 함께 져야 합니다. 사회적 프로토콜을 알기 어려운, 통제적인 환경의 국가에 게임을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은 아니지만, 인도의 '배그 퇴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중국과 분쟁 중이던 인도는 중국산 콘텐츠의 소비를 중단하겠다며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서비스를 돌연 중단시켰습니다. 이후 크래프톤은 1,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감행하며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디아>를 직접 서비스하겠다고 나섰지만, 게임은 또 다시 인도 정부의 결정에 의해 스토어에서 내려갔습니다.

 

문을 열어줘서 들어가 보따리를 풀었더니, 봇짐만 놓고 나가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음 문은 언제 열릴까요? 이번 한 번만 열어주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일단 외자판호를 받기만 하면 끝일까요? 중국 시장에서 '초특급 대어'로 꼽혔던 <던파 모바일>은 판호를 받고도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중국 게임 시장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 '골대가 아예 없는 것보다 골대라도 있는 편이 낫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K-게임, '대륙'에서 다시 그 위용을 펼칠 수 있을까요? 위용을 펼칠 수 있다고 확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분명 좋은 일입니다. 비유하자면, 골대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슛을 때릴 골대라도 있는 편이 낫습니다.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엔픽셀 등 여러 게임사들이 기회를 얻은 것은 맞습니다. 2023년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 세계 최대의 DAU(일 활성 사용자)를 가진 중국에서 활로를 얻었으니 분명 호재입니다. 가장 먼저 담금질에 나선 것은 <로스트아크>의 스마일게이트와 텐센트입니다. 두 회사는 중국 SNS에 "조속히 테스트 서버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웨이보 등 중국 SNS에 공개된 <로스트아크> 티저 이미지

 

가까스로 출전 기회를 얻어서 슛을 찼는데, 공이 골대를 넘어 허공을 날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출전 기회가 전혀 없었던 때가 그리워지지 않을까요? 이번에 중국 진출에 성공한 게임사들은 별도의 보도자료나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판호 발급 사실만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부정적 수식어가 따라붙지 않게끔, 폭죽은 나중에 터뜨려도 늦지 않다는 계산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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