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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칼럼] 대 트럭 시대, 분노와 유희 사이

우티 (김재석 기자) | 2021-01-28 11: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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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유저들은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연초부터 스타트 대시 이벤트 중단에 화난 한국 <페이트/그랜드 오더> 유저들은 넷마블 본사 앞에 해명을 요구하며 트럭을 보냈다. 25일, <프로야구 H2> 유저들은 특화훈련 미적용 오류에 항의, 사건의 전말과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며 엔씨소프트 본사에 트럭을 보냈다.

 

25일, 성난 <마비노기> 유저들은 4,696,500원을 모았다. 이들의 성명문에는 세공확률 공개, 백섭에 대한 해명 등이 명시됐다.​ <바람의나라: 연> 유저들이 금전 수급 문제, 사냥터 밸런스 문제 등을 지적하며 트럭을 보내기로 뜻을 모은 다음 일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대 트럭 시대다. 사건이 반복되면 현상이 된다. 지금의 트럭 시위는 현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들은 왜 돈을 모아서 트럭을 보내는 걸까?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 트럭 시위는 무엇인가?

 

우선 오늘날 트럭 시위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특정 게임에 이슈가 발생한다. 커뮤니티에 부정 의견이 모인다. 이에 '총대(모금 책임자)'가 트럭 시위를 제안한다. 모금이 이루어진다. 모금부터 트럭 섭외까지 전 과정이 커뮤니티에 중계된다.

 

마침내 유저들은 게임의 운영사 앞에 LED 전광판을 탑재한 트럭을 보낸다. 전광판에는 게임의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문구가 쓰여있다. 회사로 드나드는 사람들은 시위 모습을 보게 된다. 동시에 온라인에 사진이 널리 퍼진다. 취재 기자와 유튜버, 일부 유저들이 현장을 찾기도 한다.

 

1월 11일, 구로구 넷마블 본사 앞

트럭 시위의 시초를 구체적으로 언제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과거 게임과 전혀 상관 없는 구호를 외쳤던 대규모 집회 현장에서 LED 전광판 트럭은​ 무대를 비추는 용도로 동원됐다. 

 

이 트럭은 2020년 초 들어 아이돌 팬덤의 항의 표시 수단으로 여러 차례 등장했다. 작년 1월, 엑소의 팬들은 첸의 탈퇴를 촉구하는 트럭을 삼성동 SM 본사로 보낸 적 있다. 5월에는 블랙핑크 팬클럽 블링크가 컴백 날짜를 밝히라는 내용의 트럭을 YG로 보냈고, 9월에는 트와이스 팬들이 JYP로 뮤직비디오의 제작사 교체를 요구하는 트럭을 보냈다.

 

게임 유저들이 모금했던 것처럼 총대를 통한 모금 구조를 지녔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트럭을 보내는 것에 반대한다"는 팬덤 계층도 일부 존재했다. 가령 작년 7월, 몇몇 아미는 빅히트가 BTS 멤버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트럭을 보낸 바 있으나 "트럭을 보낼 일까지는 아니다"라는 신중론과 반대론이 있었던 정황이 확인된다.

 

JYP에 간 트럭. 출처: (트위터 'Respect TWICE 총공계')

이러한 모금 문화는 '조공'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응원하는 아이돌, 배우를 위해 촬영 현장에 밥차를 보내거나 지하철 역에 생일 축하 광고를 거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다. 몇몇 게임의 유저들도 지하철 생일 광고를 하는데, 2019년 7월에는 2호선 삼성역에 <러브앤프로듀서> 등장인물 백기의 생일 광고가 걸린 적 있다.

 

좋은 일, 축하할 일에는 '조공'을 했다면, 부정적인 일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모아서 '트럭'의 시동을 걸었던 것이다.

 

회사 앞에 LED 전광판 트럭을 보내는 문화가 게임으로 번져온 것은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볼 수 있다. LCK T1 팬들은 김정수 감독 해임 때부터 팀의 운영에 의문부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치에 경험이 많지 않은 LS를 앉힌다는 소문이 돌자 팬들은 항의에 나섰다. T1 팬들은 강남 사옥에 근조 화환을 보내는 한편, 코치진 인선에 항의를 표하는 트럭을 LCK 아레나와 강남역 등 서울 곳곳에 보냈다.

 

T1 팬들은 과거에도 서울 명동과 홍대입구역에 페이커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게시한 적 있다. 페이커라는 입지전적인 스타의 존재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T1 팬들에겐 조공 문화는 어색하지 않았다. 실제로 LCK에서 T1은 그럴 만한 네임 벨류가 있는 팀이다. T1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아이돌 팬덤과 비슷하게 조공의 에너지를 항의의 트럭으로 바꿨다. T1은 이후 논란에 사과했다.

 

T1 트럭 시위. (출처: 디씨인사이드 T1 마이너 갤러리)

# 분노와 유희 사이, 트럭 시위의 효능감

 

이후 알려진 것과 같이 트럭은 넷마블로, 엔씨소프트로, 넥슨으로 갔다. 물론 이전에도 게임 유저의 항의 행동은 있었다. MMORPG의 경우 특정 시간에 게임 내 광장에 모여 시위를 하는 일이 있었고, 몇몇 유저들이 직접 회사 앞에 집회를 연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달 사이에 국내에서 가장 큰 게임사 세 곳에서 시위가 전개된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 회사에 트럭이 이렇게 자주 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트럭 시위가 그간 게임을 플레이하던 유저들에게 전에 없던 효능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를 두루 살펴보면 <페이트/그랜드 오더>, <프로야구 H2>, <바람의나라: 연> 등의 게임을 즐겨오던 유저들은 이미 먼 과거부터 자신의 불만을 온라인에 남겨왔다. 항의 표시 차원에서 보면, 유저들은 그저 약간의 투자로 불만의 표출장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장했을 뿐이다.

 

<라그나로크 오리진> 유저들도 트럭을 보낼 예정이다. (출처: 네이버 <라그나로크 오리진> 카페)

트럭 시위는 계정을 갈아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면서,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고, '가챠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항의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요컨대 유저들은 게시판에서 '드러눕는' 것보다 일어나서 돈을 모아 트럭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본사 앞 트럭 시위에는 '높으신 분' 눈에 유저의 요구사항과 구호가 확실하게 전시되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여러 종류의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회사원 전체가 특정 게임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이다.

 

A 회사의 <ㄱ> 게임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것은 <ㄱ>의 일처럼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ㄴ>, <ㄷ>, <ㄹ> 게임의 운영진도 <ㄱ> 게임에 일어난 문제를 -적어도 유저들이 화나서 수백만 원을 결제하고 트럭을 보내는 수고를 감내했다는 것을- 보게 됐다. (물론 현재 코로나19로 대기업들은 순환/재택근무 중이다. 많은 직원이 사진만 봤을 공산이 크다)

 

트럭 시위가 유희의 성격이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유저 개인은 '가챠 몇 번 돌릴 돈'을 보낸 뒤, 자신의 소비가 널리 퍼짐과 동시에 반향을 이끄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고혈을 쥐어짜던 게임사는 이걸로 한 방 크게 먹었다. 블라인드를 통해 진짜로 "할 일 없는 놈들" 운운한 직원도, 합성을 통해 악의적으로 직원 의견을 왜곡한 자료도 퍼졌다.

 

"할 일 없는 놈들 아닙니다" (출처: 디씨인사이드 프로야구 H2 갤러리)

 

 

# 점점 무너지는 게임사와 유저의 신뢰 관계

 

정상원 전 넥슨 개발 총괄은 박윤진 <내언니전지현과 나> 감독의 대담에서 예전엔 개발자와 유저 사이가 좋았다고 추억했다. 비난하는 유저보다 고마워하는 유저가 많았고, 개발자는 돈보다는 게임 만드는 재미에 의미를 뒀다. 유저들은 개발자의 사정과 수고를 이해하고 더러 밥을 사주거나 회사에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대담] 다시 '일랜시아': 20년 전 온라인게임이 꿈꾸던 자유와 소통 (바로가기)


아이돌 소속사로 트럭을 보내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팬덤은 있지만, 게임사로 트럭을 보내는 것이 걱정스럽다는 유저는 극히 드물다. 커뮤니티를 오랜 시간 관찰했지만, 그런 반응은 거의 없었다.

 

시점을 길게 잡고 여러 사이트를 둘러봐도 게임을 칭찬하거나, 개발자에게 힘내라며 응원을 보내는 게시글은 없거나 적었다. 트럭 시위가 유저 전체의 의사를 오롯이 대변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겠으나, 유저와 게임사의 신뢰 관계는 적잖이 훼손됐다는 점도 명확히 드러난다. 미들이 미우나 고우나 빅히트를 ​아끼듯이 유저들은 게임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트럭을 보낸 뒤 게임사들은 사과와 보상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것은 대체로 언제나의 사과로 이해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게임 내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한 보상을 유저들은 '사료'라며 자조하고 있다. 당장의 안정은 단기적인 효과가 좋지만, 훗날 유사한 문제가 또 발생했을 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트럭 시위의 대상이 된 게임이 오랜 기간 서비스를 유지 중인 게임이라는 점에서, 이 시위는 반복되는 문제를 더 많은 '사료'로 무마하려는 대처에 대한 피로감의 호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못 믿겠다!" (디씨인사이드 <바람의나라: 연> 갤러리)

 

# 현상이 되었다면, 어떻게 볼 것인가?

 

지극히 당연하게도 '사료'는 게임사의 언어가 아니다. 회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저와의 '소통'을 지상과제로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P2W이 깊이 정착된 오늘날, 소통의 가치는 구현하기 어렵다. 디렉터나 PD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와 몇 시간 동안 유저들의 질문에 응답해도 유저들은 소통을 갈구한다. 책임자는 빛이고, 어둠이었다가, 종신의 대상이 되고, 또 강판의 대상이 된다.

 

이 모든 소통의 순간에도 게임은 장사를 하고 있고, 유저들은 물건을 구매하고 있으며, 사건사고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재화의 가치는 떨어지고, 새로운 제품은 카드팩 안에서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회사는 유저들 별로 안 중요한데요?"라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게임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오늘날 게임사에게 주어진 소통은 무겁고,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다. 게임사에겐 정리되지 않은 창구가 너무 많아서 문제고, 유저들은 매크로 답변만 내놓는 고객센터에 신물이 났다.​ 회사는 직원 개인이 블라인드나 SNS에 입장을 피력하는 것을 차단할 수도 없을 노릇이다.

 

2019년 7월, 스마일게이트와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에픽세븐>에 빚어진 여러 문제에 응답하는 간담회에 열었다. 이날 현장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장장 8시간 동안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찾는 손님이 있어야 게임이 있다. '매시브'한 접속 조건이 중요한 MMORPG를 핵심 성장 엔진 삼아온 한국 게임사들은 이 '손님' 모시기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알고 있다. 이들은 언제나 소통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자신들이 어렵게 설계한 비즈니스 모델의 대가를 치르듯이.

 

그러나 온전할 소통이란 아예 성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게임사가 말하는 소통은 사전에서 정의한 대로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분출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매니징하는 '의무 방어'의 형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료'로 불리는 소통이 잠깐의 환희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자각한 유저들은 이제 회사 앞으로 트럭을 보낸다.

 

 

# 참참못이 풍경이 된다면...

 

게임사가 오랜 세월 운영의 묘를 발휘했던 것처럼, 유저들도 게임사와 오랜 세월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몇몇 유저들은 '참참못'(참다 참다 못해)을 외치며 직접 행동을 조직했다. '소통'의 입장에서 이 트럭 시위는 완전히 새로운 부담 거리다. 게임사와 유저 사이의 긴장 관계는 변하지 않았고, 비즈니스 모델도 그대로인데, 유저들에겐 유력한 (그리고 재밌는) 항의 표출 방법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서두에 사건이 반복되면 현상이 된다고 썼다. 현상이 똑같이 반복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곧 풍경이 될 것이다. 최규석의 만화 <송곳> 6권. 사측의 해고에 항의하던 노동자들은 여러 방법으로 싸우던 끝에 결국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펼치기로 한다. 처음엔 온 세상이 이들의 투쟁을 주목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천막은 위화감을 잃고 풍경이 되었다.'

 

유저들에게 주어진 문제 해결 수단이 트럭 시위로 수렴되는, 그래서 게임사 앞에 트럭이 풍경처럼 자리 잡는 미래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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