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창간 15주년] 제노바 첸과의 만남 #5 -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

세이야 (반세이) | 2020-03-20 1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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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이즈게임이 창간 15주년을 맞아 <저니>의 개발자 제노바 첸과 <룸즈> 시리즈의 개발자 김종화 님의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두 사람은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로, 졸업 후에도 꾸준히 게임 개발에 대해 생각을 나눠 왔습니다. 지난 11월 제노바 첸의 지스타 컨퍼런스 강연을 계기로 그러한 생각을 좀 더 많은 분들께 전해드리기 위해 대담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목차

#1 - 감정적인 경험의 지평을 넓히는 게임 (바로가기)

#2 - 낙인찍지 않는 온라인 게임 만들기 (바로가기)

#3 - 비록 단 하나의 완벽한 디자인은 아닐지라도 (바로가기)

#4 - 플레이어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BM (바로가기)

#5 -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


제노바 첸 댓게임컴퍼니 CEO



김종화 창작자로서, 예술가로서 측면에 대해 질문할게요. 아마 6년 전이었나요? <저니>의 원래 엔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생각하던 엔딩이 있었는데 테스트 이후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보고 수정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그 과정이 어땠으며 엔딩을 바꾸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을 수 있나요?

 

제노바 첸 사실 그 이야기의 포인트는 엔딩 방향의 변화라기보다, 게임이 정말 준비되기 전까지는 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저니>의 스토리에는 언제나 죽은 뒤 산 위로 올라가는 클라이막스가 있었어요. 하지만 ‘좋은 영화는 좋은 스토리가 잘 실행된 것이다’라는 말이 있죠. 

 

마지막 상승 장면은 원래 레일 위를 가는 것이었고, 딱히 자유도가 없었어요. 그 경험은 거기까지 오기 전에 산의 수많은 레벨들을 지나며 분투해 온 역경과 고난에 비하면 그다지 강하지 않게 느껴졌어요. 게임에서의 하강의 경험이, 뒤따라오는 상승의 순간보다 훨씬 강했던 거죠.

 

우리는 모두 뭔가 빠진 것 같다고 느꼈어요. 엔딩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어떤 한 테스터가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플레이어가 죽는 장면 이후 크래쉬가 났고, 화면이 하얗게 변해 버렸어요. 테스터는 우리 쪽을 보고 있어서 우리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지만 그가 플레이하는 화면은 볼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른 채 5분 동안 크래쉬 난 하얀 화면을 보고만 있다가 좀 혼란스러운 상태로 나왔어요. 그는 이 게임이 놀랍다고 했죠. 자기가 정말로 죽은 것 같았고, 그게 영감을 줬다고요. 그래서 전 정말 그냥 죽기만 했는지, 승천하는 장면은 어땠는지 물었고, 그제서야 게임이 뻗은 걸 알았어요.

 

우리는 게임을 끝내야 한다며 그 사람이 다시 테스트를 하게 했고, 승천 장면까지 플레이하도록 했어요. 그는 엔딩까지 해 보고 나와서는 "엔딩을 해 보기 전까지는 걸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엔딩을 보고 나니 사실 그렇게 좋지 않다"라고 말했어요. 그때 우리는 하강의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클라이막스가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놀랍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게 비극에 관한 게임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긍정적인 경험이 하강보다 더 높게 올라가야만 좋은 엔딩이 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상승이 하강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도록 12개월 동안 게임을 다듬었어요.그만큼 하강과 상승의 대조가 극명하기 때문에 <저니>의 엔딩은 굉장히 강렬하죠. 이건 마치 플레이어에게 감정의 펀치를 날리는 것과도 같아요. 하지만 그 정도 세기로 적절하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게임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는 거죠. 

 

 


김종화 <저니>의 메시지는 아주 솔직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종종 이야기 해 왔어요. 대중 예술과 순수 예술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셨는데, 예술가로써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반적인 영웅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요?


제노바 첸 <저니>는 제가 만든 다섯 개의 게임 중 가장 덜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니>의 메시지는 제 메시지가 아니라 보편적인 메시지이니까요. 그렇죠? 조셉 캠벨이 말하는 '영웅의 서사'죠. 순수 예술은 개인적인 표현에 관한 것이에요.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예술가에게 진실인 것이죠. 

 

<클라우드>는 제 어린 시절과 아픔에 관한 것이었고, <플라워>는 상하이에 대한 향수, 도시에서의 삶, 그리고 자연을 도시로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니>에서도 다른 이와 연결되고자 하는 저의 모습이 있지만, 핵심 메시지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에요. 모든 종교나 문화에서 공유되는 신화적인 이야기죠.

 

그것은 변화에 대한 인간의 이야기기도 해요. <저니>를 만들 때 조셉 캠벨이 발견한 것에 아주 충실하려고 노력했어요. 누구나 상태 A에서 B로 변하는 그런 변화의 구조 말이죠. 유교 철학에서 말하는 '기반한 삶의 단계에 따른 변화 이론'을 차용해서 이야기하려고도 했어요. 30세에는 자립해야 하고, 40세에는 어디를 가든 더 이상 의심이 없어야하고, 50세에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우쳐야 하고, 60과 70세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의 법칙을 초월해야 한다는 그런 것 말이죠. 옛 사람들의 지혜를 이용해서 완벽한 변화의 삶을 만들려고 한 거예요. 이건 개인적인 표현이 아니라, 마치 공학과도 같았어요. 

 

<저니>에 제 자신에 대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모르는 사람과 사회적 대화를 하는 부분,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하며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저 자신의 분투하는 모습을 게임에 쏟아 넣은 부분 정도일 거예요. 그 정도만이 진짜 저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클래식이죠. 

 

 


김종화 예술가로서 왜 당신은 기존에 있는 게임보다 다양한 감정적 스펙트럼을 가진 게임을 만들려고 하나요? 이런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내면적 욕구는 어디에 있나요?


제노바 첸 제가 어릴 때는 음… 한국과 중국의 문화는 아주 비슷하잖아요. 우리 둘 다 아주 공격적이고, 경쟁적이고,이기고 싶어하죠. 대학시험이나 중고등학교 시험이나 심지어 경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죠.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도 경쟁하고, 최고의 학교를 꼽으려고 하죠. 

 

저는 늘 이기는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만약 e스포츠가 그때 인기가 많았다면 저도 e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정말로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때 그저 학교에서 가장 잘 하는 정도여서 더이상 경력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죠. 저는 너무 이기고 싶어 했지만 미국에 오고 나서 서구 세계의 경쟁 법칙과 성공의 개념은 중국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중국은 경제적 성장에 핵심 초점을 맞추잖아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그 사람이 누구든 윤리적이든 아니든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 승자에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냥 돈만 많은 것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해요. 우주비행사 같은 딱히 돈을 많이 벌지 않는 사람도 계속 존중을 받아요. 

 

 

USC에 있을 때, 기금 이사회 행사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 있는 이사들은 모두 USC에 기부한 사람들, 부자들이죠. 저는 다른 이사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었어요. 저는 그들의 기부금이 가치 있게 쓰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을 보여주는 그런 학생 중 하나였죠. 

 

그 자리에서 아주 큰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면, 뭐 알다시피 그때 중국인 이민자였던 저는 여전히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페라리를 살거야’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거든요. 모든 남자아이들의 꿈 같은 거잖아요?

 

제 옆에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백인 커플이 있었는데,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다른 백인 커플과 오바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아직 선거 전이었고, 오바마가 대선에서 이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첫 커플은 에너지 정책 때문에 오바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자기는 서부 해안의 모든 석유 시추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데 정책이 바뀌면 산업에 큰 문제가 될 거라면서요. 그러자 다른 백인 커플이 새로운 보험 정책 때문에 오바마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자기가 50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는데, 전부 그 영향을 받게 될 거라면서요.

 

저는 그저 서부 해안의 모든 시추 플랫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50개의 병원이 도대체 몇 대의 페라리인지 생각하려고 했죠. 그게 얼마나 큰 부와 돈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 옆에는 한 동양인 커플이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가 홍콩에서 네 번째로 부자라고 하더군요. 전 세계 어느 대도시든 그의 부동산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그게 얼마나 많은 재산이죠? 저는 그저 페라리를 사는 생각이나 하고, 그런 게 성공한 삶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여기는 제가 이해할 수도 없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동양인 커플 옆에는 한 흑인 커플이 있었어요. 전 아마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만큼 부자는 아닐거라 생각했어요.고정관념이죠. 이 사람은 세 번의 스페이스 셔틀 지휘관이자 나사의 대변인이었어요. 말 그대로 우주에서 열 아홉 번의 임무를 수행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어요. 

 

저는 그저 제 인생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처럼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패배감을 느꼈어요. 그때부터는 어느 정도 조정을 해야 했죠. 무엇이 성공의 척도인지 말이죠. 예를 들어 지구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게 당신에게 성공이라면? 언제나 제프 베조스가 있죠. 베조스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때부터 저는 그냥 숫자만 따라가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명예나 인기를 이야기하겠죠.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 같은 것 말이죠. 

 

그 해가 마침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스타의 반열에 있다가 망가지던 때였어요. 그녀가 워낙 인기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의 추락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더 높은 사다리를 올라 갈 수록 더 급격하게, 더 아프게 떨어진다는 것을 배웠죠. 돈을 쫓는 것은 제가 절대 이룰 수 없는 승리 조건이고, 명예를 쫓는 것 또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아요. 그렇다면 삶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전략이 뭘까요?

 

저는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것은 사회를 위해 남길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다시 인도의 할아버지 이야기로 돌아가는 거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가치를 가진 임팩트를 줘서 남들에게 남길 것인가를 질문하게 됐어요. 그런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보면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라는 거죠.  

 

 

누군가가 아주 인기있는 레이싱 게임을 만들어서 당신도 레이싱 게임을 만들었고 꽤 인기도 있고 돈도 좀 벌었다면? 네. 돈 좀 벌었겠죠. 그게 끝입니다. 게임 산업을 위해 이 게임이 존재해야만 하는 어떤 가치가 있나요? 당신의 레이싱 게임을 산 몇몇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겠지만 그게 다죠. 역사상 최고의 레이싱 게임을 만들지 않는 한 말이죠. 

 

과거의 어떤 레이싱 게임보다 나은 게임을 만들었다면 갑자기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멋진 경험을 하고,그 혜택을 받겠죠. 그것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달리기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깬 것과 같은 거죠.그건 가치가 있는 것 같고, 역사에 기록될 거예요. 전 제가 존재하는 게임을 더 낫게 만드는 분야에 있는지,아니면 새로운 종류의 게임을 만드는 분야에 있는지 생각했고, 저는 새로운 것들을 찾는 것이 더 흥미롭겠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종류의 게임을 찾는다면 어떤 종류의 게임이 비디오 게임 역사에 가장 큰 가치와 영향을 줄까요?

 

새로운 것이어야만 합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어야 하고요. 아직까지 개척되지 않은 감정의 시장이어야 하고, 성장 가능성이 매우 커야 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을 만들었고 그것이 전체 게이머 인구를 30% 증가시켰다면 상당한 성장이겠죠. 그게 제가 감정을 꼽은 이유이고 잠재적으로 청중의 수를 훨씬 더 늘릴 수 있는 것들을 찾는 이유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건 중요하기도 하고 당신이 잘 하기도 하는 것이어야만 해요. 제가 서부극 게임을 만들 방법은 없겠죠. 그것도 꽤 틈새 시장이지만 그냥 전 카우보이에 대해 잘 모르니까요.제가 닌자 게임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겠죠. 

 

 

제가 아는 건 아주 한정적이에요.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 많이 플레이하는 것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픽사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에서 제 강점을 찾으려고 했어요. 좋은 감정을 주는 게임을 만들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대신, 어떤 종류의 게임이 산업에 도움이 될지를 늘 생각하지요. 

 

며칠 전에 중국에서 누군가 저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돈을 버는 것과 예술 게임을 만드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지,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더군요. 엄청난 돈을 번 어떤 게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요. 저는 그에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냐고 물었어요. 올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로 성공을 정의하나요? 50년 후에 사람들이 여전히 당신을 알 것인지로 성공을 정의하나요? 이건 아주 다른 성공의 기준이죠. 

 

만약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면, 네 저는 성공하지 못했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 게임업계에 장기간 미칠 영향에 관심이 있다면, 저는 많은 인디 창작자들은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5편을 끝으로 이번 대담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김종화님과 참여해 준 제노바 첸 대표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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