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하루아침에 미쳐날뛰는 램(RAM) 가격, 이게 정상인가?

체리폭탄 (박성현) | 2020-12-04 18: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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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 메뉴에는 ‘싯가’라고 쓰여 있는 귀한 몸들이 존재한다. 

 

시기에 따라 물량과 수요가 큰 변동을 보여 정해진 가격이 없다는 소리다. 킹크랩, 방어, 돌돔처럼 미식가에게 사랑받는 어종은 높은 확률로 시가에 판매되곤 한다.

 


 

‘시가로 판매 = 고급 어종’이라는 논리가 100% 정확하진 않다. 그러나 이 논리에 따르면 컴퓨터 부품, 그중에서도 램(RAM)은 당장 횟집에서 판매를 시작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유통기한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계절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지는지 알 수 없다. 규모에 상관없이 사고와 악재가 생길 때마다 가격이 크게 요동치니 말이다.

 

지난 1년간 램 가격은 제자리를 천천히 잡아가고 있었다. 2020년 상반기는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불안정, PC와 서버 수요 증가로 가격이 상승했다. 허나 하반기 들어 DDR5 램 개발, 화웨이의 램 구매 중단 소식 등으로 가격은 빠르게 하락했다.

 

12월 3일 삼성전자 DDR4-3200MHz 16GB는 6만 2,900원, 삼성전자 DDR4-2666MHz 8GB는 3만 4,800원에 판매됐다. 

 

12월 4일 오후 4시 다나와에서 촬영한 DDR4 16GB 램 가격

 

 

가격은 단 하루 만에 폭등했다. 12월 4일 3200MHz 16GB 모델은 7만 2,000원, 2666MHz 8GB는 4만 1,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상승폭으로 따지면 3200MHz 모델은 14%, 2666MHz 모델은 19% 증가했다. 

 

원인은 마이크론 메모리 공장 정전 때문이다. 12월 4일 대만에 위치한 마이크론 MTTW 공장에 1시간가량 정전이 발생했다. 해당 공장은 웨이퍼 투입 기준, 월 12만 5,000장 규모 D램을 생산한다. 전 세계 D램 생산량(월 141만 8,000장) 약 8.8%를 차지한다.

 

정전은 반도체 공장에 큰 피해를 끼친다. 정전이 발생하면 해당 공정의 모든 웨이퍼를 폐기한다. 방진 설비인 ‘클린룸’이 멈추는 동안 작은 먼지나 입자가 시설과 생산품에 오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설 재가동은 피해 규모에 따라 2~3일에서 1주일 정도 걸리기도 한다. 삼성전자도 2018년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30여 분간 정전이 발생해 약 500억 원 손실을 입은 바 있다.

 

하지만 1시간 정전이 ‘한 분기’에 악재로 작용할 정도는 아니다. 정전 당시 작업 중이던 웨이퍼는 모두 폐기해야겠지만, 그 물량이 해당 공장의 한 달 치 생산분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이번 사건으로 공장이 1주일 정도 공정을 중단하게 된다면, 생산량 1/4이 손해를 입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매달 전 세계 납품되는 D램 물량에서 많게 잡아도 추정 2.2% 정도 줄어든 셈이다.

 

 

 

해당 사건은 12월 4일 오전 국내 언론에도 기사화됐다. 보도 이후 국내 PC 램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익명 관계자에 따르면, 마이크론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램 공급도 하루아침에 대폭 줄어들었다. 몇몇 PC 부품 판매자는 “많은 도매상이 램 재고를 비축하기 위해 물량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소식을 퍼트리고 있다.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램 공급량이 소폭 감소했으니 악재는 확실하다. 가격에 타격을 줄 수 있을 소식은 맞다. 그러나 공장이 전소한 것도 아니고, 1주일분 생산량이 줄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삼성전자 램이 14~19% 폭등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마이크론이 램을 비축해두지 않았다면 가격 폭등이 발생할 수 있다. 많은 PC용 램 제작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게 주요 부품을 공급받아 램을 생산한다. 마이크론이 생산된 램을 전량 납품하고, 재고 비축 분은 없으며, 하필 납품 예정인 D램이 이번 사고로 폐기된다면 PC용 램 제작사는 한동안 램을 만들 수 없게 된다. 

 

즉 몇몇 종사자가 주장하는 바를 종합하면 현 상황은 다음과 같다. 

 

“D램 시장 3위인 마이크론에서 1시간 정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납품 예정인 메모리가 동떨어졌고, 공교롭게도 PC용 램 제조사도 여유 비축분이 없다. 그래서 시중에 풀린 마이크론제 램은 물론이고, 삼성전자 램까지 급하게 비축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전 세계 D램 납품량은 8.8%다. 전 세계 PC용 램 가격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 어렵다. 반면, 국내 PC 시장 DDR 램 상당수는 삼성전자 제품으로 이뤄졌다. 오래전 자료이기는 하나, 2012년 삼성전자가 메모리 제조사 95%를 차지했다. (출처: 다나와, [메모리] DDR3 가격, 바닥은 어디? <소비리포트2011>). 만약 이번 정전이 삼성전자에서 발생했다면 마이크론 제품도 폭등할 수 있으나, 그 반대가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여전히 찝찝하다. 정전이 발생하기 하루 전인 12월 3일은 수능이 치러졌다. 수능 이후 PC 판매량이 증가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램 가격이 폭등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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