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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와! 완전히 카드 게임을 뒤집어 놓으셨다

우티 (김재석 기자) | 2021-10-27 15: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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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크립션>(Inscryption)​이 뜨거운 화제입니다. 

PC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 마니아라면 그 이름을 알 법한 대니얼 뮬린스(Daniel Mullins)의 복귀작인데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대니얼 뮬린스 게임즈' 에서 <포니 아일랜드>, <더 헥스> 등 독창적인 카드 트레이딩 게임을 만들어왔습니다. 대니얼 뮬린스는 그간 한국어로 번역된 게임이 적은 탓에 잘 소개되지 않던 개발자이지만, 해외에서는 제법 유명합니다. 자기 이름 걸고 장사할 정도로 말이죠.

10월 19일 출시된 <인스크립션>은 26일 기준 메타스코어 84점, 스팀 평가 '압도적으로 긍정적'을 받으며 예상을 뛰어넘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유통사 디볼버 디지털이 한국어 번역까지 완료한 덕에 한국 게이머들이 어려움 없이 만나볼 수 있게 됐는데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음과 동시에 여러 TCG를 향한 오마주를 선보였습니다.

기자가 체험한 <인스크립션>은 뜨거운 반응을 얻을 자격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단돈 2만 원에 한국어로 즐거운 TCG를 경험했습니다. 덱빌딩 로그라이트는 물론 다양한 즐길 거리가 들어있습니다. 환불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제 덱에서 카드부터 뽑겠습니다.


 



# 카드 배틀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초반부

 

게임의 정체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인스크립션>을 설명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 겁니다. <인스크립션>은 3개의 액트(Act)​로 구성된 게임으로 각각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큰 틀에서는 TCG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좋은 카드를 모으고, 또 키워서 덱을 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 보스를 깨면 됩니다.

액트1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처럼 무작위로 생성되는 지도 위에서 진행 경로를 선택해 카드 배틀을 펼치게 되며, 플레이어가 죽으면 덱을 모두 날리고 새로 게임을 시작해야 합니다. 던전 크롤링에 전략 카드 배틀을 가미한 게임으로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성공으로 대중화가 이루어진 장르입니다. 여기까지는 스팀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한 카드 배틀입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생각나는 루트. 재시작 때 재생성됩니다

그런데 <인스크립션>은 여기에 몇 가지 변칙을 주었습니다. 정체불명의 오두막에 감금되어 '마스터'와 보드 위에서 겨룬다는 설정인데, 굉장한 긴장감과 공포가 조성됩니다. 마스터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플레이어에게 TRPG를 즐기는 감각을 주는 한편, 플레이어를 꺾을 때마다 영화 <곡성>의 쿠니무라 준처럼 플레이어의 사진을 찍어 카드로 만들어버립니다. (촬영과 카드 제작은 <인스크립션>의 키워드와 같습니다)

동종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점프 스퀘어 요소가 적지 않게 들어있으며, 감금된 오두막에서 퍼즐을 풀어 게임에 도움이 되는 카드를 얻는 등의 방탈출 요소가 가미됐습니다. 상자를 열거나 시계를 맞추는 방식으로 비슷한 난이도의 퍼즐이 액트1 이후로도 포진되어 있습니다. 액트1은 뒤이어 펼쳐지는 <인스크립션>의 예고편이면서, 동시에 그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죽을 때 연출은 굉장히 괴기스럽습니다.

총 4라운드로 구성된 액트1은 보스를 깨뜨려 오두막에서 나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주는데요. 카드 배틀의 규칙 설계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희생 카드를 코스트(피 혹은 뼈)로 제출해 강력한 카드를 뽑아 상대방의 저울을 무너뜨리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특수 능력을 보유한 카드는 물론 이빨이나 눈알을 뽑아 저울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자해공갈(...) 기능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탐험 중 가죽을 얻고, 상인에게 그것을 팔아 상위 카드를 획득한다는 요소까지 있어 고민의 수(數)가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게임에 통달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싱글플레이 게임이라는 한계 때문에 파훼 방법이 발견되면, 페이즈는 싱거워집니다. 멀티플레이 TCG에서 대미지 계산이 망가져서 영혼이 나가는 경험을 하신 적 있으신가요? 대단한 고통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데요. 싱글플레이라면 '본좌' 메타를 찾아 뚫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여러분이 고수라면 '이번엔 사기 카드를 안 쓴다'와 같은 자발적 메타 플레이로 난이도를 끌어올릴 수 있겠죠. 그렇지만, 사기 카드의 존재는 게임은 못 하는데 뒷이야기는 궁금한 기자 같은 하수 플레이어를 위한 배려로 기능했습니다. <셀레스트>의 어시스트 모드와 같다고 할까요?

플레이가 개입되지 않는, 죽음과 부활 과정에서도 괴기스러움과 환상적인 이미지가 넘쳐나는 덕분에 <인스크립션>의 액트1은 덱빌딩 로그라이트 중 가장 강력한 초반부입니다. 게임의 엔딩을 본 플레이어 중 액트1를 그리워하는 유저가 적지 않은데요. 기자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주의: 해당 지점의 아래부터 <인스크립션>의 스포일러가 등장합니다. 


 

# 메타 게임의 새로운 진경

 

진짜 스포 할 겁니다
안 하고는 게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액트1 완료의 환희가 미처 가시기도 전에 <인스크립션>은 진짜 패를 공개합니다. 이 진짜 패는 그간 기자가 TCG에서는 만나본 적 없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개발자의 전작은 끝까지 못해봤거든요) 진부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미끼를 확 물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액트2부터 게임이 완전히 뒤집혀 버립니다.


알고 보니 액트1까지의 <인스크립션>은 마스터가 조작한 가짜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사실 게임 밖에서 카드 게임을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유튜버였습니다. <인스크립션>은 플로피 디스켓에 담겨진 미공개 고전 게임이었고요. 마스터는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고전 TCG '인스크립션' 본판에 등장하는 ​필경자 중 하나였습니다. 요즘은 아무도 안 쓰는 디스켓 안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가상현실게임(ARG) 요소가 가미됩니다.​ TCG 전문 유튜버 럭키 카더가 실물 카드팩을 오픈하다가 좌표를 발견하고, 그곳을 찾아가 발굴을 해봤더니 플로피 디스켓을 발견했고, 게임을 실행했더니 그것이 바로 '인스크립션'이었더라는 것입니다. 대니얼 뮬린스의 전작 <포니 아일랜드>에서 시도한 바 있는 메타픽션입니다. 아쉽게도 한국에는 아까 말씀드렸던 문제로 널리 소개되지 못했죠.

갑자기 이런 화면이 등장하는데요
게임의 장르가 변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액트2는 네 곳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각자 다른 카드 게임의 룰을 만들었다는 필경자를 격파하는 '도장 깨기' 게임이 되어버립니다. 메타픽션 비디오를 감상한 뒤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지나가고 등장하는 탑뷰 월드맵을 목격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집니다. 로그라이트, TRPG 요소가 <포켓몬 TCG> 풍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인스크립션>의 장르 바꾸기는 굉장히 놀라운데요. TCG의 룰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성격의 게임을 즐기게 만드는 한편, 새로운 서사마저 열리는 셈입니다. '영원한 죽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액트1보다 게임은 쉬워집니다. 아울러 이전 액트를 통해 학습한 게임의 기본 룰(희생 카드, 각종 특수 능력 등)이 계승되면서 간단한 특징들만 추가되기 때문에 클리어에 들이는 시간이 예상보다 짧아집니다.

액트1의 서스펜스가 이후에도 괴기·공포 요소로 이어지기는 합니다만, 플레이어의 게임 이해도는 성장했고, 게임은 쉬워졌기 때문에 긴장감도 줄어듭니다. ​<인스크립션>의 저울이 로그라이트에서 메타픽션 쪽으로 기우는 것이죠. 퍼즐 요소와 숨겨진 지역도 남아있지만, 플레이어로 하여금 "내가 생각한 것은 이게 아닌데"라는 불쾌감을 안겨주기 충분합니다.

 


 
# <인스크립션>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나?

 

이 불쾌감은 철저히 '의도된 것입니다.'

 완전히 달라진 <인스크립션>이 실망스러워도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수는 둘 중 하나입니다. 게임을 끝까지 하거나, 플레이를 멈추거나. 스팀 규정상 환불 기한인 2시간이 액트1 공략 과정에서 지나버렸기 때문에, 지불한 돈을 돌려받을 방법은 없죠. ​대니얼 뮬린스는 이를 알고 있다는 듯한 기획을 보여줍니다.

<인스크립션>은 액트3에 들어서부터 노골적으로 플레이어를 도발합니다. 플레이어는 랜덤 생성되지 않는 맵을 돌아다니면서 4개의 보스 '우버봇'과 겨루게 되는데 보스 몬스터들은 하드디스크에 접근해서 게임에 지면 소중한 폴더를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하거나, 등록된 스팀 친구들을 카드로 만들어 게임 속에 등장시킵니다. 

정말 이쯤 되면 끝이 어디인가 궁금해집니다

여기서 <인스크립션>은 또다시 변화를 보여주는데, 바로 액트3는 커스터마이징 게임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액트에서나 배틀을 하고, 방탈출 퍼즐을 풀고, 보스를 잡아야 하지만, 액트3에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룰을 만들거나, 하드디스크에 있는 폴더 용량을 끌어와 대미지를 입히는 식으로 ​게임을 진행합니다.

가상 공간 '봇토피아'를 탐험하며 턴이 지날수록 충전되는 배터리를 소모해 로봇을 뽑아 배틀한다는 액트3는 코인과 상점의 존재로 다른 액트보다 RPG 형태를 더 강하게 띄고 있습니다. 죽음의 방식 역시 액트2와 다른데, 덱을 잃지 않는 것은 똑같지만, 모은 코인을 전부 죽은 자리에 두고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갑니다.

기자의 하드에 있는 <GTA5> 실행파일을 걸고 게임을 합니다. 세이브-로드 신공을 통해 체크한 결과 게임에서 지면 파일이 휴지통으로 들어갑니다.

그 와중에 2D에서 3D로 돌아왔고, 플레이어는 똑같이 방탈출을 하는데 액트1과는 생김새도 플레이도 달라집니다. 트릭의 트릭까지 다다르니 자연스럽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궁금해집니다.​ 메타픽션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놓인 보드 바깥에서도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말이죠.

액트3의 월드를 돌아다니면, 계속 언급 중인 <곡성>이 떠오릅니다. ​관객들을 가지고 논다는 평가를 받았던 영화입니다.​



 

# TCG에 보내는 헌사... 수수께끼는 현재 진행 중!

 

3개의 액트를 가진 <인스크립션>의 기획과 설정은 정밀하게 맞물립니다. 4개의 보스, 각기 다른 콘셉트, 메타픽션의 요소까지 크게 어긋남이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필경자들과 카드 배틀이나 체스, <유희왕>을 오마주한 듀얼을 펼치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구간입니다.

바로 여기서 <인스크립션>은​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데요. 게임은 그간 게이머들을 기쁘게 했던 여러 'TCG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스크립션>에는 헌사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트랩 카드와 수수께끼가 도처에 놓여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니> 이후 오랜만에 맛보는 피날레의 희열이었습니다.

액트3에서 4명의 보스를 무찌르면 '위대한 초월'이 등장합니다. <인스크립션>의 위대한 초월은 바로 게임의 완성입니다. 4명의 보스를 깨면서 플레이어는 하드 디스크 접근 권한을 주고, 스팀 스크린샷을 찍고, 인터넷에 연결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인스크립션'을 판매하겠다는 것이, 플레이어에게 처음 말을 거는 카드가 이 미로를 설계한 진짜 의도였습니다.

P03의 '카드 보완 계획'은 저지됐지만, 럭키 카더를 통해서 본 ​ARG 암호 해독은 기자를 퇴고하는 이 순간까지도 진행 중입니다. 그 영역은 기자의 필설로 옮기기 어려운 수준이므로, 여기서 턴을 마치겠습니다.

ARG의 중요한 단서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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