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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기자수첩] '스듀' 제작자의 '내로남불'?… 표절과 모방, 그리고 생태계

톤톤 (방승언 기자) | 2021-05-14 09: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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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 게임 <스타듀밸리>의 표절 의혹을 받은 <슈퍼 주 스토리>의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스타듀밸리> 개발자 에릭 바론이 불쾌감을 드러냈고, <슈퍼 주 스토리> 개발자들이 비판을 수용하면서 '사건'은 우선 일단락됐습니다.

 

관련 기사: 원작자도 “너무 심해”… ‘스듀’ 표절 인디게임 논란

 

그런데, 에릭 바론의 태도를 두고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스타듀밸리>가 좋은 게임 이기는 하나 ‘독창성’를 내세울 자격은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주로 <스타듀밸리>와 <목장 이야기>(영미권 제목은 <하베스트 문>) 시리즈의 유사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두 게임의 관계가 어떻기에 이런 반응이 나올까요? 에릭 바론은 정말 ‘내로남불’하는 것일까요? ‘<슈퍼 주 스토리> 사건’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 <스타듀밸리>와 <목장 이야기>의 관계

 

<스타듀밸리>가 <목장 이야기>에서 출발한 게임이라는 사실은 절대 비밀이 아닙니다. 바론은 워싱턴 대학교 타코마 캠퍼스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2011년 졸업했지만, 업계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2012년부터 극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코딩 숙련 프로젝트로 <목장 이야기>의 팬 메이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1999년 출시된 <목장 이야기 하베스트 문> 이후 시리즈가 퇴보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시리즈에 가져온 불만이 전부 해결된 하나의 게임을 만들어 보는 것이 개발 의도였다고 합니다.

 

바론은 <목장 이야기>뿐만 아니라 <목장 이야기>에 RPG를 가미한 작품 <룬 팩토리>, 그리고 <동물의 숲>, <마인크래프트>, <테라리아> 등 기타 유명 샌드박스형 게임들의 여러 장점을 모아 게임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이렇게 2016년 세상에 나온 것이 <스타듀밸리>입니다.

 

<목장 이야기 다시 만난 미네랄 타운의 친구들>

 

# 에릭 바론은 정확히 '무엇'에 기분이 나빴을까?

 

탄생 비화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스타듀밸리>와 <목장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점에서 비슷합니다. 농사, 목축, 어드벤처, 연애가 복합된 독특한 게임성뿐만 아니라, 아트 스타일에서도 유사성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말, 잔디 같은 일부 스프라이트(sprite·2차원 비트맵 개체)는 나란히 두고 봐도 꽤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SNES 시절 <목장 이야기>의 말(왼쪽)과 <스타듀밸리>의 말

 

적어도 에릭 바론이 자기 게임의 ‘기원’을 잊지 않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워낙 많은 인터뷰에서 밝혀온 내용이기도 하고요. 이번에 <슈퍼 주 스토리> 문제를 제보해준 팬에게 답변할때도 에릭 바론은 이 점을 분명히 짚습니다. “그동안 내 게임에 영감을 받아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내 게임도 <하베스트 문>(<목장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유독 <슈퍼 주 스토리>의 사례에서는 불편함을 느낀 것일까요? 바론은 게임 아트와 BGM까지 모두 손수 만든 1인 개발자로 잘 알려져 있죠(현재는 직원을 꽤 구했습니다). 아마도 바론은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목장 이야기>와 구분되는 <스타듀밸리>만의 창작 요소들을 침해당했다고 여긴 듯합니다.

 

실제로 <스타듀밸리>에는 <목장 이야기>에는 없던 새로운 아트 스타일도 꽤 많이 보입니다. 건물 디자인, UI, 캐릭터 초상화 등이 대표적입니다. 주관적 견해일 수 있겠으나, 해당 부분에서 <슈퍼 주 스토리>는 <스타듀밸리>와 비슷한 점이 꽤 많이 느껴집니다.


<슈퍼 주 스토리>의 시계 UI(왼쪽)와 <스타듀밸리>의 UI

 

 

# <슈퍼 주 스토리> 사건, 어떻게 보면 좋을까?

 

그렇다고 <슈퍼 주 스토리> 제작자들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확신하기도 힘듭니다. 이번 논란이 있기 전부터 이들은 <스타듀밸리>에 강한 영향을 받았노라고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고의적 표절로 부당이익을 챙기려는 사례라면, 원작과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쪽이 더욱더 일반적이죠. “<귀멸의 칼날>과 아무 상관 없다”던 <귀살의 검>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슈퍼 주 스토리>는 그저 모방의 수위를 잘 조절하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논란은 ‘모방행위’ 자체가 아닌, 그 허용치에 대한 양측의 기준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슈퍼 주 스토리> 제작자의 트윗. "<스타듀밸리>의 물이 마음에 들어서 비슷하게 만들어 봤다"고 말하고 있다.

 

 

# 표절은 막지만, 모방은 허용하는 이유

 

표절과 모방을 깔끔하게 구분하기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원본 일부를 아예 ‘복사’하고 출처를 숨기는 등 명백한 저작권 위반행위가 있지 않은 한, 법의 개입을 통해서도 판정이 영 어려울 수 있고요.

 

그런데도 우리가 어려운 표절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표절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여 창작 의지를 꺾는 중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생산자들의 활발한 참여가 없으면 산업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일반 소비자에게도 절대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저작권법도 비슷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은 제1조에서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합니다.

 

이처럼, 표절 방지의 큰 목적 중 하나는 ‘창작 생태계 유지’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건전한 모방’에 대한 허용과 지지도 똑같이 중요해집니다. 모방 없는 순수한 창작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모방이 전면 금지됐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명작 게임들을 우리는 수백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나 법정 공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슈퍼 주 스토리> 사태는 나름의 상생으로 결론 난 듯합니다. 각자 지적할 말이야 많았겠지만, 창작자 공통의 지난한 생리를 떠올리고 ‘동류의식’으로 서로를 양해한 것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두 게임이 모쪼록 각자의 방식대로 큰 사랑을 받게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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