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기자수첩] 서유기 다크소울 '블랙 미스: 오공',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티 (김재석) | 2020-08-25 14: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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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트레일러를 믿지 않은 지 오래다. <앤썸>에게 속은 뒤로 다짐했다. 다시는 속지 않으리라. 하긴 어느 누가 요란한 효과를 총동원해가며 "우리 게임은 똥겜입니다, 돈 주고 사서 하지 마쇼" 하겠는가? 뚜껑 열고 나서 판단하자. 트레일러는 떡밥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의 <블랙 미스: 오공>은 다시 나를 흔들었다. 서유기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액션 RPG였다. <다크소울>이 연상되는 가운데 손오공이 부리는 각종 요술은 보는 사람을 홀렸다. 무엇보다 "우리 게임은 이렇다"라는 듯 게임 플레이 모습을 쭉 보여줬다. 애니메이션, 액션, 연출, 플레이 모두 흠잡을 곳 없었다.

 

 

 

# 텐센트 출신 개발자들의 서유기 사랑, AAA급 게임으로

누가 만들었을까? 조사에 들어갔다. ​중국의 중소 개발사 게임 사이언스(游戏科学, Game Science)가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텐센트 출신 개발자들이 차린 업체다. 항저우와 선전 두 곳에 스튜디오가 있으며 인원은 100명 규모다. 언리얼엔진을 다룰 수 있는 개발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이번 트레일러를 공개한 것이다.

 

핵심 인사들의 과거 포트폴리오를 찾아보니 <아수라 온라인>이 나왔다. 서유기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MORPG로 텐센트 산하 퀀텀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것이다. 텐센트가 자체 개발작으로 밀어주던 게임이다.​ 2011년 발표 당시만 해도 개발력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애매했던 텐센트였다. 2013년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점차 인기를 잃었다. 서유기와 자신들 구상을 놓을 수 없었던 이들이 나와서 따로 살림을 차린 것이 게임 사이언스로 보인다.

 

<아수라 온라인>

 

2014년 문을 연 게임 사이언스는 2016년 <아트 오브 워>와 <100 히어로즈>라는 게임을 개발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중 <아트 오브 워>는 모바일에서 출시됐는데 지금은 스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 두 편의 프로젝트로 어느 정도 버틸 여력을 확보한 뒤, 자신들이 진짜 만들고 싶던 프로젝트에 나선 것으로 추측된다.

 

게임 사이언스가 텐센트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정보는 없다. 주주 중에서는 히어로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英雄互娱)라는 곳이 발견됐는데, 현지에서 여러 모바일게임을 퍼블리싱한 곳이다. 이번 트레일러로 개발자뿐 아니라 투자자를 모집하려는 의도 역시 있었을 것이다. 개발진은 프로젝트 발표와 함께 "자본은 충분하지만, 개발자가 부족한 상태"라고 이야기했지만 AAA급 프로젝트이니만큼 총알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블랙 미스: 오공>은 내가 봤을 때만 멋진 게 아니었다. 트레일러는 빌리빌리에서 1,000만 뷰를 기록했으며 유튜브에서도 80만 뷰 이상을 기록했다. 영상에서는 긍정적인 댓글이 지배적이었다. <갓 오브 워>의 디렉터 코리 발록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임 영상을 RT하며 "이거 멋지다"라고 했다. 바로 그 시점에 <블랙 미스: 오공>은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사이트에는 "<오공>은 차세대 콘솔은 물론 클라우드 서비스도 고려 중이다" 같은 로드맵은 물론 "출시까지 500년이 걸리지는 않을 것"과 같은 너스레도 들어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게임 스크린샷과 함께 "예법을 잃으면 재야에서 구한다"(한서), "성인이 죽지 않으면 도둑들도 멈추지 않는다"(장자)와 같은 중국 고전 문구가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전을 제대로 알고 서유기를 게임으로 만듭니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서유기는 삼국지, 수호지와 함께 중국 사대 기서로 중국 고전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언젠가 어느 중국인과 코에이 <삼국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내게 빙그레 웃어 보이면서 "그거 우리 거죠"라고 했다. 코에이는 일본 회사고, 자기는 그저 중국인일 뿐인데 이야기가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자기들 것이라는 거다. 아마 적지 않은 중국인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로 중국인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 서유기일 것이다. 요술을 싫어하는 중국 공산당 당국도 서유기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다.

 


 

# 중국의 개발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

 

<블랙 미스: 오공>을 보니 중국이 모바일 시장에 이어서 콘솔 시장을 재패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텐센트는 AAA급 게임 개발을 목표로 하는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데, 최근 들어 그 프로젝트의 진척상황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텐센트 라이트스피드&퀀텀 스튜디오는 3D 오픈월드 FPS <SYN>.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기초한 게임이다.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 중이며 출시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넷이즈는 지난 6월, 일본 도쿄 시부야에 콘솔 게임 개발사인 ‘오우카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실력 있는 일본 개발자들과 협업해 차세대 콘솔에 맞춘 가정용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이 회사의 목표. 이미 넷이즈는 캐나다 몬트리올 스튜디오에서 '차세대 비디오 게임 관련' 비공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중국의 AAA급 게임 개발력은 천재적인 1인의 스킬 발휘나 '대륙의 실수'로 평가 절하할 수준이 아니다. 2015년, 중국의 콘솔 게임 금지령이 완전 철폐된 이래 국내외 사업자가 중국에서 콘솔 게임을 자유롭게 만들고 유통할 수 있게 됐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 전까지 (자유무역구역 밖에서는) 콘솔 게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나라다. 상전벽해까지 5년도 걸리지 않았다.

 

'기술 오타쿠가 세상을 바꾼다'를 모토 삼은 미호요의 오픈월드 게임 <원신>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인디 개발사 얼티제로의 ARPG <로스트 소울 어사이드>는 소니의 인큐베이팅 지원 속에서 개발 중이며, 이미 스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는 <브라이트 메모리>는 새 엑스박스의 론칭 타이틀로 발매된다.​ 유비소프트와 에픽게임즈는 중국에 기술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고품질 게임을 만들 개발자를 양성 중이다. 

 

<블랙 미스: 오공>은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대륙의 실수로 넘겨짚기에도 곤란하다. 언급한 게임들이 기대한 대로 출시된다면 중국은 앞으로 차세대 AAA급 게임의 중심지가 되지 않을까? 

 

PC, PS4, 모바일에 출시되는 미호요 <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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