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흑백의 세계, 당신은 무엇을 찾을 것인가? 사무라이 액션 '트렉 투 요미'

우티 (김재석) | 2022-05-06 1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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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와 닌자라는 단어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일부 역사 왜곡 논란과 과도한 오리엔탈리즘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로 곧잘 만들어진다. 'OO을(를) 위해 싸울 거야! 풍의 소년만화 정석에 '무사도'나 '인술' 같은 개념과 '도깨비'와 '혈귀술' 같은 판타지적 설계가 더해지면, 사람들은 홀린 듯 넘어간다.

게임 분야에서도 사무라이나 닌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2019년에는 프롬 소프트웨어가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를 출시해 <다크 소울> 시리즈와는 다른 결의 액션을 보여주었고, <고스트 오브 쓰시마>(2020)는 3인칭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로 유려한 풍광 속에서 펼쳐지는 칼부림을 보여주었다. 사이버펑크 사무라이(카타나 제로)와 사이보그 닌자(고스트 러너)가 전투하는 등의 변형도 있다.

6일 스팀과 엑스박스 게임패스에 나온 <트렉 투 요미>도 그러한 일본열(日本熱), '자포네스크'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영화감독 출신의 레오나르드 멘치아리(Leonard Menchiari)와 <쉐도우 워리어>를 리부트한 폴란드 소재의 플라잉 와일드 호그(Flying Wild Hog)가 함께 만들었다. 이 게임 역시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보여준 사무라이 '관습'을 따라가며, 신화적 해석을 추가했다.​


 

 

# 사무라이 흑백 영화에 보내는 '리스펙'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대한 상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감독의 기념사업회(쿠로사와 프로덕션)의 허가를 구해 흑백 영화 느낌의 '쿠로사와 모드'를 추가한 바 있다. 

팬 서비스에 가까운 일종의 스크린 모드인데, 컬러의 게임을 흑백으로 바꾸어 일본 고전 영화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 게임의 오픈월드에서 쿠로사와 모드를 켜고 전투를 벌이면 마치 <7인의 사무라이>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흑백의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주는 매력은 분명해서, 개인적으로 가상 쓰시마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다가도 이따금 낭만을 즐기려 쿠로사와 모드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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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렉 투 요미>는 <고스트 오브 쓰시마>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사무라이 영화에 대한 존경을 드러낸다. 이 게임은 100% 흑백으로 진행되며, 컬러 모드는 아예 배제했다. 전투 중 스크롤의 끝까지 닿았을 때는 필름 노이즈 효과를 준다거나, 수집이 필요한 아이템에는 필름 훼손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강조했다. 로딩 과정에서는 고전 영화 팬이라면 익숙한, '때는 전국시대...' 같은 화면 중간을 선명하게 채우는 자막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 게임은 '팬 게임'이라고 불러도 좋을 수준이다.


이뿐 아니라 <트렉 투 요미>는 매 전투를 다른 스크롤에서 진행한다. 영화감독 개발자의 영향이 분명해 보이는데, 게임의 모든 전투가 영화의 카메라 워크를 보는 듯하다. <트렉 투 요미>는 횡스크롤에서 출발해 탑뷰, 숄더뷰를 포함해 3인칭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뷰를 제공한다.  비슷한 사례로는 <GTA> 등 락스타 게임즈 게임에서 제공하는 '시네마틱 뷰'가 있을 텐데, <트렉 투 요미>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거의 모든 시점에서 영화적 화면을 보여준다.

<트렉 투 요미>는 사무라이 영화에 대한 찬사다. 서두에 언급한 '변형'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반세기 전 영화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고 있다.

 


 

 

# 오르페우스가 된 사무라이, 결말은 플레이어의 선택

 

<트렉 투 요미>의 주인공 히로키는 사무라이 계급으로 어느 작은 마을의 보호해야만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주변 마을의 공격에 스승을 잃은 그는 마을과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로 맹세하지만, 끝내 비극적인 장면을 맞이한다. 그는 결국 '요미'로 가 싸워나가며 자신의 길을 찾는다.

'요미'는 황천(黃泉)의 일본어다. 히로키는 어릴 적 스승을 복수하기 위해 수련에 나서 훌륭한 사무라이가 되었지만,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지나치게 의욕만 앞선 나머지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했던 그는 연인과 마을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생과 사의 경계로 건너간다.

'사랑을 찾아 명계(冥界​)로 간다'는 신화적 서사를 차용한 것인데,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사카이 진도 쓰시마를 지키는 '생귀'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트렉 투 요미>의 경우 오르페우스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연인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저승 여행을 간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는 금기로 유명한 바로 그 신화다. 으레 그렇듯 금기는 쉽사리 깨져버리고, 그 뒤에 다양한 종류의 결말이 전해진다.​

<사망여각>으로 게임화되기도 했던 바리공주 이야기에선 바리데기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에 가고, 유저와 평단의 호평을 고루 받은 게임 <하데스>는 반대로 저승을 탈출한다는 설정이다. <트렉 투 요미>도 크게 이승 부분과 저승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길게 '저승 여행'을 보여주는데, 게임의 황천은 여러 방법으로 히로키의 여정을 괴롭힌다. 봉건시대 일본의 모습만 감상할 것으로 기대했던 플레이어는 환상적인 '요미'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트렉 투 요미>에는 몇 가지 선택 분기가 존재하는데, 그에 따라서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한 번 결말을 본다면 그다음부터는 보다 쉽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는 모드를 지원하기에 다회차 플레이를 권장한다.

 

 



 

# 밋밋한 전투... 스타일리시하지만 재미는?

 

<트렉 투 요미>에서는 키보드 WASD 방향 조작에 좌-우 마우스 버튼을 조합해 콤보 플레이를 할 수 있으며, 진행에 따라서 상위 스킬을 해금할 수 있다. 


체크포인트는 신사로 존재하며, 여타 게임과 유사하게 신사에 방문하면 자동으로 저장됨과 동시에 그간 줄어든 게이지가 모두 회복된다. 전투 중 공격과 방어 등의 행동에는 기력이 소모된다. 플레이가 전개되면서 맵 곳곳에서​ 여러 수집품과 더불어 잔기(목숨)와 기력 게이지를 파밍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이상의 조건에서 <트렉 투 요미>에서 전투에 나서게 된다.​

게임의 뷰 구성, 스타일리시하면서도 고집스러운 흑백 화면, 컷씬 연출 등은 다분히 영화스럽다. 하지만 전투가 게임으로서 어떤 깊이를 보여주는지는 의문이다. 싱글 플레이 액션 게임 <트렉 투 요미>는​ 평이한 수준의 액션을 보여준다.​ 각성한 사무라이가 검귀에 들린 듯 적들을 일섬하는 게임은 여러 번 나왔기에 신선함도 덜하다. 

패턴 읽기에 따른 패링과 구르기를 쓸 수 있지만, 변칙이 적고 캐릭터마다 기믹이 뚜렷해서 (처음 만난 캐릭터는 친절하게 튜토리얼까지 제공한다) 공략하는 재미가 덜하다. 게임 중간에 난이도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쉬워질 수 있지만, 이른바 '소울라이크'에 이골이 난 실력자에게는 밋밋한 액션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저마다 체감 난이도는 다를 것이므로 참고만 하면 된다. '외국인들은 진라면 순한 맛도 맵다'라고 느낀다고 하지 않은가?

<트렉 투 요미>에는 수리검, 화살, 대포 등의 원거리 무기를 활용할 수 있지만, 그 활용 패턴은 단조롭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무라이 스타일 카타나 액션만 해야 하는데 가면 갈수록 밋밋하게 느껴진다. 여러 번 도전이 불가피한 고난도의 보스전을 제외하면, (갑옷 입은 적에게는 찌르기가 효과적 같은) 상대의 패턴이 모두 읽힌 뒤에는 쉽게 파훼된다.

후반부에는 한자를 맞춰 관문을 여는 퍼즐이 등장하는데 맵에 놓인 한자를 보고 맞추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라 문제 풀이의 재미없이 몰맥락적이다. 이런 게임을 하다 보면 으레 각성의 순간이 제공되어야 몰입이 되는데, 스토리상에선 주인공의 각성이 보일지 몰라도 전투에서는 콤보 몇 개만 늘어나는 수준이다. 

처음에는 시원스러운 액션을 보여주지만, 가면 갈수록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스펙터클이 적다'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한데, 게임의 스타일에 빠져든다면 실망할 정도는 아니다.

게임에는 퍼즐이 등장하는데
보고 맞추기 수준이라 불필요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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