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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기자수첩] 어렵더라도, 싸움 아닌 대화를 하고 싶다

톤톤 (방승언 기자) | 2020-11-30 09: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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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누구든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 정치적으로 어느 한 쪽의 ‘편’ 되어버립니다.”

 

한 네티즌이 유비소프트 신작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속 ‘장애인 혐오 표현’을 비판하고 나섰다. 지적된 표현은 ‘disfigured’다. ‘망가진’, ‘손상된’ 등으로 번역 가능한 말이다. 화상 입은 적 NPC의 얼굴을 설명하는데 이 단어가 사용됐다. 유비소프트는 6시간 만에 사과의 뜻을 밝히고 ‘표현 삭제’를 약속했다.

 

지적대로 ‘장애인 혐오’ 표현일까? 아니면 맥락상 큰 문제 없는 표현일까? 어느 한쪽으로 정의할 수 있기는 할까?

 

 

해답을 바라며 전문가에게 문의 메일을 보냈다. 영어 원어민인 A교수는 모 대학에서 십수년째 통·번역학과 학생들에게 실무 레벨의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해왔다.

 

그는 ‘안 그래도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를 플레이하려던 참’이라며 답신을 보내왔다. 그 안에 적힌 것은 기자의 기대와는 조금 다르게, 전문가가 아닌 ‘한 사람’의 의견이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 문제의 내막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이렇다.

 

11월 10일, 유비소프트 신작 <어쌔신크리드: 발할라>에 장애인 차별적 단어가 사용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비판한 사람은 게임의 ‘접근성’(accessibility)을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게임 사이트 ‘캔 아이 플레이 댓?’(Can I Play That?) 운영자 코트니 크레이븐이다. 크레이븐은 트위터에 인게임 스크린샷과 함께 이렇게 적었다.

 

“다음 스크린샷은 인게임 캐릭터에 관한 설명이다. 사람 얼굴에 드러난 차이점(장애)을 이런 말로 묘사하는 일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It's absolutely unacceptable to talk about facial differences this way). 게임업계 및 기타 분야 작가들은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어렸을 때 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은 에오포르빈은 자신의 손상된(disfigured) 얼굴을 누군가 볼까봐 두려워한다. 그는 폭력의 발산으로 자기 분노를 해소한다.

 

문제가 된 단어는 ‘disfigure’의 피동형인 ‘disfigured’다. ‘disfigure‘는 ‘깊고 영구적인 상처를 입혀 대상의 미관을 손상시키다’라고 정의된다(출처: 메리엄-웹스터). 따라서 해당 맥락에서 ‘disfigured’는 ‘망가진’ 혹은 ‘손상된’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주장대로 ‘써서는 안 될’ 단어인 걸까? 최소한의 확인을 위해 영어 신문들을 먼저 훑었다. ‘disfigured’란 단어가 비슷하게 쓰인 사례는 적지 않았다. 주로 영연방 국가 신문이었고, 북미권 기사에서는 비교적 적게 쓰인다는 사실 정도가 눈에 들어올 뿐, 단어의 ‘적합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 "의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 말부터 해야겠네요. 일단 저는 그렇게 훌륭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이건 아주 정치적인 질문입니다. 서양권 사회갈등의 핵심에 닿아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보통 사람의 개인적 의견일 뿐, 전문가로서의 견해는 아닙니다. 백만 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 모든 의견이 전부 똑같이 유효합니다.”

 

서두가 무거웠다. 단순한 겸양은 아닌 듯했다.

 

“안타깝게도 그 누구든 이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어느 한 쪽의 정치적 ‘편’에 속하게 됩니다. 나의 경우 스스로 ‘상식의 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또한 제 의견일 뿐입니다. 어쨌든 ‘disfigured’는 아무런 문제 없는 단어이며 ‘장애인 차별적’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가 내놓은 ‘정답’은 아니다. 보통 사람의 견해다. 딱 부러지는 정답을 은연중 바랐던 기자의 기대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언어는 합의의 도구이자 합의의 결과물이다. 많은 경우 언어에는 불변의 정답이 없다. ‘옳다’와 ‘그르다’를 잘라 말하기 힘들다.

 

가치중립적이었던 단어가 갑자기 혐오표현이 되어버린 사례는 많다. 거꾸로 비속어가 일상에서 허용되기도 한다. 종종 ‘정답’으로 취급되는 표준어 규정도 대중이 동의하지 않으면 바뀐다.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규정 개정 주기는 3개월이다.

 

교수는 덧붙였다. “기사에서 제가 전문가라고 언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견은 누구든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말고도 더 많은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 싸움이 아닌 대화를 하고 싶다

 

특정 단어의 '옳고 그름'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인 견해차를 알아보기 위해 시작된 취재였지만 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교수는 ‘백만 명의 의견이 모두 유효하다’고 했고, 크레이븐은 ‘이런 표현은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용납할 수 없음’은 누가 정한 걸까? 크레이븐은 화상 피해자가 아니며,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다. 당사자 의견은 무시하고 사회약자 배려라는 미명하에 언어를 통제했을 때 결과가 썩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장애우·장애인 사례에서 확인했다.

 

‘장애우’는 1989년 장애인을 친근하게 부르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어다. 정작 장애 당사자들은 ‘철저히 비장애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여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은 이 단어가 장애인을 ‘친구처럼 친절히 다가가 도와줘야 하는’ 대상자로 전락시킨다며 사용에 부정적 의사를 밝혀왔다.

 

혹시 단어가 당사자 이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일까? 언어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은 있다. 1950년대 벤자민 리 워프가 주장한 사피어-워프 가설이 대표적인데, 1960년대부터 노엄 촘스키를 위시한 다른 언어학자들에 의해 반박됐다. 촘스키는 문화 차이로 인해 언어 차이가 나타날 뿐, 언어의 차이가 사고를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후로 연구가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결론 나지 않은 영역이다.

 

 

사실 A교수는 이번 문제에 관해 어느 한쪽 ‘편’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반대쪽의 공격을 살만한 의견을 내놨다.

 

“저는 ‘disfigured’가 ‘장애인 차별적’이라는 주장이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PC가 발언의 자유를 공격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비소프트가 무엇 하나라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백만 개 중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일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말’으로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자유다. 기자의 경우 교수와 크레이븐 모두에게 일부 찬성하고 상당부분 반대한다. 다만 둘 중 하나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면 교수와 대담하고 싶다. 그에게 더 많이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감한 주제를 두고 '싸움'이 아닌 '대화'를 해볼 기회가 요즘은 많지 않다.

 

유비소프트는 대화를 건너뛰고 크레이븐의 의견을 전격 수용했다. 토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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